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부 다이어리] 108개의 호수를 찾아 나선 길, 18개에서 멈춘 까닭은

거칠부 2023. 6. 2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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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고사인 쿤드] 랑탕국립공원 74km 트레킹
기대하지 않으면 늘 기대 이상이 주어졌다. 라우레비나 아래로 황홀한 구름 바다가 펼쳐지자 가던 길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네팔의 랑탕국립공원Langtang National Park에는 '고사인 쿤드Gosain Kund(쿤드는 신성한 호수라는 뜻)'라는 유명한 호수가 있다. 힌두 신화에 의하면 이곳은 시바신이 세상을 구하다가 만들어진 곳이다. 고사인 쿤드는 힌두교와 불교도 모두에게 신성한 곳으로, 8월 만월 축제 기간에는 2만5,000명에 달하는 순례자들이 찾는다.

네팔에 사는 지인에게서 108호수 이야기를 들었다. 안나푸르나의 토굴에서 지내는 어느 한국 스님이 고사인 쿤드 108개 호수 중 60개가 넘는 호수를 찾았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뛰었다. 왠지 꼭 가 봐야 할 것 같고, 가보고 싶었다.

현지 여행사 사장이 몇 개월 전부터 108호수를 아는 현지인을 물색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호수를 안다던 어떤 이는 말을 바꾸기를 몇 번, 심지어 하루에 40~50달러의 높은 인건비를 요구했다. 이 정도면 웬만한 트레킹 가이드의 2배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는 108호수를 잘 알지도 못했다.

카트만두에서 8시간 만에 둔체Dhunche(1,960m)에 도착했다. 둔체는 나에게 '지진의 추억'이 있는 특별한 마을이었다. 2015년 대지진 때 여기서 꼼짝없이 갇힌 적이 있었다. 길이 끊어졌고 수시로 여진이 찾아왔다. 운동장 자갈밭 천막 아래서 등산화를 신은 채 자야 했던 날들. 갇힌 지 3일째 되는 날 우리는 30km를 걸어서 탈출했다. 혼란스러웠던 그때의 기억이 여전한데 이제는 지진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라우레비나 패스에서 아마 쿤드, 라갓 쿤드, 찬드라 쿤드를 만났다. 이 꼭대기에 호수가 있을 줄이야.

둔체에서 신곰파Shingompa(3,330m)로 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이곳으로 내려온 게 두 번인데 그때마다 이쪽으로는 절대 올라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오고 말았으니 세상에 단정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길이 유독 힘들거나 편한 건 길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길을 걷는 마음의 문제다. 전에 왔을 때는 누적된 피곤으로 걸음이 무겁더니 이번엔 날아갈 듯 가벼웠다.

쉬는 동안 촐랑파티Cholangpati(3,654m) 숙소 여주인에게 짧은 네팔어로 말을 걸었더니 폭포수 같은 대답이 쏟아졌다. 얼른 꼬리를 내리며 네팔 사람 아니라며 손사래 쳤다. 포터 다와가 사람들에게 108호수를 물었지만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적어도 호수의 절반은 찾을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이 점점 옅어져 갔다.

둔체에서 신곰파 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초보자라면 가장 힘든 구간이다

올라갈수록 황홀한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라우레비나Laurenbina(3,910m) 아래가 구름으로 완전히 덮였다. 몇 번의 방문으로 다 아는 듯한 착각에 빠져 사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으면 늘 기대 이상이 주어졌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멍하니 구름바다를 바라보았다. 히말라야는 같은 곳이라도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른 곳이 되었다.

2017년, 네팔 히말라야 횡단 동쪽 구간을 마치고 80일 만에 이곳을 내려갈 때 그 허탈함이란. 그토록 애썼는데도 가고자 했던 곳에서 돌아서야 했고, 어린 포터 한 명은 사고를 당했다. 큰 사고가 아닌 게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로해도 피폐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불행을 짊어진 것 같은 때도, 너무 좋아서 운명인 것 같은 때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졌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그렇게 지나갔다. 어쩌면 정말 필요한 건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시간인지도 몰랐다.

