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의 시대’를 준비하는 법[예정된 미래-작은 학교 이야기④]

남지원·김나연 기자 2023. 6. 1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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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내년에만 3곳 폐교
염강초 등 건물 활용 못하고 방치
창원 구암중 체육관 리모델링 눈길
공간 재구조화 방법 고민 필요
학교는 주민 ‘정주’에 필수시설
분교 전환·캠퍼스·통학구역 확대
다양한 모델 개발해 살려내야
지방소멸 가속화 막을 수 있어

“조금 먼저 온 미래”

2020년 1월, 서울 강서구 염강초등학교 졸업식장에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 나이 든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던 이 학교는 서울의 다른 소규모학교들처럼 학령인구 감소의 파도를 조금 일찍 맞았다. 같은 강서구에 있는 신도시 마곡지구에 중학교가 신설되면서 학생이 많이 줄어든 근처 염강초와 공진중이 폐교 대상이 됐다. 염강초는 그 해 6학년 38명 졸업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3년이 지난 학교는 여전히 텅 빈 모습 그대로다. 지난 13일 오후 찾은 염강초 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담쟁이덩굴이 담벼락을 타고 무성하게 올라왔고, 먼지더께가 내려앉은 건물 유리문 안에는 오래된 집기가 쌓여 방치돼 있었다. 교문 한쪽에는 “서울 염강초등학교 통폐합 추진 기본계획 수립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에서 매각 또는 타 용도로 활용하기 전까지 폐쇄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염강초는 폐교 후 코로나19 별도고사장,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센터 같은 임시 시설로만 간혹 활용됐다. 지난해 연말 강서경찰서 가양지구대가 기존 청사를 리모델링하면서 잠시 입주하기도 했다.

염강초에서 1.5㎞ 정도 떨어져 있는 공진중도 교문이 닫힌 채 방치돼 있었다. 학생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된 운동장에는 풀이 파랗게 돋아났다. 폐교 후 공진중에는 강서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는 강서양천제1발명교육센터가 들어왔었다. 올해 초 강서양천꿈미래센터가 준공되면서 공진중은 다시 빈 건물이 됐다.

거대한 흉물이냐, 도시재생의 거점이냐···도시와 폐교가 공존하는 법
2020년 폐교된 서울 강서구 염강초 교문이 지난 13일 오후 굳게 닫혀 있다. 남지원 기자
2020년 폐교된 서울 강서구 공진중 운동장이 텅 비어 있다. 남지원 기자

이들 학교는 앞으로도 최소 3년간 빈 곳으로 남는다. 서울시교육청은 공진중 부지에 환경교육체험관 ‘에코스쿨’을 조성하기로 했는데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개관 예정 시점이 2024년에서 2026년으로 미뤄졌다. 염강초 자리에는 공립유치원을 만들려 했지만 유아 학령인구 감소로 무산됐고, 지금은 유아교육체험시설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폐교된 광진구 화양초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인 미래교육문화원(가칭)이 2026년 들어설 예정이다.

학령인구 감소는 앞으로 10년간 몰아친다. 몇몇 작은 학교는 살아남겠지만, 수많은 학교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특히 앞으로는 대도시에서 폐교가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통폐합되거나 폐교된 학교 99곳 중 19곳은 읍·면이 아닌 ‘동’ 지역에 있다.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들은 이미 읍·면 단위마다 1곳씩을 빼고는 문을 닫은 곳이 많아 더 이상 폐교가 쉽지 않다. 반면, 인구가 줄어드는 대도시의 구도심에서는 이제 학교 통폐합 논의가 활발하다. 서울만 해도 내년 도봉구 도봉고, 성동구 덕수고·성수공고가 문을 닫을 예정이다.

