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 가구 50%’ 시대 어떻게 대응할까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2023. 6. 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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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시세가 기존 보증금보다 낮은 가구만 52.4%
무위험 가구와 위험 가구 상황에 맞게 대응해야

(시사저널=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역전세와 깡통전세 위험 가구가 최근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잔존 전세계약 중 역전세와 깡통전세 가구는 각각 102만6000호(52.4%), 16만3000호(8.3%)에 달한다. 전세 시세가 기존 보증금보다 낮은 가구가 전체 전세 가구의 절반을 넘고, 심지어 매매 시세가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가구도 상당하다는 얘기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전세 시세가 기존 보증금보다 낮은 역전세 가구가 52.4%를 차지하면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전세·매매가와 반대 흐름 보이는 월세

주택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이 모두 하락해 그렇다는 것인데, 일단 시세부터 살펴보자.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작년 1월을 정점으로 올해 4월까지 16.3% 떨어졌다. 현재 시세는 계약갱신청구권 시행 전인 2020년 7월과 2년 전에 비해 각각 3.7%, 11.2% 낮은 수준이다. 전세 시세 하락에 따른 역전세 위험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파트 전세수급동향지수도 2021년 8월 119.1을 정점으로 12월 98.5, 2022년 12월 70.3으로 저점을 형성한 후 지난 4월 현재 81.1을 기록 중이다. 100보다 높으면 수요 우위, 낮으면 공급 우위를 뜻하는데 100 이상이었던 시점(2022년 11월)이 가격 정점(2023년 1월)에 2개월 정도 선행했으며, 지금은 현저한 공급 우위 상태로 상당 기간 전세 약세를 예상할 수 있다. 매매가격지수는 작년 2월을 정점으로 올해 4월까지 12.6% 떨어졌다. 2년 전에 비해 4.6% 낮은 수준이다. 동일 기간 전세가격 변화(-11.2%)와 비교하면 하락률이 더 작다.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도 올해 4월 기준 66.4%로 2년 전 70.1%에 비해 3.7%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더 많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최근 매매가격이 조만간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과연 그럴까. 아파트 매매수급동향지수는 2021년 8월 123.9를 정점으로 12월 95.7, 2022년 12월 70.5 저점까지 급락한 후 올해 4월 현재 80.5를 기록하고 있다. 전세 수급과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으며, 수급이 개선되고 있지만 현저한 매도 우위 상태로 상당 기간 약세가 예상된다.

월세는 매매나 전세와는 상반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월세통합가격지수는 계약갱신청구권 시행 이전인 2019년 12월을 저점으로 작년 10월까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올해 들어 다소 하락했지만 4월 현재 2년 전 대비 2.6% 오른 수준이다. 금리 인상과 전세대출금리 상승으로 인해 전세를 대체하는 월세 수요가 꾸준히 증가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지표가 전월세 전환율이다. 올해 4월 현재 6.0%로 작년 2월 5.6%를 저점으로 0.4%포인트 올랐다. 이는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값으로 보증금이 1억원인 경우 6%에 해당하는 600만원을 12개월로 나눈 50만원이 매달 월세가 된다. 세입자는 대출금리보다 전월세 전환율이 낮으면 월세를 선호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전세대출금리 수준은 어떨까.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대출액 1억원, 만기 2년, 만기일시상환 변동금리는 은행 기준 3.23~6.91% 수준으로 지역이나 물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전월세 전환율이 대출금리 구간에 들어있다. 다만, 금리 평균치는 전월세 전환율에 비해 낮으므로 세입자 입장에서 월세보다는 전세를 선호할 수 있는 여건이다.

전세 가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전세 가구를 역전세 무위험 가구, 역전세 위험 가구, 깡통전세 위험 가구 등으로 나눠 살펴보자. 무위험 가구는 동일 보증금 신규 전세, 보증금 인상, 인상분의 월세 전환 등의 옵션이 있을 수 있다. 신규 계약과 이사 비용, 추가 또는 신규 대출 가능 여부와 적용 금리, 그리고 전월세 전환율을 비교해 최적 선택이 가능하다. 역전세 위험 가구는 주택전세보증금 반환보증 활용, 임대사업자의 임대보증금보증 활용, 임대인의 인하분 차입 유도, 인하분의 역월세 전환 등의 옵션이 있을 수 있다. 보증 기가입 여부, 추가 가입 가능 여부, 임대인의 대출 및 지급 여력 여부 등이 다 다를 것이므로 개별 여건에 따라 선택이 다양하고 각각의 조합도 가능할 것이다.

깡통전세 위험 가구는 보증 활용이 최우선이지만, 활용할 수 없다면 선택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임대인은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것이고, 매수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채권 순위에서 밀려 경·공매 절차를 통한 매수에 나서야 한다. 매수할 추가 자금이 없으면 법으로 보장된 최우선 변제분만을 건질 뿐이다. 전세사기 피해자인 경우 6월1일 시행된 전세사기특별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경·공매의 유예·정지를 신청할 수 있고, 경·공매 시 우선매수권을 가지며, 공공주택사업자에게 매입을 요청해 공공임대로 거주할 수 있다. 주거와 관련해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피해자들의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최소한의 구제 방안은 마련된 셈이다.

문제는 피해자의 정의인데 다음의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수사, 기망, 채무불이행 의도 등 임대인에게 사기 혐의가 있어야 한다. 파산 또는 회생 절차, 경·공매 절차 등 임대인의 채무불이행 피해 발생이 있거나 예상돼야 한다. 또한 임차인의 임차보증금이 3억원(2억원 이내 상향 조정 가능) 이하여야 한다. 여러 가지 고려가 있었겠지만, 제약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영우 국토교통부 토지정책관이 6월8일 전세사기 기획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전세 제도 폐지 여부는 시장에 맡겨야

이렇듯 역전세와 깡통전세, 전세사기 피해가 계속되면서 우리 사회의 특수한 제도인 전세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법규로 재단할 일이 아니며, 시장에 맡겨야 할 사안이다. 외국과 달리 월세 시장이 미발달한 상황에서 전세는 월세를 대신해 임대차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처음 주택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 한 장짜리 계약서에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당사자, 물건, 기간, 금액 등을 명기하고 나머지는 관행에 따른다는 게 전부다. 깐깐하게 규제하는 금융상품에 비해 금액이나 위험이 훨씬 크지만 금융소비자에 준하는 정보 공개, 중개인 및 판매자 책임, 임차인 보호는 형편없다. 정부는 사적 계약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기본부터 손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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