라우레비나 가는 길에 만난 구름바다. 11월의 랑탕은 매일 구름바다를 보여주었다.

보물찾기하듯 나선 호수 찾기

고사인 쿤드에서 만난 21세 밍마는 몇 개의 호수를 알고 있었다. 열흘 정도 머물면서 호수를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그는 이틀이면 된다고 했다. 몇 개의 호수뿐이라 아쉬웠지만 그를 고용했다.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진 호수가 21개였다. 시바신이 만들었다는 고사인 쿤드, 바이랍 쿤드Bhirab Kund, 사라스와티 쿤드Saraswati Kund는 로지(여행자 숙소)에서 가까웠다. 보통은 3개 호수만 보고 지나치는데 과연 다른 호수들은 어디에 있을까?

밍마를 따라 바이랍 쿤드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만난 큐마초 쿤드Kyumacho Kund는 다른 말로 안드라 쿤드Andra Kund, 네팔어로 안드라는 '장'이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호수 주변에 장처럼 구불구불한 물길이 있었다. 호수라고 하기에는 얕았지만, 여름이면 수량이 제법일 듯했다.

다른 호수들로 이어지는 길은 잘 닦인 돌길이었다. 그만큼 많은 순례자가 찾는다는 뜻일 텐데, 어디에서도 호수를 찾아다닌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돌길을 따라가는 동안 가네시히말과 마나슬루의 호위를 받았다. 뜻밖의 풍경은 언제나 감동을 주었다. 호수를 찾는 건 둘째 치더라도 풍광이 근사해 걷기에 좋았다.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진녹색의 길쭉한 호수가 반겼다. 라무 쿤드Lamu Kund였다. 주변은 온통 4,000m대 돌산뿐인데 근처에만 무려 8개의 호수가 모여 있었다. 많은 사람이 고사인 쿤드를 다녀가지만 2시간 거리에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 나는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처럼 가슴이 벅차 천천히 새로운 세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수를 찾기 위해 함께한 포터들. 호수를 찾아가는 길은 가네시히말이 펼쳐진 멋진 길이었다.

우리는 라니 쿤드Rani Kund에 짐을 내리고 텐트를 쳤다. 이곳이 베이스캠프인 셈이었다. 호수 뒤로 가네시히말과 마나슬루가 보이는 근사한 자리였다.

점심을 먹고 나머지 호수를 찾아 나섰다. 라자 쿤드Raja Kund는 바로 앞에 있었다. 다음 호수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우 쿤드Nau Kund와 체라 쿤드Chhera Kund였다. 나머지 호수들은 돌산 사이사이에 있었다. 에클레 쿤드Ekle Kund는 언덕에서 내려다보였다.

진녹색의 길쭉한 호수 라무 쿤드.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처럼 가슴이 벅찼다

이 호수는 언덕 아래까지 내려가야 했지만 호수가 얼어서 굳이 가지 않았다. 언덕에서 더 올라가자 제법 큰 틴출리 쿤드Tinchuli Kund가 나타났다. 지도와 모양이 달랐지만 밍마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로 알았다. 이곳은 물이 맑아 야영하기에도 좋았다. 쟈쿵출리 쿤드Jyakungchuli Kund까지 가려면 산을 하나 넘어야 했지만, 우린 틴출리 쿤드의 끝쪽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호수를 하나씩 돌아보기엔 너무 시간이 늦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호수의 위치를 모두 정확히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그렇게 하루 만에 12개의 호수를 찾았다. 이 호수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 있는 데다, 길이 좋아서 찾기에 무리가 없었다.

베이스 캠프로 잡은 라니 쿤드. 호수 뒤로 가네시히말과 마나슬루가 보이는 근사한 자리였다.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드는 아름다움

내가 108호수를 찾으러 간다고 했을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마른 호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까지 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맞는 말이다. 이름도 없고, 말라서 간신히 흔적만 있는, 너무 작아서 호수인지도 모를 것들을 모두 찾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108개의 호수는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108 번뇌처럼 상징적인. 어차피 다 찾을 수 없는 호수라면 지도에 있는 것 중에서 18개만 찾아보기로 했다. 108이라는 숫자에서 0을 뺀 18개만이라도.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시바신이 만들었다는 신성한 호수 고사인 쿤드. 힌두교와 불교도 모두에게 신성한 곳이다.

