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진 않아도 재미로”…앱·SNS 사주풀이 ‘MZ 취향 저격’ [ESC]

한겨레 2023. 6. 1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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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커버스토리]커버스토리 ​‘미래가 궁금해’ 사주 보는 20·30
네이버 엑스퍼트 매출 74%가 ‘운세·상담’, 이용자 72%가 20·30
생년월일시로 성격·운명 읽는 사주…MZ, 앱·채팅 등 비대면 선호
해석의 근거 잘 설명하는 게 중요…“맹신하지 말고 활용·참고해야”
한 30대 여성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연애운을 보고 있다. 최근 20·30세대가 스마트폰 앱이나 채팅 등을 통한 비대면 운세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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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주를 본 건 21살 정도였고, 최근에는 두달 전에 전화로 사주 상담을 받았어요. 지금 퇴사를 앞두고 있는데 이직이나 진로 등 고민이 크니까 또 볼 것 같아요.” 27살 직장인 이아무개씨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도 앱으로 사주 운세를 봤어요. 솔직히 일일 운세를 믿지는 않지만, 오늘이 나에게 유리한 날이라고 나오면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27살 대학원생 송아무개씨의 말이다.

사주를 통한 운세 보기에 젊은 세대도 빠져들고 있다. 2021년 구인구직·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10~30대 1608명에게 ‘운세를 보는지’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0%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비대면 운세 서비스 이용자의 절대다수도 젊은 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가지고 한 사람의 운명과 성격을 읽어내는 ‘사주명리’는 과학인가, 유사과학인가. 통계인가, 미신인가. 잘 모르겠다. 다만, 사주와 점이 미래의 사건이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을 짐작한다는 점에서 같은 ‘운세’로 묶이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사주는 개인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통해 그의 성향을 분석하고 운명을 내다보는 학문이다. 반면 점은 초자연적 힘으로 과거의 일을 알아맞히거나 닥칠 일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게 목적이다.

앱·SNS·유튜브 등 언제 어디서든

엠제트 세대는 때때로 만남보다 통화가, 통화보다 문자가 가볍다. 얼굴 보고는 못 할 말이 유선상으로는 줄줄 나온다. 전화와 채팅을 통한 비대면 상담 서비스 ‘네이버 엑스퍼트’에 입점해 3년간 1억원 이상 매출을 올린 사주·타로 상담사 ‘사주정혜’는 이렇게 말했다. “엑스퍼트 통해서 연락하시는 분, 대면 상담 받으러 오시는 분의 비중은 반반이에요. 대신 엑스퍼트에는 20·30세대가 많아요. 채팅과 앱에 더 익숙한 세대죠. 대면 상담에서는 40·50·60세대가 더 많고요.” 네이버 엑스퍼트 매출을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매출액의 74%가 운세 상담에서 발생했으며 서비스 이용자 중 72%가 20·30세대였다.

30대 여성이 유튜브에서 사주 상담가 현묘의 ‘사주명리 입문’ 강의를 듣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최근에는 유튜브에 타로 영상을 올리고 있어요. 오늘도 이따가 촬영할 거예요.” 블로그에서 출발해 대면·비대면 상담을 거쳐 이제는 영상 플랫폼으로까지 영역을 넓힌 사주정혜. 그를 좇아 발을 들여본 유튜브에는 ‘선생님’들의 강의로 붐볐다. ‘내 사주 내가 보는 법’부터 ‘사주에 이 글자가 있으면 부자 됩니다’까지. ‘기초 이론’부터 ‘고급 실전 풀이’까지. 55초짜리 쇼트폼부터 2시간에 육박하는 판서 강의까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누구 말을 들어야 할까. ‘이 사람은 내 친구보다도 이론이 약한 것 같은데. 믿어도 될까.’ 때마침 알고리즘이 슬쩍 밀어 넣은 ‘사주 잘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 모음’에는 무려 사주 유튜버 48명이 거론됐다. 여기에 타로·점성술 풀이 및 강의까지 더해진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네이버 엑스퍼트’에서 3년간 1억원 이상 매출을 올린 사주·타로 상담사 ‘사주정혜’. 네이버 엑스퍼트 화면 갈무리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1년 전국 만 19~59살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복수 응답)를 보면, ‘유튜브 점집 영상’에서 사주를 본다고 답한 응답자는 19.4%로 ‘유명 점집’(21.2%)과 비슷했다. ‘사주 카페’(16.2%), ‘유튜브 타로 영상’(15.8%)도 주요 통로였다. 이를 모두 압도하는 1위는 ‘스마트폰 앱’(52.3%)이었다. “매일 아침 운세를 본다”는 27살 송씨도, “믿지는 않아도 재미로 본다”는 34살 직장인 서아무개씨도, 모두 앱으로 사주를 본다. 비록 상담가의 구체적인 해석을 들을 수는 없지만, 앱은 간편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무료 콘텐츠도 많을뿐더러 유료 콘텐츠도 저렴하게는 몇백원에서 비싸도 2만~3만원을 넘지 않는 편이다. 오프라인 사주 서비스는 대개 30분에 3만~5만원 수준이며 그 이상을 책정한 곳도 많지만, 앱에서는 시간제한 없이 평생 운세, 올해 운세, 오늘의 운세부터 금전운, 연애운, 취업운까지 원하는 만큼 볼 수 있다. 생년월일과 생시만 준비하고 열린 마음만 있으면 된다.

