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시급 올라도 내 월급 그대로 '숨은 방정식'

CBS노컷뉴스 김정록 기자 2023. 6.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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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꿈,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넘으며②]
편집자 주
당장이라도 올 것 같던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이제야 코앞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은 한치라도 나아졌을까. 노동자들의 소득안전망은 한뼘이라도 뿌리를 펼쳤을까. CBS노컷뉴스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을,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한 일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의 삶을 흔드는 위협들을 찾아살핀다.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찾으며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5년 전 가계부 비교해보니…'벼랑 끝' 최저임금 노동자
②최저시급 올라도 내 월급 그대로 '숨은 방정식'
(계속)

코레일네트웍스에서 무기계약직으로 20년 동안 일한 역장 A씨와 갓 입사한 2년차 매니저 B씨는 서로 임금이 같다. 이곳에서는 1급이든 4급이든, 역장이든 매니저든, 10년차든 갓 들어온 신입이든 모두 최저임금보다 '4원' 더 높은 임금만 받을 뿐이다.

A씨는 "내가 왜 역장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연차가 높은 역장은 소방 등 안전 책임을 더 지우는데 (임금은 같으니)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역장 공모에 응하는 노동자도 없어 사측에서 임의로 지정할 지경이다.

범인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다. 산입범위가 확대되면서 최저임금이 올라도 그만큼 임금이 깎이니 받는 돈은 제자리걸음이다.

2019년, 국회의 관련 법이 개정돼 산입범위가 확대되면서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주는 임금'은 최저임금에 포함됐다. 상여금, 식비·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도 매월 지급하기만 하면 최저임금에 포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노동 현장에서는 기존 상여금·수당 등이 기본급에 포함되면서 최저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손에 쥐는 돈은 그대로인 경우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또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져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수당을 받고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코레일네트웍스, 최저임금에 식대 들어가자 기본급 줄어

연합뉴스

코레일네트웍스는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287개 수도권 지하철 역사중 140개 역을 위탁받아 역무업무를 수행한다. 수도권 차량 내 보안업무, 철도고객센터 업무, 서울역·용산역 등 11개 주요 KTX승차권 발매 업무 등을 맡는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된 2019년부터 코레일네트웍스 역무원들에게도 실질임금 하락 효과가 곧바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범위에 식대가 포함되자 회사는 추가된 산입범위만큼 기본급 인상폭을 낮춰버린 것이다.

우선 기본급부터 역전됐다. 각 급 내에서 기본급은 위탁역장·총괄매니저·매니저 순으로 높았는데, 2019년부터는 거꾸로 바뀐 것이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최저임금 인상분을 임금 인상에 반영하는 대신 '기본급+직무수당+식대' 총액을 정확히 최저임금에 맞췄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 최저임금에 산입되지 않았던 식비가 포함되면서 그만큼 기본급이 줄어든 것이다.

이러면서 법정 최저임금보다 통상임금이 낮아졌다. 통상임금에 들어가지 않던 식비가 최저임금에는 포함됐기 때문이다. 교대근무로 연장·휴일·야간노동이 잦은 조건에서 수당의 근거인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으니, 오히려 추가 근무를 할수록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아야 했다.

결국 노동자들의 반발에 부딪힌 코레일네트웍스는 2021년부터 식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하도록 임금을 조정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통상임금이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지 않을 뿐, 사실상 통상임금이 최저임금과 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네트웍스 기본급.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제공


또 직급과 직무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의 임금 항목과 액수가 똑같아졌다. 1급이든 4급이든, 역장이든 매니저든, 근속연수와 관계없이 기본급·직무수당·식대·통상임금이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의 임금이 최저임금액으로 하향평준화된 것이다.

코레일네트웍스 서재유 정책부장은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은 이 법으로 자신의 임금 수준이 결정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을 더욱 빈곤에 다가가게 만들었다"며 "20년 일한 노동자와 1년 일한 노동자 모두 최저임금에 수렴됐다"고 지적했다.

르노코리아, '라인속도 빨라야 주는 수당'이 최저임금?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면서 최저임금으로 들어오는 수당은 식비만이 아니다.

르노코리아도 통상임금이 법정 최저임금 밑으로 떨어졌다. 산입범위가 확대된 2019년부터 기본급은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았고, 대신 갖가지 항목들이 최저임금에는 포함되고 통상임금에서는 빠졌다.

르노코리아의 경우 기본급 뿐 아니라 자기계발비, 가족수당, 중식대보조, 문화생활비, 기술자격수당, 안전환경수당, 라인수당, 공헌수당, UPH(시간당 생산대수)수당, 2교대수당, 직책수당, 관리자수당, 고객관리수당, 자격면허수당, 박사수당, 서비스수당, 조정수당 등 기존에 따로 지급됐던 수많은 수당이 모두 최저임금에 포함됐다.

