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노래로 우리를 위로하는 BTS 정국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2023. 6. 1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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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사진=유튜브 정국 커버 영상 캡처

대중음악에서 커버(cover)란 노래든 연주든 춤이든 평소 흠모해 오던 남의 것을 자신의 퍼포먼스에 담는 행위를 뜻한다. 그래서 커버란 개인 취향의 고백과 스타일의 쟁취를 담보한 일종의 예술적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하는 사람의 재해석이 따르게 마련이고 때론 그것이 원곡을 넘어서는 인기를 누릴 때도 있다(클래식과 재즈는 커버를 창작으로 여긴 지 이미 오래된 장르들이다). 나에겐 김광석이 앨범 '다시 부르기'에서 다시 부른 노래들과 루퍼스 웨인라이트, 마이클 잭슨이 커버한 비틀스 노래들이 그렇다. 커버는 이미 알려졌거나 인기를 누렸던 곡들을 부르는 게 대부분이라 상업적 안정성 면에서 늘 기획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그 많은 노래 오디션 및 서바이벌 프로그램들과 가수, 밴드가 한 템포 쉬어갈 때 내곤 하는 커버 앨범들이 멈추지 않고 대중 앞에 노출되는 이유다.

물론 지금 다룰 주제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커버는 커버인데 홀로(가끔 듀엣으로) 하는 커버, 정확히는 제이플라나 펜타토닉스 같은 '커버 전문' 가수들이 아닌 일반 프로 가수들이 평소 부르지 못했거나 불러보고 싶었던 노래들을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부르는 비공식적 경향이다. 하는 본인은 노래 연습도 되고 평소 바람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좋고, 듣는 사람들은 스타의 색다른 모습을 보는 재미에 지난 유행가의 다른 해석까지 들을 수 있어 즐겁다. 이는 언뜻 혼자 부른다는 점에서 딩고 뮤직(Dingo Music)의 '킬링 보이스'와 비슷하거나 그걸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면에선 '오디지(ODG) 노래방'을 조합한 듯도 보인다. 다만 가수들이 자기 채널에 올리는 건 '커버'라는 점에서 다르다. 듣는 쪽도 학생 한 명을 앉혀 진행하는 '오디지 노래방'과 달리 가수들의 커버 영상은 '킬링 보이스'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한다. 물론 영상이 전하는 느낌이 노래방에서 노래 잘하는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줄 때 남몰래 들이치는 감동과 닮았다는 점에서 가수들의 커버는 '오디지 노래방'의 정서와 통하는 면도 있긴 하다.

가수들의 커버 유행은 수년 전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꾸준히 하고 있는 반면, 다른 일로 바빠 업로드가 드물어졌거나 멈춘 사람도 있다. 가령 90여 개 커버 영상을 자신의 채널에 올려놓은 임영웅은 몇 년 사이 완전히 달라진 입지 때문인지 4년 전부터 사실상 업로드가 멈춰 있다. 김범수도 '범노래방'을 통해 꾸준히 커버 영상을 올리다 최근엔 뜸하다. '커버(covers)'라는 직관적 목록을 따로 열어놓기까지 한 악뮤의 이수현도 그다지 업데이트에 적극적이진 않아 보이고, 커버 잘하기로 소문난 다비치의 이해리 역시 새로 영상을 만들기보단 과거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아델의 'Someone Like You'를 부르는 등 공연과 방송에서 부른 커버 영상들을 유튜브 채널에서 재활용하는 편에 더 가깝다. 사실 가수들의 커버란 것이 팬데믹 때 활동 제약을 받아 불가피하게 선택했을 수도 있고 콘서트에서 앙코르 때 양념처럼 쓰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본인이 즐거워한다는 점에 커버가 가진 본질적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BTS의 정국이다.

사진=정국의 'NIGHT DANCER'커버 영상 캡처 

지난 5월, 정국은 팬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에서 큼지막한 안경을 낀 수수한 모습으로 개인 라이브 방송을 했다. 그는 이 방송에서 최근 틱톡 댄스 챌린지(12억 회 이상 조회수 기록) 등 숏폼 플랫폼으로 입소문을 탄 제이팝 뮤지션 이마세(imase)의 'NIGHT DANCER'를 언급하고 실제 부르기까지 하며 팬들과 소통했는데, 박효신의 '찬 바람이 불던 밤'부터 애덤 르빈의 'Lost Stars'까지 이미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많은 커버를 해온 그에게 커버는 일상이었기에 이날 분위기는 여느 때처럼 자연스러웠다. 다만 부른 사람이 1년 여 전 공개한 'Falling' 커버 영상을 6500만뷰까지 끌어올린 BTS의 멤버였던 터라 이 커버의 파급력은 컸고, 급기야 곡을 만든 이마세까지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정국에게 따로 감사하는 데까지 이른다. 이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마세'와 'NIGHT DANCER'가 핫 키워드로 떠오른 건 물론이다. 이처럼 스치듯 평범한 커버처럼 보여도 그걸 한 사람의 영향력, 인지도에 따라 원작자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거머쥘 때도 있다.

