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도 꽃가루 옮긴다…꿀벌만 걱정할 때가 아니었어

남종영 2023. 6. 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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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특별기획|꿀벌 실종사건의 진실 ②
① 꿀벌은 사라졌나, 그대로인가?
② 아인슈타인의 거짓말? 꿀벌에 대한 오해들
③ 기후변화가 만든 허약한 꿀벌들
꿀벌이 꽃에서 꿀을 따고 있습니다. 인간은 꿀벌의 노동을 이용하는 거고, 그런 점에서 꿀벌은 가축이에요.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회 기사를 잘 읽었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꿀벌이 ‘가축’이라는 사실에 놀라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맞습니다. 축산법 시행령에서 꿀벌은 가축으로 규정돼 있어요.

가축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이 이용하기 위해 기르는 동물’입니다. 요즘엔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축의 최대 용도는 ‘노동력’이었습니다. 밭을 가는 소, 마차를 끄는 말처럼요.

벌이 가축이 된 것은 기원전 2400~5500년 전 이집트에서였어요. 야생벌의 벌집에서 꿀을 채취하다가 진흙으로 벌집을 만들어 벌을 기르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꿀벌의 노동은 다른 가축의 노동과는 좀 달라요. 인간은 꿀벌에게 벌통을 제공할 뿐 소나 돼지처럼 목줄과 코뚜레를 채우거나 공간을 제약하지 않죠. 벌통 밖으로 나가 꿀을 채취해오는 꿀벌의 노동력을 이용해 인간은 벌꿀을 ‘슬쩍’ 하는 거예요.

파리, 나방, 새, 박쥐도 화분매개자

약 1억 년 전, 세상에는 벌이 없었어요.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성 말벌이 세상을 주름잡았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말벌은 벌이 아니에요. (말벌은 영어로도 ‘wasps’,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bee’가 아닙니다.)

그런데 말벌 중에 평화주의자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곤충을 안 먹겠다!’며 채식을 선언하고, 이제 막 출현한 꽃식물의 꽃꿀과 꽃가루에 영양을 의존했어요. 꽃과 꽃 사이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부지불식간에 몸에 묻은 수술을 암술에 옮김(화분매개)으로써 식물이 널리 퍼지도록 했어요. 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려서 좋고, 야생벌은 배불리 먹어서 좋고… 이런 걸 ‘공진화’라고 합니다.

벌은 모두 9개 과, 약 2만여 종이 있어요. 우리가 보통 꿀벌이라고 부르는 벌은 ‘서양꿀벌’(학명 Apis mellifera)로, 2만종 중 하나예요. 하지만 최근 100~200년 동안 양봉산업의 표준종으로 아프리카와 북극까지 퍼졌죠.

꿀벌은 식물의 생활사에서 필수적이에요. 꽃가루를 옮겨야 그들이 열매 맺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을 휩쓴 ‘꿀벌 집단 실종 사건’이 환경단체는 물론 과학자, 정부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어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말도 유명해졌죠.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 확인되진 않지만, 언론에는 무분별하게 인용되고 있어요.)

꿀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말벌이에요. 말벌이 꿀벌을 잡아먹거든요. 그런데, 꿀벌의 조상은 말벌입니다. 아이러니하죠? AP/연합뉴스

그런데 말입니다. 꽃가루를 매개하는 동물은 꿀벌뿐만이 아니에요. 꿀벌 말고도 수많은 야생벌, 파리, 나방과 새를 비롯해 심지어 박쥐까지 꽃가루를 매개해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해 발간한 ‘화분 매개자와 농약’ 보고서를 보면, 세계 115대 작물 가운데 87개 작물이 화분매개 동물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요. 만약 이런 동물이 사라지면 5~8% 정도의 생산량이 줄고, 그 피해는 연간 2350억~5770억달러(301조~739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꿀벌‘만’ 화분매개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꿀벌이 사라지면 당장에라도 식량난이 벌어질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이죠.

농촌진흥청 분석에 따르면, 국내 농작물 총생산량 중 화분매개 곤충에 의존하는 작물의 생산량은 35%(530만t)이고, 화분매개 곤충이 필요하지 않은 작물의 생산량은 65%(1006만t)이에요. 이를테면, 수박이나 딸기 등은 화분매개 곤충이 필요하지만, 벼나 보리, 감자, 배추, 무, 파 등은 필요하지 않아요.

물론 농업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화분 매개자가 꿀벌이에요. 비닐하우스에서 채소와 과수를 재배할 때는 꼭 벌통을 들여다 놓아야 해요. 다른 화분매개 동물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까요.