르노코리아 정규직 20년차의 임금명세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제공


여기에 가족수당, 문화생활비, UPH수당, 2교대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은 바람에 통상시급이 법정 최저시급보다 아래에 놓인 것이다.

예컨대 이전에는 결혼을 하고 아내와 자녀가 있는 노동자 B씨는 가족수당 4만 원을 받았지만, 이제는 미혼인 노동자와 월급에서 수당 차이가 없다. 이런 수당들이 모두 최저임금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르노코리아 22년차 정규직 노동자도 통상시급이 9581원으로 최저시급 9620원보다 39원이나 적다.

르노코리아지회 김영진 사무국장은 "르노코리아자동차는 연장근로 수당을 낮게 지급해주기 위해 기본급은 낮게 설정하고 수당의 종류를 많이 만들어 임금에 비해 낮은 통상임금을 구성했다"고 지적했다.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지면서 장시간 연장근로를 할수록 노동자가 손해를 보기도 한다.

AXA손해보험콜센터 노동자들은 월급에서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이 통상임금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최저임금에는 산입된다. 이렇게 통상임금이 100만 원으로 책정되면서 연장·야간·휴일수당 지급을 위해 50% 가산한 합산금액이 최저임금에도 미달한다.

결국 연장근무를 할때마다 오히려 시간당 임금을 더 적게 받게 되고, 사용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시킬수록 더 큰 이득을 보는 구조다.

'연차 강제 사용' '포괄임금제'…최저임금 꼼수


이처럼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는 사용자들의 '꼼수'는 차고 넘친다.

포괄임금제가 대표적이다. 연장수당을 10시간 기준 포괄임금으로 산정하면, 실제로는 10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해도 포괄임금 이상의 연장수당을 받을 수 없다.

"야근을 해도 수당이 없고 휴일에 일해도 대체휴일도 안주면서 물어보면 포괄임금제라고 한다. 공휴일에 쉴 때는 연차를 사용하게 한다."

2019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민주노총 최저임금개악 증언대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피해가는 경우도 있었다.

평소 하루 7시간씩 일하던 청소노동자 C씨는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명목상 노동시간이 줄어 인상 효과를 보지 못했다. C씨는 "2017년부터 노동시간을 줄이려고 해 노조를 만들었다"며 "결국 2019년부터는 노동시간이 1시간 줄었다. 받는 임금은 2018년이나 2019년이나 똑같다"고 토로했다.

라인근무·교대수당이 최저임금…"취지에 맞습니까?"


연차를 강제로 쓰도록해 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국지엠부평공장 2차 하청업체는 원청이 휴업하는 여름 2주 기간 동안 함께 쉬지만, 휴업수당은 1주치밖에 받지 못한다. 나머지 1주는 강제로 연차를 쓰도록 한 것이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김태훈 정책선전부장은 "나머지 1주치 휴업수당도 지급하라고 하니 원청 휴업 기간 동안 공장에 나와서 8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온갖 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면서 내가 받는 돈이 제대로 계산된 월급인지, 최저임금은 지킨 것인지 확인하는 기초 근거가 되는 임금명세서는 더욱 복잡해졌다.

임금명세서 작성 예. 고용노동부 제공


이와 관련,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2021년 11월부터 모든 사업장은 직원에게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공제명세 등이 적힌 임금명세서를 서면으로 나눠주도록 대상 사업장을 확대했다.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해서라도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지킬 최소한의 무기를 받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임금명세서 교부 관행은 여전히 현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임금명세서를 주지 않는 사례가 늘어만 가고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임금명세서 법 위반사건 처리현황'을 보면, 2022년 근로조건 교부의무 위반 사건은 1699건이었는데, 올해는 1월~5월 사이에만 1025건이나 집계됐다.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 약자'일수록 자기 노동시간을 정확히 계산해서 월급을 정확히 받기 어렵다"며 "그런 사람들이 더욱 절대적으로 (임금명세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작은 사업장일수록 (임금명세서를) 교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오민규 연구실장은 "산입범위 확대가 처음 적용된 2019년부터 곧바로 실질임금 하락 효과가 발생했다"며 "기본급은 낮게 유지한 채로 상여금과 수당을 적절히 활용해 최저임금 위반을 회피하는 다양한 꼼수를 개발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최저 수준을 보장받기 위해서 교대근무를 뛰어야 하고, 라인근무를 해야하고, 위해한 업무를 감수해야하고, 라인 속도를 시간당 50대로 죽어라 일하라는 것이 최저임금법 제도 취지에 맞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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