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글이 되는 음악] K팝 글로벌 시대의 과거·현재·미래를 담을 ‘아카이브K의 시도’

김작가 2023. 6. 19. 18: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6월 1일 오픈한 ‘아카이브K’ 사이트. 사진 아카이브K

‘한국 대중음악 아카이빙 플랫폼’을 표방하는 아카이브K가 오픈했다. 2021년 SBS에서 방영된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디즈니플러스 다큐멘터리인 ‘슈퍼주니어: 더 라스트 맨 스탠딩’의 제작사인 ㈜일일공일팔에서 오랜 준비 끝에 론칭한 플랫폼이다. 이 프로젝트의 관여자이자 적지 않은 시간, 한국 음악계의 현실에 아쉬움을 느껴온 입장에서 기대가 크다.

한국 대중음악이 ‘산업’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부터다. 조폭이나 흥행업자 출신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던 음반사가 ‘기획사’라는 이름을 걸고 체계화를 시작한 게 그 무렵이다. 2000년 4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음악 기업으로는 처음 코스닥에 상장하며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음악인을 ‘딴따라’라고 하지 않는다. 아니, 알다시피 K팝 시대와 함께 세계 음악 시장에서 만만찮은 지분을 차지하게 됐다. 지난해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론칭을 하며 하이브, SM 등과 협력 관계를 구축한 건 세계 콘텐츠 산업에서 K팝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산업적’ 사건이다.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 같은 개별 아티스트의 활약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이 정도 시간에 이만큼 크게 음악 산업을 성장시킨 나라는 없다. 세계 2위의 시장인 일본도 꾸준히 미국 진출을 꿈꿔왔지만, 마니아, 혹은 오타쿠 이상을 넘지 못했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

한국 음악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두 가지다. “한국에는 K팝 말고 다른 음악은 없어?” 또는 “한국 음악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해?” 그들은 음악 전문가나 관계자는 아니었다. 한국에 여행을 왔거나, 해외에서 열리는 K팝 행사에 관객으로 왔거나 하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음악 팬이었다. 동시대 여러 장르뿐만 아니라 과거의 뮤지션, 아티스트의 계보, 장르의 역사 등을 전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서구의 아카이빙 환경을 알고 있으니,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냥 부끄러웠다. 예를 들어 영국을 보자. 음악지 ‘NME’처럼 현재의 음악을 다루는 미디어도 있지만 비틀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등 레전드 뮤지션 한 팀으로 한 권을 채우는 ‘MOJO’ 같은 잡지도 있다. 그런 아티스트들의 자서전 또한 차고 넘치니, 자연스럽게 예나 지금이나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이 음악 역사의 온갖 가십을 술안주 삼고 방송에서 떠들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조용필, 산울림 같은 레전드급 아티스트들의 정사와 야사를 알고자 하면 많은 노력을 거쳐야 한다.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공식, 비공식적 스토리도 대부분 얇고 좁다. 많은 음악 팬이 참여하는 나무위키에서조차 정보의 양은 팬덤의 수와 정비례한다. 한국 영화사의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한국영상자료원이 1974년 설립된 사실을 떠올리면, 국가와 음악계가 얼마나 아카이빙에 대해 무심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런 아쉬움과 고민을 바탕으로 오픈한 아카이브K는 그런 점에서 눈에 띈다.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도 않은) 기존의 음악 웹진이나 미디어와 구성이 다르다. ‘웹진’이 아니라 ‘플랫폼’을 표방하는 만큼 아티스트들의 심층 인터뷰 기사가 우선 눈에 든다. 웹진이라면 앨범 리뷰 중심이겠지만 리뷰란 사실보다는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되는 글이니 아카이빙의 주재료는 아니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제작 당시 일일공일팔은 꽤 많은 인물의 인터뷰를 기록해 뒀다. 김민기부터 방시혁, 양희은부터 BTS까지. 그들의 음악 인생뿐만 아니라 그들이 활동했던 장면과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바탕으로 인터뷰가 구성됐다. 그렇게 200명 이상이 4만 시간의 대화를 남겼다. 책, 나아가 총서 발행도 가능한 양과 질의 인터뷰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다. 여기에 담지 못한 과거와 현재의 음악계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도 계속 해 나갈 테니 이것만으로도 아카이빙이라는 목적에 충실한 콘텐츠다.

일종의 창간 기획이자 가장 힘을 주는 건 ‘한국대중음악실록’. 대중음악평론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1990년대 중후반부터 최근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평가하는 작업은 있었다. 그런데 맹점이 있었다. 명반이나 명곡, 혹은 음악사적 업적을 남긴 아티스트 중심의 작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에 미친 영향이나 문화, 산업적 가치는 소외됐다. 예를 들어 BTS 이전까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던 김건모의 3집(‘잘못된 만남’이 담겨 있는 그 앨범 말이다)은 100대 명반의 근처에도 간 적이 없다. 이는 그간의 평가 작업이 대부분 비평 문화가 발달해 있는 영미권과 일본의 선례를 참고했기 때문이고, 음악을 음악 그 자체가 아닌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의 일환으로 평가하는 시도를 못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대중음악실록은 참신하다 할 수 있다. 1953년 미8군 무대 설치부터 BTS의 ‘다이너마이트’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까지 한국 대중음악사를 만들어 온 100개의 사건과 이슈를 선정,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명반들에 대해서도 단순한 음악적 업적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음악 산업과 창작의 방법론에 미친 영향까지 서술할 예정이다. 이 기획을 위해 기존의 평론가, 기자, 교수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음악 산업에 종사해 온 현장 관계자, 거기에 뮤지션들도 참여해서 보다 다양한 시각을 담아냈다. 그 외에도 전문가들이 작성하는 아티스트들의 바이오그래피, 의사와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음악 애호가들의 칼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오픈과 함께 준비된 메뉴가 자체 제작, 또는 전문가들이 만드는 콘텐츠라면 다음에는 음악 애호가와 팬을 중심으로 한 유저 커뮤니티를 업데이트할 예정이기도 하다. 개인 소장으로는 국내 최대의 보유량을 자랑하는 원주LP박물관과 손잡고 약 5만 장 이상의 국내 대중음악 LP의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있으며, 향후 이 데이터를 활용한 여러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 음악 팬들이 소장해 온 희귀 자료들을 온라인에서 자랑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또한 구축 중이다.

K팝 글로벌 시대, 이제는 더 높은 곳과 더 넓은 곳만 바라볼 때는 아니다. 과거를 되짚어 현재를 읽어내고, 현재를 깊게 바라보며 미래를 예측할 때다. 한국 대중음악이 단순히 온갖 숫자들에 열광하는 걸 넘어, 문화와 인문으로서의 가치를 오롯이 평가받기 위한 첫걸음이다. 아카이브K의 시도가, 그 한 걸음을 위한 교두보가 되길 희망한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