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의원을 주목하는 이유 [편집인의 원픽]

2023. 6. 1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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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안내견과 함께 국회 단상에 나와 질의하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회의사당을 흔히 ‘민의의 전당’이라고 부른다. 국민의 뜻이 투표로 뽑힌 국회의원(대의기관)을 통해 모이고, 실현되는 공간이라는 얘기다. 진짜 그런가. 그렇다고 답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싶다. 우선, 오래기간 국회의사당을 출입처로 삼았던 나부터 ‘아니오’다. ‘민의의 전당’이라기 보다는 ‘권력투쟁의 전장(戰場)’에 가깝다. 정부 여당과 야당이 국정 주도권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힌다. 각 정당 내부에서도 주류, 비주류로 갈려서 권력 싸움을 벌인다. 정치라는 게 본질적으로 권력(힘)을 얻기 위한 싸움이니 점잖은 영역은 아니다. 그래서 정치부 기자들은 갈등 국면에 주목한다. 여기저기 충돌과 갈등의 현장을 쫓아가다보면 모자이크 맞추듯 정치 판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연일 쏟아지는 진영 대결 보도에서 벗어난 정치 기사가 모처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시각장애인 여성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단상에 올라 장애인 정책 관련 질의를 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에 관한 기사다. 여느 여당 의원들처럼 야당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늘 야당 의원들이 그렇듯 총리나 장관을 힐난조로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그저 왜 현행 법과 수사 관행이 장애인 학대 피해자에 불리한 지, 장애인 예산은 왜 그렇게 인색한 지를 차분하게 따졌을 뿐이다. 질문을 끝낸 김 의원에 의원들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장면(일부 의원은 기립 박수)은 극히 이례적인 만큼 신선했다. ‘여야에 울림 준 김예지 의원 “野 협치 약속 이어지길”’(6월16일자 조병욱·김현우 기자) 기사는 대정부질문 다음날 김 의원 인터뷰를 통해 그의 바람을 담았다. 대정부질문에서 보여준 화제에 그치지 않고, 정치인 김예지를 주목한 것이다.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인물이다.  

◆“나에게는 일상, 지속적 관심 가져달라”

김 의원은 세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의 날이나 사건사고 때만 이슈가 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인 김 의원이 사전에 예행연습을 통해 단상까지 걸어가 국회의장에 인사를 하고, 질문을 하는 그 과정 또한 그에게는 ‘일상’일 따름이다. 그는 “단지 다른 방법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고 특별한 게 아니다. 장애인을 위해선 다른 방법으로 사는 사람을 위한 지원이 필요한 것이지, 특별한 것을 배려하는 식으로 해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김 의원처럼 특별할 것 없는, 단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시적 혜택이나 특별한 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3월28일 장애인들의 출근길 시위 현장에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김예지 의원.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가 대정부질문 마지막에 언급한 코이라는 물고기 이야기에 그런 바람이 담겨있다. “코이는 작은 어항 속에서는 10㎝를 넘지 않지만 수족관에서는 30㎝까지, 강물에서는 1m가 넘게 자라는 고기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기회와 가능성, 성장을 가로막는 다양한 어항과 수족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국민이 기회의 균등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강물이 돼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저 또한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분들을 대변하는 공복으로서 모든 국민이 당당한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대정부질문 다음날 당내 회의에서 “민주당도 입법·예산·정책으로 응답하겠다. 국회가 장애인을 위한 강물이 되도록 여야가 힘을 모으겠다”고 호응했다. 야당 원내대표가 여당 의원의 대정부질문에 공개적으로 화답한 것 또한 드문 일이다. 김 의원은 인터뷰에서 “진정한 협치를 약속하신 만큼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정기국회, 예산국회에서 장애인 관련 정책, 예산에 여야 관심이 반영된다면 김 의원 말처럼 ‘협치’의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김예지 의원의 소셜 미디어
◆당론보다는 소신 앞세운 정치인

김 의원을 주목하는 이유는 소신에 당당한 의정 활동을 보여온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던 현장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시민을 볼모로 한 시위에 여당 내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올 때였다. 그는 시위에 나선 장애인들에게는 “헤아리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해서, 적절한 단어 사용으로 소통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고, 불편을 겪는 시민들에게는 “정치권이 겪어야 할 불편을 여러분들이 겪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경청과 조율을 약속했지만 장애인 시위와 정부·지자체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이고,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이니까. 독립적인 입법 기관이니까 왜 그분들이 그 곳에, 그 시간에 있어야하는 지 살펴보고 앞으로 누구도 불편을 느끼지않도록 제도를 만들기 위해 그곳에 갔다.”(시사인)고 했다.

최근에는 국민의힘이 반대 당론을 정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간호사 출신인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과 둘이서다. “간호법안을 공동 발의한 의원으로서 책임지는 게 입법기관의 일”이라는 게 그의 해명이었다. 의원들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당론은 여야 협치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헌법 제46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 국회법 제114조의 2항이다. 하지만 의원들이 당론과 달리 표결하기는 쉽지 않다. 김 의원이 공천과 무관한 비례대표 의원이라서 가능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가 진정한 ‘민의의 전당’이 되려면 의원들 개개인의 소신, 책임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김 의원의 ‘작은 목소리’를 크게 들어야 한다. 

P.S. 취재한 조병욱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김 의원과는 평소 친분이 있는지. 
 
“따로 식사를 한 적은 없습니다. 평소 의정 활동을 열심히 하신다는 얘기를 들어서 수습기자들이 국회 취재를 왔을 때 별도로 면담한 적은 있습니다.” (김 의원은 지난 2월9일 세계일보 수습기자들과 장애인 정책과 정치 현안에 대해 환담을 나눴다고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인터뷰하면서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진정성이 느껴졌다. 다른 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재선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데, 김 의원은 자기가 진짜 이뤄야할, 대변해야 할 장애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일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저한테도 평소에도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김 의원은 출근길 장애인 시위 때 현장에 직접 찾아가고, 간호법 표결 때도 당론과 달리 찬성표를 던졌는데.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정치인 같다.”
 
<관련기사>
 
① 與野에 울림 준 김예지 의원 “野 협치 약속 이어지길”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15520311
 
② 정치권에 울림 준 김예지 의원의 ‘코이 물고기’… “단지 다른 방법으로 삶을 사는 사람”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1650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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