채팅하듯 운세를 알아보는 앱 ‘헬로우봇’의 대화창. 유해강 제공

각양각색의 사주 앱도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캐릭터와 일대일 채팅하듯 운세를 확인하는 ‘헬로우봇’, 자체 사주 분석 시스템을 운영해 사용자 친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스텔러’, 광고 시청으로 유료 결제를 대신할 수 있는 ‘점신’ 등. 그중 포스텔러를 애용한다는 27살 송씨는 “그날 내 운세가 몇점인지 알려줘서 직관적으로 하루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철학관은 멀고 가격도 대체로 비싸다. 결정적으로 얼굴을 보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스럽다. 앱으로 보면 혼자 공부하는 느낌으로 볼 수 있어 더 편하다”고 말했다.

운세 앱 ‘포스텔러’가 풀어놓은 운세 결과.

젊은 세대에겐 에스엔에스(SNS)도 사주를 볼 수 있는 주요 통로다. “철학관에 가봤지만 맞는 느낌이 없어 두번은 안 갔다”는 24살 직장인 김아무개씨는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무당분에게 카카오톡으로 사주를 봤다”고 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주와 타로 검색하면 엄청 많이 나와요! 예약하고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 있는 사람도 있어요.”

배워서 남 주는 사주 공부

대체 젊은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사주를 보는 걸까. 상담가들에게 물어본 결과 20·30의 관심사는 연애·취업으로 압축된다. 엔(n)포 세대가 차례로 이별을 고한 두 과업이지만 운세 영역에서는 부동의 1·2위다. 30대 중후반 사이에서는 결혼운이 인기이고, 40·50대는 이직·사업·자식운을 많이 본다고.

20·30세대가 말하는 ‘사주 보는 이유’는 첫째가 ‘재미’였다. 24살 김씨는 “운세를 맹신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 재미 삼아 가끔 보는데, 생각한 것과 맞아떨어지면 믿고 아니면 안 믿는 것 같다. 가벼운 조언이라고 여긴다”고 했다. 34살 서씨는 “사주를 다 믿지는 않지만, 재밌다. 오늘의 운세나 사업운이 좋다고 나오면 기분도 좋다. 안 좋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고민 해결’ 목적도 있다. 27살 이씨는 “현재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얻고 싶어서” 사주를 본다고 했다. ‘마음의 위안’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27살 송씨는 “좋은 말을 듣기 위해 사주를 본다. 계속 보다 보면 마음에 드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라서. 사주의 패턴은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그게 습관적 불안을 잠재워준다”고 설명했다.