유엔 생물다양성국제기구(IPBES)는 2016년 ‘화분매개자와 화분매개 그리고 식량생산’ 평가보고서에서 세계 주요 작물의 90% 이상을 꿀벌과 야생벌을 포함한 벌이 방문하고, 30% 정도를 파리가 방문한다고 봤어요. 다른 수분매개자들의 방문 비중은 6%였고요.

인간이 재배하는 농작물이 아닌 야생 생태계에서는 야생벌 등 다른 화분매개 곤충의 영향이 커요. 그래서 생물다양성기구나 식량농업기구도 꿀벌만 강조하지 않아요. 각종 통계를 봐도, 꿀벌을 비롯한 야생벌 그리고 다양한 곤충을 포함한 화분매개 동물을 함께 이야기하죠.

어떤 꽃은 꿀벌을 비롯한 다양한 화분매개자가 방문하고, 어떤 꽃은 특정 곤충이 화분매개를 전담하기도 하는 등 복잡해요. (꿀벌은 꽃을 가리지 않고 방문하는 ‘잡식성’이에요.)

꿀벌-야생벌-곤충-식물 전체 조감도 봐야

최근 들어선 꿀벌 실종사태에 대한 과도한 걱정이 ‘꿀벌=유일한 화분매개자’라는 오해를 낳고,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이이질까봐 우려하는 과학자들이 많아졌어요. 꿀벌에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야생벌과 곤충의 상황은 더 심각하고, 생태계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는 관점이지요. (‘제6의 대멸종’이 진행되는 지금 가장 멸종 속도가 빠른 게 곤충이에요!)

요나스 겔드만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 등은 2018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꿀벌 보호는 야생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실었어요. 그는 화분매개가 다수의 동물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데도, 인간은 꿀벌만 걱정한다고 꼬집었어요. 오히려 높은 밀도의 꿀벌 사육은 다른 화분매개 곤충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봤죠. 꿀을 두고 경쟁이 심해지니까요.

과도한 이동양봉(꽃 피는 시기에 맞춰 대규모로 벌통을 이동하며 꿀을 채집하는 것) 또한 야생 생태계에 전염병을 옮기고 곤충 생태계를 교란한다고도 지적했어요. 그는 꿀벌이 자연 생태계에 ‘대량 유입된 관리종’(massively introduced managed species)이라는 정의를 상기시켰죠. 지금 전세계 곤충들의 ‘꿀 따기 전쟁’은 유럽 산골짜기에 살던 ‘유럽꿀벌’ 한 종이 평정하고 있답니다.

꿀벌은 벌 2만여종 중에 단 한 종이에요. 하지만 가축이 되어 세계로 퍼져, 지역 생태계의 곤충과 경쟁하고 있지요. 게티이미지뱅크

연구 결과를 하나 볼까요? 프랑스 남부에서 이뤄진 연구에서는 고밀도 양봉이 꿀벌과 야생벌 사이 ‘꿀 따기’ 경쟁을 일으켜 야생벌의 출현율을 55% 감소시키고, 꽃꿀 수확률을 50% 줄인 것으로 조사됐어요. 꿀벌 또한 평소보다 많은 수확량을 기록하지 못했어요. 아! 꿀 따기 힘들어!

물론 다른 관점의 시각 또한 존재해요. 지난해 뉴질랜드 연구팀은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서 1961~2017년 꿀벌 벌통이 85% 늘었고 꿀 생산량도 45% 늘었지만, 이는 세계 인구 증가율(144%)에는 못 미친다고 걱정했어요.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과 감염병, 해충의 유행으로 꿀 생산량이 급감할 수도 있고요. 연구팀은 늘어날 꿀 수요 증가를 충족하고 식량 작물의 화분매개를 위해서도 양봉산업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죠.

곤충·야생벌 상황이 더 심각

지난해 정부는 ‘양봉산업 5개년 종합계획’을 마련해 매년 3천㏊씩 밀원 숲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어요. 이게 어느 정도냐면요. 가로, 세로 100m 되는 운동장이 3천개 생긴다고 보면 돼요.

정부는 1970~1980년대 47만㏊ 이상이던 밀원 숲 면적이 2020년 14만6천ha까지 줄었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 위해 목표를 정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밀원 숲은 아까시나무처럼 꿀이 많이 나오는 수종을 중심으로 조림된 숲이에요.)

지난달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안동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낸 보고서에 꿀벌과 야생벌의 화분매개 기능을 북돋기 위해서 30만㏊의 밀원 숲이 필요하다고 추정했어요. 꿀벌이 먹을 게 별로 없으니, 먹을 것을 많이 만들어주자는 취지예요.