농산어촌의 폐교들은 주로 캠핑장이나 수련원, 체험시설 등으로 활용됐다. 도시의 폐교는 이와 다른 시설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에 있는 학교는 주민 접근성이 좋고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는 데다 건물과 운동장, 부속 공간 등도 넓다. 폐교하더라도 활용할 길이 많지만, 문을 닫은 학교가 오랫동안 방치되면 인근 지역의 황폐화와 슬럼화를 가속하기도 한다. 폐교가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면 학교 문을 닫으려고 계획할 때부터 폐교 후 학교 공간을 재구조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달 11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산지혜의바다도서관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는 등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도서관은 마산 구도심의 구암중·구암여중이 통합하면서 빈 곳이 된 구암중 체육관을 리모델링해 조성됐다. 남지원 기자

경남 창원시의 공공도서관 ‘마산지혜의바다도서관’은 폐교를 구도심 도시재생의 거점으로 삼은 사례다. 2017년 마산 구도심의 구암중과 구암여중이 학생 수 감소로 통합한 뒤 구암중 체육관 건물을 리모델링한 마산지혜의바다도서관이 2018년 개관했다.

도서관은 벽이 높고 무대가 있는 체육관 구조를 그대로 활용했다. 서울 코엑스의 별마당도서관, 파주 지혜의숲 등 유명 도서관·북카페를 모티브로 높이 10m의 거대한 서가를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인스타그램 핫플(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며 작년 한 해 이용자만 71만명에 달하는 지역 명소로 떠올랐다. 학교 문을 닫기 전부터 미리 공간 재구조화를 준비하고, 빠르게 리모델링을 진행해 공간을 살린 전략이 효과를 봤다.

지난달 11일 도서관에서 만난 박영숙 마산지혜의바다도서관장은 “매년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데 이렇게 주민들이 좋아하는 도서관은 찾기 어렵다고 자부한다”며 “도서관이 들어서면서 인근 상권까지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듣는다”고 말했다.

폐교를 방치하지 않고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폐교 과정에서부터 지역주민들과 학교 구성원들의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 시내 폐교 활용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며 “(폐교 전부터) 미리 공간을 활용할 준비를 하면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어서 조심스럽게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교 구성원들에게 상처를 주는 밀어붙이기식 폐교는 ‘그 이후’를 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도시의 분교·초등학교 캠퍼스·통학구역 확대··· 학교의 ‘표준’이 바뀐다

거대한 건물과 운동장, 급식실을 갖춘 ‘표준적인’ 학교의 모습은 작은 학교가 늘어나도 그대로일까. 앞으로는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교육청은 하반기 발표를 목표로 지난 2월부터 ‘서울형(도시형) 분교’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형 분교는 폐교 위기의 학교를 다양한 모델의 분교로 소생시키는 사업이다. 학생 수 감소로 구도심에서는 폐교가, 일부 신도시에서는 과밀학급이 발생하자 적정규모의 학교를 설립하고 균형 있는 교육여건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교육부 권고기준에 따르면 학교는 ‘2개 이상의 학년이 교실 한 개 또는 교사 한 명에 의해 운영되거나 최근 3년간 신입생이 없는 경우’, ‘교직원 수가 학생 수보다 많은 경우’에 분교로 개편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이 대도시인 점을 고려해 새로운 분교 모델이 필요하다고 봤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의 경우 권역에 따른 인구 불균형이 문제인 상황인데, 학교를 적정하게 균형 배치하기 위해 서울형 분교가 필요하다고 봤다”라며 “이전까지는 학교가 있는 곳으로 학생이 찾아왔는데, 앞으로는 학생이 있는 곳으로 학교가 찾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다양한 유형을 염두에 두고 서울형 분교 모델을 개발 중이다. 대표적으로 폐교 위기 학교를 인근 학교의 분교로 두고 일부 공간을 공동활용하는 ‘캠퍼스공유 통합학교 유형’이 있다. 오피스텔의 사무 공간 일부에 학교시설을 확보하는 등 민간 시설과 연계한 분교를 만드는 모델도 거론된다. 강남·서초 지역처럼 재개발이나 재건축 후 인구가 늘어 과밀학급이 발생하는 지역에는 아파트에 학교시설을 구축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본교로 통학하되 저학년은 안전을 고려해 집과 가까운 분교로 등교하는 분리형 분교도 계획에 있다.