운세 상담자의 생각은 어떨까. 사주 가르쳐주는 ‘현묘’에게 물었다. “사주의 진짜 쓸모요? 좋은 운과 나쁜 운을 점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사주를 보는 이유는 각자 어떤 자세로 살아야 최대한의 행복을 거머쥘 수 있는지 통찰하기 위해서입니다.” 현묘는 사주 상담가다. 연말이면 ‘신년운세 풀이 언제 올라오냐’는 문의가 빗발치는 블로그 ‘안녕, 사주명리’의 주인장이다. 그는 사주가 미신도, 마법도, 고리타분한 옛것도 아니라고 했다. “사주는 개인의 성향과 본질을 알려주는 객관적 기준입니다. 자기를 이해하고 치유하고 성찰하는 도구죠.” 사주 공부는 배워서 남 주는 공부이기도 하다. “사주 공부는 인문학적인 통찰을 줘요. 거기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실용적인 상담 도구도 되죠. 공부가 깊어지면 얼마든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점도 매력입니다.”

유튜브 ‘초코명리’에서 사주풀이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현묘는 스스로 공부한 내용을 기록하는 차원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다가 구독자 요청으로 상담을 시작했으며 작년에는 <나의 사주명리>라는 책까지 냈다. 그를 찾는 내담자는 “20·30이 압도적”이다. 사주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단편적인 정보들을 보다가 이른바 ‘큰 그림’이 궁금해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는 단순히 ‘언제 결혼할까요’ ‘취업이 될까요’ 같은 질문이 많았는데요, 요즘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같은 질문이 많아요.” 길흉화복을 점치는 대신 사주를 삶의 나침반으로 삼는다는 것. 이에 대해 현묘는 “사주의 올바른 쓰임을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라 즐겁다”고 했다. “중장년층의 경우, 쓰라린 실패와 아픔을 경험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원인과 책임이 전부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고, 타고난 사주와 시기 및 운의 영향도 있다고 설명해드려요. 스스로 용서하고 앞으로의 삶을 겸허하게 계획할 계기를 만들어드리는 거죠.” 상담가인 현묘는 강사이기도 하다. 현재 ‘철공소닷컴’에서 온라인 사주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오는 8월부터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도 강의를 연다. “수강생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합니다. 20·30 비율은 절반 정도죠. 여성이 80% 정도고요. 점점 젊은 분들 호응과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내 삶에 도움이 된다면

현묘는 온라인 사주풀이 서비스에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인터넷이나 앱 사주풀이는 대부분 사주 해석의 기본 사항을 재조합해서 그럴싸한 말로 풀어낸 것들이에요. 비대면 사주풀이를 원하면 전문 상담가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상담받는 게 좋죠.” 최선의 비대면 상담을 위한 요령도 있다고. “비대면 사주 상담을 받을 때는 해석의 근거를 잘 설명해주는 상담가인지 따져봐야 해요. 사주는 점이 아니에요. 근거 없는 풀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 사주는 재미있다. 쓸모도 있다. ‘나를 알아맞혀보세요’ 하는 ‘점’과 다르다.

현묘가 쓴 사주 안내서 <나의 사주명리>.

일단 사주로 방향을 깨치고 나면 “스스로 준비하고 노력해서 삶의 주인이 돼야 한다.”(현묘) 사주를 보는 이들도 비슷한 말을 한 다. “사주를 안 뒤 저와 타인을 더 너그럽게 이해하게 됐어요. 타고난 성향이 아주 다양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죠.”(27살 송씨) “사람들이 행복할 때보다는 불안하거나 암담할 때 사주를 보는 것 같아요.맹신하기보다는 참고로 해서 자기 행복을 찾으며 살았으면 좋겠어요!”(24살 김씨)

챗지피티에 “사주 믿어?”라고 물으니 “과학적 증명이나 타당성을 갖추지 않은 예측 방법입니다. 사주에 대한 신뢰는 개인의 신념과 성향에 달렸습니다”라는 답이 나왔다. 현묘는 이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과학적 가설이 곧 진실은 아닙니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적’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과학은 우리 삶의 극히 일부만 설명할 뿐이죠. 과학적 설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사주명리를 등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봅시다.”

이제 사주가 사이언스냐는 질문은 필요 없다. 그리고 하나 더. “사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믿을 것도, 안 믿을 것도 없죠. 사주는 도구입니다. 사주를 믿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사주가 내 삶에 도움이 되기에 탐구하고 사유하는 거죠.”(현묘) 그러므로 질문은 다시 쓰인다. “사주 믿냐”가 아닌 “사주를 어떻게 활용할까”로. “내가 그려갈 내 삶은 어떤 모양일까”로.

유해강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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