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학력 제한 풀어달라" 간호조무사 측 주장만 가득 찬 '반쪽' 토론회?

정심교 기자 2023. 6. 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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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조무사협회, 50주년 맞아 국회서 '학력 제한 철폐' 토론회 열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철폐 법안 연내 법안 통과시킬 것" 약속
토론자 대다수가 철폐 '찬성'… 간호협회·양성기관 등 '반대' 측은 없어
복지부 간호정책과장, 토론회 첫 발언 후 퇴장…의견수렴 못 해 '빈축'
(맨 앞 줄)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과 국회의원을 비롯해 간호조무사 500여 명이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철폐'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간호조무사는 의료법에 언급되는데도 의료법상 '의료인'은 아니다. 게다가 보건의료 직종 가운데 최하층 대우를 받으며 갑질을 당하기 일쑤다.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 제한의 비합리성을 해결하려면 간호조무사의 직종·업무에 대한 명확한 정의부터 정립해야 한다."(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소장)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한 시험에 응할 수 있는 자격에서 학력 제한을 폐지하려는 간호조무사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간호조무사 87만 명의 이익 단체인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학력 제한 폐지 토론회'를 개최하며, 양질의 간호조무사를 양성하려면 응시 자격 학력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의료법 제80조에 따르면 간호조무사의 응시 자격은 △특성화고등학교의 간호학과를 졸업한 사람 △고등학교 졸업 학력 인정자로서 학원의 간호조무사 교습 과정을 이수한 사람 등이다. 이들은 '특성화고가 아닌 일반계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전문대나 4년제 대학교에서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해도 간호조무사가 되려면 간호조무사 양성학원을 새롭게 들어가야 한다는 것', '양질의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 전문대에서 간호조무학을 배우고 싶지만, 전문대에 간호조무과가 없어 선택권마저 없다는 점' 등을 들며 법적 응시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16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간호조무사와 국회의원들이 '간호조무사 전문대 양성'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날 토론회 현장엔 간호조무사 500여 명을 비롯해 국회의원이 대거 등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의힘 조명희·최재형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주관, 보건복지부가 후원했다.

이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을 철폐하는 법안을 연내 통과시키겠다"며 간호조무사의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조명희 국민의힘 원내부대표 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은 "현행 의료법 제80조는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에 응할 수 있는 자격을 고졸 학력으로 제한하는 '학력 상한선'을 두고 있어 간호조무사 지망생의 배울 권리를 제한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사말을 하는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 /사진=정심교 기자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인사말에서 "많은 간호조무사가 '간호조무사'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근무하고 싶지만 많은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로 불리는 배경에는 응시 자격 학력 제한이 있기 때문"이라며 "간호조무사로 당당히 불리기 위해선 학력 제한부터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임강섭 복지부 간호정책과장,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 신희복 법무법인 공간 대표변호사, 황성완 백성예술대 보건행정학 교수, 전동환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기획실장, 김시영 아시아투데이 의학전문기자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하지만 토론회가 시작하자마자 임강섭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발언 순서를 맨 앞으로 바꾸며 발언 후 곧바로 퇴장했다. 참가자 상당수는 "토론자들의 목소리가 복지부에 전달될 기회가 사라졌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좌장을 맡은 김순례 전(前) 국회의원도 "간호조무사협회는 오늘 토론회의 속기록을 복지부에 꼭 전달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게다가 토론자에는 대한간호협회, 간호조무사 양성기관 측 패널이 아무도 없어 '반쪽짜리' 토론회가 됐다는 빈축도 샀다. 신희복 법무법인 공간 대표변호사는 "오늘 이 자리에 대한간호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다양한 직역이 함께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며 "현행 의료법이 가진 문제점 중 왜 학력 제한이 문제 되는지 직역 간 논의됐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간호조무사 양성기관 측은 전문대 내 간호조무과 개설을 반대해왔다. 특성화고교 출신의 간호조무사가 차등 대우를 받을 것이고,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인 특성화고교와 사설학원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다. 또 일반 전문대나 4년제 대학교를 나왔어도 간호조무사가 되고 싶으면 얼마든지 사설학원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데 굳이 전문대에 간호조무과를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과 관련해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시작 전. 임강섭(오른쪽에서 두 번째)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토론회 첫 발언 후 일정상의 이유로 자리를 떠났다. /사진=정심교 기자

간호조무사 학력에 대한 논쟁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사립 전문대학인 국제대는 간호조무사를 양성하기 위한 간호조무과 신설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법제처에 보건복지부령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이하, 간호조무사 등 규칙)에 대한 법령 해석을 요청했다. 법제처는 "전문대학에 간호조무사 양성과가 개설된다면 이를 졸업한 사람에게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이 부여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에 국제대는 간호조무과를 새로 만들고, 2012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했다.

하지만 당시 복지부가 국제대 간호조무과 신설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2012년 1월 20일, 복지부는 전문대학 간호조무과 졸업자에게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을 주지 않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간호조무사 등 규칙' 일부 개정안을 제출했다. 당시 복지부가 개정안을 제출한 핵심 이유는 두 가지였다. △전문대학을 통한 간호조무사 양성은 현재의 양성체계 전반의 개편이 필요한 사항이며 △교육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복지부가 간호조무 인력 양성 체계 개편안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전문대 내 간호조무과 신설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토론회에서 첫 발언을 시작하는 임강섭 복지부 간호정책과장. /사진=정심교 기자

박이대승 소장은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을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간호조무사 직종과 업무에 대한 명확한 정의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대학의 간호조무과 신설 여부는 대학의 자율성에 속한다는 점 △전문대 간호조무과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점을 들며 "고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학과 신설에 대한 권한은 대학에 있으며, 정부가 이를 규제할 방법은 없다"고 주장했다.

임강섭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수요가 있다면 대학에서도 간호조무학 과정이 열릴 것"이라며 "간호조무사에게 양질의 교육과정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은 동의한다. 기회 자체를 국가가 법·제도로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임 과장은 "다만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이 오래전부터 존재해오고, 특성화고교나 간호조무사 양성 학원 등이 간호조무사 양성에 기여해온 게 있어 그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며 "그들이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철폐를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은 해봐야 한다. 같은 논의 테이블에서 얘기 나눠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임 과장은 이어 "현행 간호인력 체계에서 간호사, 전문대 출신 간호조무사, 고졸 출신 간호조무사가 있다면 합리적 차등을 어떻게 둘지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 내에서 논의하면서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는 합리적이면서 바람직한 방향을 찾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진 왼쪽부터)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도 간호조무사의 학력 제한을 철폐하는 데 동의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의사·병원들은 간호조무사의 학력 제한 철폐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 가운데 간호조무사라는 명찰을 가리는 사람이 많다"며 "현재 간호조무사들은 간호사의 '조무' 역할이 아닌, '실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조무사라는 이름보다 간호실무사를 원한다고 들었다. 간호조무사라는 이름이 간호실무사로 바뀐다 해도 반대할 의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재찬 대한병원협회 상근부회장은 "모든 의료서비스를 의사에게 다 받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역할을 분담하는 게 마땅하다"며 "(간호조무사의) 전문성이 향상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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