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우정의 합’ 눈이 시큰하도록 아름다웠던 그리움 앙상블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29]

양형모 기자 2023. 6. 1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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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강남 페리지홀, 올해 두 번째 그리움 앙상블 연주회
-슬픔을 꽃을 아름다움으로 피워낸 ‘유시연의 아리랑’
-민요와 동요의 새로운 해석, 그리움 앙상블의 ‘본색’을 만나다
‘30년 우정의 합’이 음악의 물레를 돌려 빚은 음악은 눈이 시큰하도록 아름다웠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 한 구석이 울컥하는 그리움(G.rium) 앙상블의 초청 연주회가 6월 1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구 페리지홀(PERIGEE HALL)에서 열렸다. 5월 31일 예술의전당 IBK홀 연주회를 전석 매진시킨 그리움 앙상블의 올해 두 번째 연주.

예술의전당 연주회가 헨델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클래식 레퍼토리에 집중했다면, 이날 페리지홀 연주는 좀 더 그리움 앙상블의 색깔이 강렬해졌다. 1부와 2부 연주에 앞서 비올리스트 신윤경 교수(국민대 부교수)가 혼자 무대에 올라 연주될 곡들을 설명해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첫 연주곡은 모차르트의 ‘플루트 4중주 D장조 K.285’. 개량되기 전의 플루트를 ‘썩 내켜하지 않았던’ 모차르트지만, 그가 작곡한 플루트 작품들은 천재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이 작품에서 모차르트는 모든 악기에게 동등함을 부여하는 대신 대놓고 ‘플루트 우대’를 악보 위에 풀어놓았다.

플루티스트 윤혜리 교수(서울대)의 연주는 발걸음이 가볍고 밝아 어디까지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모차르트의 “자, 모두들 즐겁게 들어주세요”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연주다.

E. 도흐나니의 ‘현악 3중주를 위한 세레나데 C장조 Op.10’는 보수적인 도흐나니로서는 꽤 진보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2악장의 로망스에서 신윤경 교수는 단원들의 피치카토를 타고 더없이 황홀한 비올라의 로망스를 들려준다. 3악장은 상당히 강렬한 세레나데다.

1부의 끝 곡은 슈만 ‘피아노 5중주 E♭장조 Op.44’. 그리움 앙상블은 이 작품의 1악장만을 연주했는데, 이는 예술의전당 연주 때와 같다.

2부에서 그리움 앙상블은 관객을 향해 한발 더 바짝 다가와 앉았다. 4곡 중 3곡은 국내 작곡가들이 국악을 작곡 또는 편곡한 곡이었다. 빌라-로보스 ‘플루트와 첼로를 위한 제트 휘슬’에 이어 ‘아리랑(양준호 편곡)’, ‘경복궁타령-반짝반짝 작은별(김한기 작곡)’, ‘새야새야 파랑새야 주제에 의한 환상곡(홍승기 작곡)’이 연주됐다.

‘아리랑’은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교수(숙명여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곡. 그의 연주 영상은 일명 ‘유시연의 아리랑’으로 회자되며 유튜브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유 교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국악에 대해 깊이 천착하며 새로운 해석과 연주법을 숙성시킴으로써 클래식 음악계에 파격과 충격을 던지는 한편 학구적인 결실을 맺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날 연주에서 유시연 교수는 바닥이 닿을 정도로 아리랑의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불리는 하이페츠의 ‘비탈리 샤콘느’는 이제 적어도 한국에서는 ‘유시연의 아리랑’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슬픔뿐이랴. 해금과 아쟁을 섞어 놓은 듯한 바이올린의 음색은 슬픔의 꽃을 아름다움으로 피워냈다. 이날 연주에서 가장 많은 관객의 박수가 쏟아졌다.

김한기 작곡의 ‘경복궁 타령-반짝반짝 작은별’은 지난해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작곡된 작품. 우리 전통민요 ‘경복궁 타령’과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가 작곡한 ‘반짝반짝 작은별’에서 주제를 인용했다. 각 악기가 마치 ‘역할 바꾸기 놀이’를 하듯 재미있는 편곡이 돋보였다.

이날 연주회의 마지막 곡인 ‘새야새야 파랑새야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새소리를 묘사한 음형과 후기낭만의 화성적 색감이 어우러진 곡으로 즉흥적 요소를 가미해 작품을 구성했다. 바이올린(이경선)과 플루트(윤혜리)를 위한 협주곡 같은 느낌의 곡으로 그리움 앙상블의 총체적 기량을 한줌 남김없이 폭발시킨 멋진 연주였다. 최초의 1인으로 시작해 한 명 한 명 연주에 가담하는, 마치 거리의 버스킹 공연을 보는 듯한 재미도 있었다. 이경선 교수(인디애나주립대 종신교수)의 바이올린 연주는 그야말로 불타오르는 명연이었다.

그리움 앙상블은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 피아노로 구성된 6인조 악단이다. 이경선 교수와 유시연 교수의 바이올린은 제1, 2 바이올린이라기보다는 록밴드의 ‘트윈기타’처럼 각기 매력을 드러냈다. 이경선 교수가 강렬하면서 화려한 쪽이라면 유시연 교수는 같은 화려함이라도 섬세함이 발라져 있다. 이 비교불가의 ‘트윈 바이올린’에 멜로디와 배킹(Backing)을 오가며 지적인 밸런스를 들려준 비올라, 무대 바닥을 울리는 듯 깊은 소리로 앙상블의 중심을 잡은 첼로(최정주 교수·추계예대)가 합세해 ‘30년 우정의 사운드’를 완성했다. 여기에 이형민 교수(단국대)의 피아노는 모든 연주자들의 깊은 지지와 신뢰를 받으며 연주의 확고한 반석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의 피아노가 펼친 손바닥은 평원처럼 광활해 단원들은 그 위에서 마음껏 기량을 쏟아내며 음악적으로 뛰놀 수 있었다.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몇 번이나 그리움 앙상블을 무대로 불러냈고, 결국 앙코르곡 ‘나의 살던 고향’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민요와 동요를 새롭게 편곡해 음반, 다수의 무대를 통해 선보여 온 그리움 앙상블의 ‘본색’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이었다.

앙코르가 끝나고, 연주자들이 모두 퇴장한 후에도 관객들은 오래도록 로비에 머물며 연주의 긴 여운을 즐겼다. 돌아서면 바로 다시 그리워지는 음악. 이것이 그리움 앙상블이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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