정국이 잠자리에서도 머리 속을 맴돈다고 말한 'NIGHT DANCER'는 김준수(XIA)의 관심도 끌었다. 이번엔 '댄스 커버'다. 그는 두 달 전 이 곡의 댄스 챌린지 영상을 유튜브 쇼츠를 통해 공개해 17만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영상은 그의 유튜브 채널 속 '댄스'라는 재생목록에 포함돼 있고 여기엔 쇼츠 외에도 기존 방송 프로그램과 콘서트 무대, 뮤직비디오 등에서 그가 선보인 댄서로서 중요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또 같은 채널엔 케이팝과 제이팝, 뮤지컬 삽입곡을 두루 부른 '커버'도 보인다. 거의 연습 반 공연 반에 가까운 해당 영상들은 그대로 보는 사람들에게 '방구석 콘서트장'을 만들어 줬을 법 한데, 앞서 비교한 '킬링 보이스'과 '오디지 노래방'의 이상적인 조합이라 해도 되겠다.

사진=이지혜 'Kitsch' 커버 영상 캡처

그룹 샵(S#ARP) 출신의 이지혜도 '밉지 않은 관종언니'라는 자신의 채널 속 '관종언니의 뮤직라이프'를 통해 커버 노래 영상들을 심심찮게 올리고 있다. 그의 채널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윤하와 악뮤, 뉴진스와 아이브 등 한참 후배들의 노래를 즐겨 부르는 모습이다. 그것들 중 가장 최근 영상은 '20년 절친'이라는 채정안과 함께 부른 아이브의 'Kitsch'였다. 과거 그룹의 메인 보컬답게 모든 노래를 무난하게 소화하는 그의 열창은 예능 쪽으로 기운 듯한 자신의 정체성이 아직 음악의 끈도 놓지 않았다는 걸 에둘러 보여주는 듯 하다. 이처럼 가수들의 커버는 리스너와 싱어의 사이를 좁혀주기도 하지만 선후배 가수들의 간격을 좁혀주기도 한다. 이지혜처럼 잠시 내려놓은 자아실현의 만족감은 그 사이 덤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 양질의 커버 영상은 음원 발매로도 이어진다. FT아일랜드의 이홍기 이야기다. 그는 각각 3, 4개월 전 자신의 유튜브 채널 '홍기종기'를 통해 공개한 성시경의 '희재'와 이승기의 '삭제' 커버 영상을 지난 6월 14일 음원으로 정식 발매했다. 발매 동기는 물론 시청한 사람들의 응원과 열광 덕분. 커버 음원을 발매했다는 건 원작자의 허락을 받았다는 얘기로 단순히 재미로 하는 커버와는 다른, 냉정한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특정 논의를 거친 끝의 결과물이다. 보통 그 과정에서 커버 음원이나 앨범은 흥행을 예상하기가 오리지널 작품보다 더 난해한데, 대중의 좋은 반응에 따른 발매라는 이홍기의 사례는 앞으로 커버 작품을 낼 가수와 기획자들에게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것도 같다.

사진='주현미 TV' 방송 영상 캡처

이홍기처럼 커버 영상이 개인의 성취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와 달리 공익(?)의 차원으로 승화하는 사례도 있다. 가수 주현미는 구독자 20만 명을 넘긴 '주현미TV'라는 채널을 2018년부터 열어 운영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현재 기준으로 21시간 전 올린 황금심의 '뽕 따러 가세'까지 그는 4년 여동안 거의 쉬지 않고 옛 노래들을 다시 불러 올렸다. 그러니까 가수가 자신의 목소리로 옛 노래들을 비평하고 있는 셈인데, 그는 이 곡들에 관한 글도 하나둘씩 써 '추억으로 가는 당신'이라는 책으로까지 엮어 낸 바 있다. 스스로 옛 노래들을 공부하면서 듣는 사람들에겐 흥과 지식을 동시에 안긴 격이다.

지난해 리메이크 앨범 'Log'를 낸 정은지도 45만 구독자들을 위해 커버 영상을 수시로 올리는 가수다. 그중 한 달 전 그가 업로드한 영상은 특히 깊은 울림을 줬다. "'흰수염고래' 라는 곡이 가진 메시지와 힘을 또 다른 방법으로 다시 한번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인사를 올린 그는 'Log'에도 수록했던 YB의 '흰수염고래'를 수어로 불렀다. 너무 바삐 달려 더불어 사는 가치를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하나하나 정성스러운 수어로 정은지는 노래가 지닌 "메시지와 힘"을 전하려던 것이다. 이처럼 때로 노래 커버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활에 눌려 식어가는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커버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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