규모가 작은 분교가 많아지면 적절한 교육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학생 수가 적어 다양한 관계 형성이 어려울 수 있다. 운동장, 체육관 등 시설이 충분히 구축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의 남는 공간을 학교복합시설로 지역과 공유하는 것처럼 공공시설의 일부를 서울형 분교의 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조금주 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 교수는 “지역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화된 형태의 작은 학교가 필요하다”며 “운동장 같은 시설이 없는 학교는 다른 큰 학교의 시설이나 공공 체육시설 등을 활용하는 등 다각화된 노력으로 제도를 보완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작은 학교를 없애거나 분교로 만드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학교는 지역사회에 젊은 주민들이 정주하도록 하는 필수시설이다. 폐교는 젊은이가 지역에서 떠나는 기폭제가 된다. 작은 학교와 사라지는 학교가 늘어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미래가 됐지만, 살릴 수 있는 학교는 적정하게 유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남 순천시 별량중학교에 학생들을 시내로 데려다주기 위한 스쿨버스들이 들어서 있다. 김나연 기자

통학구역을 확대·조정하는 ‘공동학구제’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공동학구제는 주소 이전 없이 큰 학교 학생이 다른 학구의 작은 학교로 전·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원래 학생들은 본인이 속해 있는 동·읍·면 지역 내의 학교로만 통학할 수 있다. 공동학구제를 시행하면 통학 가능구역이 넓어진다. 인근 과밀학교 학생은 ‘조금 멀지만 작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 전남교육청은 2015년부터 제한적 공동학구제를 시행 중이다. 시에 거주하는 학생이 작은 학교로 전·입학하면서 학생 수가 눈에 띄게 늘어 분교에서 본교로 승격하는 학교들이 생겨났다. 전남교육청에 따르면 소규모학교로 유입된 학생 수는 2015년 171명에서 2019년 1345명, 2020년 1986명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전북교육청도 2021년 공동학구제를 도입해 지난해까지 학교당 평균 14명 이상의 학생이 유입됐다.

“개별화 교육 실현하고, 학교 자율성 보장해야”

작은 학교만의 장점을 살릴 방법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소규모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개별화 교육’이 다. 학급 당 학생 수가 적어 교사가 학생 개개인에 신경 쓸 여유가 생긴다. 전교생이 적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들을 두루 알고 활발히 교류할 수 있다. 학습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정서·행동에 문제 개선이 필요한 학생이 소규모학교를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형빈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소규모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개별적 존재로 잘 관찰할 수 있다”며 “아이들 한 명 한 명 지원할 수 있는 개별화 교육의 원리를 소규모학교에 우선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시 송산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야외 공간에서 빈백에 앉아 학생들에게 기타를 가르쳐주고 있다. 김나연 기자
전남 순천시 송산초등학교에서는 5, 6학년 교실이 통합형으로 운영된다. 교실 사이에 벽 대신 여닫이문을 두어, 문을 열면 2개 교실이 합쳐진다. 김나연 기자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보장하고 학교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소규모학교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예를 들어 복식수업 또는 무학년·다학년제 등의 형태로 초중등 통합 교육과정을 적용하거나 수업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고시한 교과과정과 창의적 체험활동 외에 지역과 연계하고 단위의 특수성이 반영된 프로그램 등을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때 소규모학교의 역할이 명확해진다.

2013년 김춘진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은 학생 수 120명 이하 학교를 소규모 공동체학교로 지정하고 교육과정 편성 등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소규모학교 활성화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는데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초등정책팀장은 “이 법안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멀었던 학생 수 감소가 이제 현실이 됐다”며 “학교에 자율성을 보장해 성공시킨 사례를 적용해 중소도시 근교의 30~60명 규모 학교들을 살려야 지방소멸의 가속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예정된 미래-작은 학교 이야기①] 아이들이 사라진다, 학교는 작아진다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05291337001


☞ [예정된 미래-작은 학교 이야기②]한 명씩 눈 맞추고, 마을과 만나는 교실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06041356001


☞ [예정된 미래-작은 학교 이야기③]서울 한복판 ‘중·고’ 통합, 선생님은 순회…학교는 지금 실험 중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06121421001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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