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전세사기 알고 있었다 … 손 놓은 이유는?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2023. 6. 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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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특별법 제정됐지만
실질적인 대안마련은 아냐
인수위 때 이미 예고된 참사
전세가구 17%만 보헙 가입
보증금 미반환 우려 여전한데
정부는 보험 내실화 뒷짐만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시
깡통전세 연대책임 가능해져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특별법 국회 법안소위 합의안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3.5.23 [한주형기자]
전세사기로 그동안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61%가 2030세대, 피해금액은 4599억원(2022.07~2023.05)에 달했죠. 검찰은 경기도 구리시 전세사기 일당에게 징역 7~8년형을 구형했습니다.

4599억원이라고 하면 엄청 많아보이지만, 사실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정부가 6가지 요건(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 서민 임차주택, 다수 피해자 발생, 보증금 상당액 미반환 우려, 전세사기 의도가 있는 주택, 경공매 진행)에 한해서만 통계를 냈기 때문이죠.

국회는 전세사기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특별법의 내용은 사기 피해자에게 피해주택 우선매수권 부여 및 각종 금융지원(만기연장, 최우선변제금 초과분에 대해서도 1%대 저금리 대출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빚은 못갚아주지만 최대한 금융지원 해줄테니 성실히 살면서 갚아라’는 내용입니다. 피해구제는 아니고 피해지원에 방점이 찍혀있죠.

피해자 단체를 중심으론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산소호흡기만 달아줬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접근해봐야 할까요?

인수위 때 이미 예견된 ‘깡통전세’
취재결과 정부 당국자들은 깡통전세(집값이 하락해 전세금을 못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가 사회적 문제가 될 것임을 지난해 3~5월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가동시기 때 이미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집값이 하락하면 필연적으로 깡통전세가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이 대목에서 한 고위당국자는 “왜 이번 정부가 전세사기 프레임을 짰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세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맺는 사적계약입니다. 원칙상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죠. 그래서 정부는 깡통전세서 앞서 말한 6가지 요건(다수 피해자 발생, 사기 의도 등)으로 범위를 굉장히 좁히며 ‘전세사기’에 한해서만 피해자 지원에 나섭니다.

이는 정부가 사적계약인 전세제도에 대해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비춘 것으로 풀이됩니다.

해당 고위 당국자는 “지금의 전세제도는 다주택자, 부동산업자 등 돈을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청년 등 돈을 잃는 사람이 따로 있는 구조”라며 “전세사기가 아니라 깡통전세 전체로 봐서 공적영역을 통해 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정부 인수위 때 깡통전세가 우려되니 ‘모든 집주인에게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고 하네요. 이는 전세사기로 범위를 좁힌 정부 방침과 다르게, ‘공적 개입’을 광범위하게 하자는 주장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이 주장이 현실성이 있는지 따져봐야겠죠? 통계를 통해 따져보겠습니다.

전세보증보험, 전체 전세가구 17%만 가입
전세보증보험의 92%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이뤄집니다. 고로 HUG 자료를 봐보겠습니다.

지난해 전세보증보험(전세반환 항목) 실적은 55조4510억(23만7797건)입니다. HUG가 1건 당 약 2억3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보증하게 된 셈입니다. (현재 전국주택 전세보증금 평균가격이 2.2억원이어서 얼추 수치는 맞습니다)

지난해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량은 총 283만3522건 (국토교통부 자료)에 달합니다. 이 중 전세 거래량은 48%(약 136만 건)이죠.

HUG 전세보증보험 통계. <자료 = 국회 국토교통위 검토보고서>
이를 보면, 전세 임차인(136만) 중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가구수(23만)는 17%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전세입자의 무려 80% 이상이 보험에 가입하고 있지 않는 것이죠.

지난해 HUG 보증보험 대위변제금액(집주인 대신 보증금을 반환해준 액수, 사실상 손실액)이 9241억원에 달합니다. 올해도 1~4개월 동안 8144억원을 기록했고, 이 속도라면 2조원을 넘을거라고 하는데요.

지난해 55조4510억원의 보증실적을 통해 HUG가 얻은 전세보증보험 수입료는 대략 700~800억원(보증료율 0.14%로 가정)인 듯 합니다. 이 건과 관련해 HUG도 현재 엄청난 적자에 직면해 있는 것이죠.

만일 위의 고위당국자 말대로 모든 전세가구에 대해 ‘집주인의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한다면?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보증보험 가입가구가 전체 전세입자 가구의 17%에 불과하므로, 보증료 수입은 5배 증가합니다.

그렇게 되면 약 3500억원 정도 매년 수입이 있는 것이 되겠네요. 이것만으로는 연간 1~2조원의 대위변제금액을 충당하긴 힘들 순 있겠으나, 또 다른 효과가 있습니다.

앞으로 집주인은 전세보증보험 가입 문턱(전세가율 90% 이상)을 넘어야하므로, 무자본 갭투자는 더 이상 못하게 됩니다. 만일 깡통전세 요건인 전세가율 70%로 HUG 보증보험 가입문턱을 높이면? 그러면 더더욱 대위변제를 할 일이 안생기겠죠.

