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120만원 짜리 악필 교정 학원에 자녀 보내는 부모들...학교 글쓰기 교육은 반대해도 문해력 저하는 싫어

이학준 기자 2023. 6. 1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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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침해’ 논란에 학교서 사라진 일기쓰기
현직 교사 “악필에 문해력도 떨어지는 아이들 많아”
영어 조기 교육으로 영어 실력이 모국어 앞지르기도

“요즘 어린이들 글씨도 엉망이고 맞춤법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못하는 이유 뭔지 아시나요.

1~2학년생들한테 받아쓰기, 일기 쓰기 시키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합니다.”

최근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글이 조회수 450만건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초등학생들의 문해력 및 글쓰기 능력 저하가 다시금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일기 쓰기, 받아쓰기 등 글쓰기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자녀들의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는 학부모 중 상당수는 학교에서의 글쓰기 교육에 반대한다. 받아쓰기는 점수 매기기로 어린 자녀의 학업 의지를 꺾을 수 있어서, 일기 쓰기는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자녀들의 문해력 저하가 걱정스럽지만 공교육에 이를 맡길 순 없다는 학부모들이 눈을 돌린 곳은 사교육 시장. 최근엔 이러한 부모들을 대상으로 6개월에 120만원에 달하는 악필 교정 학원이나 글쓰기 학원이 성행하는 추세다.

◇ ‘48회에 120만원’ 악필 교정 학원 학생 60%가 초등생

19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전국에 10곳이 넘는 지점을 가진 A 악필 교정 학원은 지난 3년간 수강생이 약 30% 증가했다. 이 중 60%는 초등학생이라고 한다. 이 학원 수업료는 6개월 48회에 120만원. 1회당 2만5000원 꼴이지만, 학원은 보통 6개월 이상 교육을 받아야 악필이 교정된다고 홍보하기 때문에 학부모는 대체로 6개월치 120만원을 지불한다.

한 악필 교정 학원 원장은 초등학생들의 악필이 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글씨를 못 쓰는 아이들은 주로 산만한데, 아동학대 논란이 불거질까 봐 예전처럼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가르칠 수 없다”며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전반적인 집중력이 저하되고 학습 능력도 떨어진다”고 했다.

악필 교정 학원에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쓴 글. ‘처마 밑에서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어요’라고 시작되는 글은 무슨 글씨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독자 제공

이러한 상황에서 수혜를 입는 건 전국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글쓰기·논술 학원이다. 전국 약 1500개 지점을 운영하는 한 독서 논술학원은 2019년 이후 수강생이 매년 1만명씩 꾸준히 늘어났다. 학원 측에 따르면, 이 중 대다수는 초등학생이이다. 한 달 수강료는 16시간에 24만원. 대부분 책을 읽고 원고지에 독후감을 작성하면, 띄어쓰기와 맞춤법 등을 검토해 주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학원 대표는 “읽기 중심 학원이지만 글쓰기를 해야 아이들 문해력을 높일 수 있어 글쓰기 연습을 시킨다”고 설명했다.

◇ “글쓰기 교육하려면 통제 필수인데”…초등학교서 사라진 일기쓰기

초등 문해력 교육 실천 연구회가 2020년 발표한 ‘한글 교육에 관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교사 393명 중 69.2%는 ‘한글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교사 10명 중 7명이 한글 글자를 발음하거나 단어 의미를 파악하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학생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 문해력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글을 읽거나 직접 쓸 일이 없어진 것이 초등학생 문해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현재 초등학생들은 필요한 정보를 글보다 영상으로 취득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영상마저도 한 번에 시청하는 시간이 5분 이내일 정도로 집중력이 낮다.

수업하는 초등학생.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뉴스1

일선 교사들은 일기 쓰기 숙제가 이런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보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을 우려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7년 동안 근무하고 있는 교사 A씨도 5년 전부터 일기쓰기 숙제를 내지 않고 있다. ‘일기쓰기를 시켰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다’는 주변 교사들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현직 초등 교사들은 일기 쓰기 뿐 아니라 다른 글쓰기 교육도 어려움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13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글쓰기 교육을 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통제가 필요한데, 아이들이 억압받지 않는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길 원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지면서 교사들과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수 교사들이 학부모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글쓰기 교육 자체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A씨는 “6학년인데 기본 문법은 물론 띄어쓰기, 한자, 순우리말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면서 “문법이 틀렸다고 지적했다가 아이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교육청에 신고할 수 있어 젊은 교사일수록 더욱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렇듯 초등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저하한 반면, 최근엔 조기 영어 교육 열풍으로 어린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한국어를 앞지르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생 논술 강사로 일했던 A(33)씨는 “아이들이 한글 독서 글쓰기와 맞춤법은 엉망인데, 영어 작문은 엄청나게 잘한다”며 “영어독서 레벨은 3~4단계지만 국어독서 레벨은 1단계에 머무는 아이들이 엄청 많다. 영어유치원 출신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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