불혹의 ‘워킹맘 발레리나’… 情恨의 몸짓에 세계 매혹 [강미선 '무용계 아카데미상' 수상]

이강은 2023. 6. 2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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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레 ‘미리내길’ 애절한 연기
최고권위 ‘브누아 드 라 당스’ 영예
2021년 출산 뒤 은퇴 없이 복귀
“기술·예술성·연기 모두 탁월” 평가
“아름다운 韓 발레, 세계 알릴 것”
불혹의 ‘워킹맘 발레리나’ 강미선(40·작은 사진)이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한국 무용수로는 다섯 번째 수상이다.
브누아 드 라 당스 조직위원회는 20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제31회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 수상자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중국국립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 추윈팅을 공동 선정했다. 강미선은 지난 3월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미리내길’에서 하늘로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 역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강미선은 공연 당시 여인의 그리움을 숨 막히도록 애절하게 표현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큰 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 심사위원들에게 한국 고유의 감정이 녹아 있는 ‘정’의 느낌이 잘 전달된 것 같다”며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님을 비롯하여 유병헌 예술감독님 등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여러분께 무척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미선은 선화예중·고를 졸업한 뒤 미국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를 거쳐 2002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다. 2014년 동료인 러시아 출신 수석무용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결혼했고, 2021년 10월 아들을 낳은 뒤 5개월도 안 돼 무대로 복귀했다.
1991년 국제무용협회(현 국제무용연합) 러시아 본부에서 설립한 브누아 드 라 당스는 이듬해부터 매년 세계 정상급 발레단의 작품을 심사한 뒤 최고의 남녀 무용수, 안무가, 작곡가 등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앞서 이 상을 받은 한국 남녀 무용수는 강수진(1999년)을 시작으로 김주원(2006년), 김기민(2016년), 박세은(2018년)이 있다.

강미선의 수상은 의미가 깊다. 한국적인 창작 발레로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받아 우리의 정서를 그려 낸 발레도 세계에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아울러 세계 무대에 진출한 한국 무용수들의 맹활약과 맞물려 한국 발레(일명 ‘K발레’) 위상을 드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미선은 앞서 쟁쟁한 경쟁자들과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종 후보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명문 발레단인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 도로시 질베르를 비롯해,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 엘리자베타 코코레바, 마린스키 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 나가히사 메이, 중국 국립발레단 추윈팅, 카자흐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 솔리스트 말리카 엘치바예바다. 강미선이 “후보들이 워낙 대단해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치열한 경합이 예상됐다.

강미선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지난 3월 선보인 올 시즌 개막작 ‘코리아 이모션’(유병헌 안무) 중 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그리움을 표현한 2인무 ‘미리내길’을 들고 나갔다. ‘코리아 이모션’은 한국 대표적 정서인 ‘정(情)’을 아름다운 몸의 언어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창작 발레다. ‘미리내길’과 함께 자매·모녀·형제의 정을 표현한 2인무 등 다양하게 구성했으며 작품마다 국악에 한국적 무용의 색채를 녹여 냈다. 역대 브누아 드 라 당스 한국인 수상자들이 ‘해적’, ‘라 바야데르’ 등 유명 해외 작품으로 수상한 것과 달리 강미선은 한국적인 창작 작품으로 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셈이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오른쪽)이 20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무용계 아카데미상’ 브누아 드 라 당스 시상식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했다. 강미선의 ‘미리내길’ 공연 모습.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문훈숙 단장은 “(강미선은) 재능도 있지만 테크닉(기술)과 예술성, 연기력 등 모든 요소가 탁월하게끔 노력하는 무용수여서 어떤 작품이든 믿고 맡긴다”며 “특히, ‘백조의 호수’나 ‘해적’ 등(해외 명작 발레)으로 한 게 아니고 음악도 국악인 우리 고유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는 게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강미선도 “(무용수로서) 나이가 적지 않아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앞으로 계속 춤을 추면서 아름다운 한국 발레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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