지금은 대위변제액이 연간 1~2조원에 달하지만, 집 값 상승기여서 깡통전세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던 2019년엔 대위변제액이 연간 3000억원대에 불과했습니다. 모든 전세주택에 대한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에 따른 연간 HUG 보험수입료 추산치(3500억원)와 비슷하네요.

즉, 전세보증보험이 진정한 ‘보험’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전세에 대한 연대책임이라고 할 수 있죠. (마치 건강보험처럼요)

전세보증보험 부실화 조장하는 정부
하지만 국가는 그렇게 하질 않고 있죠. 정확히 말하면 할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주택임대사업자는 집주인으로서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해야 하지만, 일부 요건선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열어둔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이를테면, 주택가격이 5억원이고 전세보증금이 2.5억원이었다고 가정하고 아무런 채무가 없다고 합시다. (전세가율 50%)

이 같은 우량 임대주택은 담보권 설정금액(0원)+임대보증금(2.5억원) - 주택가격 60%(3억원)가 0 이하이기 때문에 집주인이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량주택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집주인에게 나름의 인센티브를 준 것이죠.

다만 이를 두고 또 다른 주택 관련 당국자는 “도대체 어느 보험이 우량가입자를 배제하느냐”고 반문합니다. 보험의 특성은 일종의 ‘연대책임’ 입니다. 마치 건강보험 가입을 모두에게 해서, 돈 많고 병원 잘 안가는 사람(우량 건강보험 가입자)이 사회적인 연대책임을 지는 것처럼 말이죠.

우량 가입자에게 오히려 보험료를 내지 말라고 하는 정부의 정책은 집값 기득권(집주인)을 지키고 깡통전세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대목입니다.

남영우(왼쪽부터) 국토교통부 토지정책관, 황병주 대검찰청 형사부장, 윤승영 경찰청 수사국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 기획조사 결과 및 특별단속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2023.6.8[이충우기자]
관가 일각에선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관장하는 한 축인 법무부가 주택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보니, 이를 우선시하지 않고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그러다보니 깡통전세 현상을 ‘일부 전세사기’로 축소하고, 사기범을 감방에 넣어놓고 언론에 대서특필하는 식으로 ‘보여주기식 처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근본적인 대안일까요? 집 값 추가 하락시, 깡통전세로 인한 사회초년생, 2030 깡통전세 피해는 계속될 겁니다.
전세보증보험 의무화되는 시대 와야
깡통전세 피해경험에 대한 기가막힌 비유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피자 한 판에 5조각이 있는데 10명이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형국이다. 10명이 남은 5조각을 가지고 누가 먼저 가져갈 것이냐로 눈치싸움을 한다. 피자조각을 먼저 가져갈수록 그나마 더 많이 챙겨갈 수 있고, 점점 파이는 줄어든다. 피말리는 싸움이었다”

비단 전세사기 피해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깡통전세 피해자들도 느낄만한 일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적개입이 필요한데, 이번 기획선 ‘전세보증보험 의무화’를 예로 들었습니다.

물론 집주인에게 과도한 규제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증보험 한도(최대 7억원)를 넘는 고가 주택, 이를테면 20억 주택까지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경우에, 연간 244만원의 보증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준조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20억원 중 5억원만 예금에 넣어도 보증보험료보다 훨씬 높은 이자수익이 있습니다. 못낼 형편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 전세 집주인들이 전세를 주는 행위가 ‘연대책임’임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무자본 혹은 수백만~수천만원에 불과한 자금을 가지고 갭투자를 통해 ‘치고 빠지기’하는 집주인이 아니라,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지고 임대사업을 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죠.

집주인에게만 규제를 하는 것이 불합리한다면, 집주인과 세입자 절반씩 보증료를 나눠서 내도록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세입자에게도 ‘전세 = 공짜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주면서, 나름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으니 말이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4.27[이충우기자ㅣ]
HUG가 지난해 보증한 전세보증금만 55조원이고, 이게 17%에 불과하다고 말씀드렸죠? 산술적으로 보면 연간 주택 전세보증금은 대략 3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손쉽게 건들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에스크로 계좌(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맘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취지, 특정계좌에만 전세보증금을 예치)를 공식석상에서 언급했다가 결국 도입을 철회한 것이죠.

다만 전세보증보험료 의무화를 통해 연간 3500억원의 비용을 들이면서 전세에 대한 나름의 안전핀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꽃다운 청년들의 희생을 막으면서, 보험제도에 따른 사회적 연대의식도 높일 수 있게 돼죠.

국토교통부가 안심전세앱을 출시하며 세입자가 직접 깡통전세 유무를 알게 했지만, 이는 사실상 “자가체크앱을 만들어줬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똥을 피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대안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무엇이 국가인가라고 반문하게끔 만드는 대목이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사서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안정을 이루겠다”고 말했죠. 전세제도 개편을 예고한 그가,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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