포터 다와와 밍마를 내려보내고 라전과 둘이 라우레비나 패스Laurebina Pass(4,610m)로 향했다. 밍마에게 충분한 설명을 들은 라전이 나머지 호수를 찾아보기로 했다. 올라가는 동안 뒤돌아보니 고사인 쿤드 위쪽으로 두드 쿤드Dudh Kund가 보였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물이 말라 호수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두드 쿤드에서 다른 호수들과 연결되는 길도 보였다. 가네시 쿤드Ganesh Kund는 길가에 있어 찾을 필요가 없었다.

"디디(네팔어로 누나, 언니라는 뜻), 호수가 보여요!"

라우레비나 패스에 도착하자마자 라전이 호수 4개를 찾았다. 라우레비나 패스 옆으로 수르야 쿤드Surya Kund, 능선 아래쪽으로 아마 쿤드Ama Kund, 라갓 쿤드Ragat Kund, 찬드라 쿤드Chandra Kund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18개의 호수를 찾았다. 몇 개의 호수를 더 찾을 수 있었지만 애쓰지 않았다. 호수로 가는 길을 전부 알았으니 그걸로 족했다.

나우 쿤드와 체라 쿤드. 주변은 온통 4,000m대 돌산뿐인데 근처에만 8개의 호수가 모여 있었다.

고사인 쿤드 주변은 호수를 찾아다니는 것은 물론 풍광 좋은 언덕에서 명상하기에도 좋았다. 나흘간 머물며 사흘은 호수를 찾아다니고, 하루는 주변 언덕과 고개에 다녀오면 어떨까. 언제고 다시 이곳을 찾게 되면 꼭 그리 해보고 싶다.

11월이라는 계절 때문인지 오후가 되자 어김없이 구름바다가 만들어졌다. 구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뛰어내리면 푹신할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오래 살고 싶어진다. 오랫동안 히말라야에서 걷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나는 18개의 호수를 기억하며 구름바다 속으로 향했다.

구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뛰어내리면 푹신할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오래 살고 싶어졌다.

왕초보를 위한 히말라야 Q&A

Q 네팔 타멜이나 포카라에서 등산 장비를 구매해도 되나요? 유명 브랜드 짝퉁인가요?

A 저는 히말라야에서 1년에 5개월 정도를 보내기에 장비 교체주기가 빠른 편이에요. 그래서 한국에서 땡처리 제품을 구매하거나 네팔에서 저렴한 등산복을 고르기도 해요. 대신 기능이 중요하지 않은 장비 위주로 구매해요. 예를 들어 여름 반팔 소매와 긴팔, 바지, 바람막이 재킷 등 다른 장비로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중요한 장비는 반드시 한국에서 정품을 구매하고 있어요. 배낭, 등산화, 스틱, 겨울 등산복, 텐트 등이지요.

네팔에는 유명 브랜드 짝퉁이 넘쳐나요. 전에는 원단이나 박음질 등이 엉망이었는데 요즘은 그나마 나아졌어요. 잘만 고르면 저렴하게 쓸 장비를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짝퉁인 만큼 정품에 비하면 디자인이나 맵시가 떨어져요. 저처럼 장비 교체주기가 빠른 경우가 아니라면 한국에서 정품을 구매하길 추천합니다.

트레킹 정보

일반적인 코스

카트만두 - 둔체(1,960m) - 신곰파(3,330m) - 라우레비나(3,910m) - 고사인 쿤드(4,380m) - 18호수·라우레비나 패스(4,610m) - 페디(3,630m) - 타데파티 패스(3,690m) - 망겐곳(3,390m) - 쿠툼상(2,470m) - 카트만두

* 거리는 약 74km에 8일이 소요된다. 차량 이동을 포함하면 전체 일정은 11~12일 걸린다.

* 로지 트레킹이 가능하며 난이도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정도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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