산림청과 강릉시 등이 2013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일원에 대표적인 밀원수인 아까시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신중한 시각도 있어요. 서울환경연합이 지난달 25일 연 생태전환 도시포럼의 참석자들은 거대한 규모의 밀원 숲 조성 사업은 기존의 숲을 밀어내고 새로 나무를 심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죠. 기존의 토종 생태계는 물론 야생벌 같은 화분매개 곤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겁니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이런 비유를 들었어요.

“닭(가축) 모이가 부족하다고, 숲에 있는 나무를 다 닭 모이 만드는 나무로 바꿔도 되나요? 숲의 주인은 닭이 아니라 다른 (야생) 생명체들입니다.”

꿀벌이 ‘가축’이라는 점을 강조한 거예요.

17일 주무부처인 산림청에 전화를 걸어봤어요. 담당자는 기존 목재 생산용 경제림을 조성할 때 밀원 수종을 부수적으로 섞어 심는 것이라고 말했죠. 오로지 밀원 숲을 위해 나무를 교체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대표적 밀원 수종인) 아까시나무는 과거 연료림(땔감)으로 조성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 쇠퇴했어요. 아까시나무는 장난감이나 가구를 만드는 데 아주 좋은 목재입니다. 헝가리에서는 직립성으로 만들어서 수출까지 하는 상황입니다.”

그린피스와 함께 보고서를 낸 정철의 안동대 교수는 “단순히 양봉가들의 밀원 제공만을 목적으로 밀원 숲 확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며 “숲을 베어내고 밀원수를 심자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홍석환 교수는 “꿀벌과 화분매개 동물을 보호하려면 자연 숲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죠.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도 “도시에 밀원식물 화단을 확대하거나 농경유휴지를 활용하는 등 기존의 숲을 파괴하지 않고 밀원 면적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역 시스템 없는 양봉산업

밀원 숲이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꿀벌이 늘어날 거라는 예측도 있어요. 왜냐고요? 국내 양봉산업은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많은 양봉가가 벌통을 더 들일 거라는 거죠.

국내 양봉산업은 팽창 중이에요. 양봉 농가 수는 2011년 1만9387곳에서 2021년 2만7583곳으로 70% 늘었어요. 50군 이상 벌통을 소유한 기업형 농가도 비율도 55%에 이르죠. 사육 봉군은 2021년 269만군으로, 일본(24만군), 캐나다(81만군)보다 많아요.

그래픽_나성숙 영상소셜팀
그래픽_나성숙 영상소셜팀

꿀벌이 늘어나면 좋은 거 아니냐고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동시에 숲이 넓고 식물과 생태계가 건강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꿀벌과 야생벌, 곤충들이 한정된 먹이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거든요. 허약한 꿀벌들, 도태되는 곤충들이 많아지는 거예요. 게다가 한국은 국토 면적당 사육 밀도가 세계 1등이랍니다. 한상미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장의 말이에요.

“꿀벌들이 꿀을 많이 따려면 아까시나무처럼 군락을 이루면 좋겠죠. 그런데 그건 사람의 입장이에요. 야생벌 입장에서 보면 한 번에 꽃이 확 피었다가 지는 것보다는 연중 자신들이 먹을 만큼 다양한 꽃이 조금씩 피는 게 좋아요.”

그는 양봉산업이 선진화되어야 한다고 말해요. 벌통을 들일 때 질병 검사를 하는 방역시스템이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고 해요. 양봉을 벌꿀 채취용과 화분매개용으로 전문화함으로써, 관리 기법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어요.

어린이들이 꿀벌 생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어요. 꿀벌은 생태위기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예요. 하지만 꿀벌에 국한하지 않고 좀더 넓은 생태계의 관계망을 설명해주면 좋겠어요. 연합뉴스

정부는 올해부터 2030년까지 예산 484억원을 투입해 ‘꿀벌 보호 및 생태계 보전 연구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어요.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기상청 등이 기후변화에 적합한 밀원수를 찾고, 꿀벌의 병해충을 차단하고, 꿀벌의 생태계 서비스를 평가하는 연구를 할 예정이죠. 그동안 꿀벌과 화분매개 곤충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어요.

사라지는 꿀벌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줘요. 그런 점에서 꿀벌은 ‘탄광 속의 카나리아’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돋보기만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선 뭔가 부족해요. 꿀벌과 야생벌 그리고 여러 곤충과 동식물 관계의 조감도를 그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 바로 우리는 생태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다음 회에서는 세계적인 미스터리 ‘꿀벌 실종사태’의 범인을 추적해볼게요. 또 만나요!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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