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관객수보다 중요한 것은 손익분기점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2023. 6. 16. 02: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헌식(대중문화 평론가)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멀티플렉스영화관 3곳과 배급사 3곳 등을 압수수색했는데 수사이유는 박스오피스 순위조작 의혹이었다. 혐의는 업무방해다. 영화관과 배급사는 관객수를 부풀려 집계했다는 점에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가 적용됐다. 영진위는 각 상영관이 집계한 관객데이터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통해 총괄적으로 제시·공유하는 업무를 한다. 관객수를 조작했다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관객수를 조작했다면 그 피해는 영진위라기보다 관객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관객수가 영화선택의 판단기준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객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 영화제작사나 배급사, 상영관은 1000만 관객, 혹은 쌍천만을 영화평가의 절대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영화제작사나 영화산업 전체로 볼 때 정말 중요한 것은 관객수도 아니고 손익분기점(BEP)이다. 투자한 비용을 넘어서는 매출액을 기록할 때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라고 하는데 관객에게는 이른바 가성비 좋은 영화가 된다. 관객에게는 천만영화보다 가성비 좋은 영화가 낫다. 관객수와 손익분기점을 비교하면 흥행순위도 달라진다. 최고의 흥행영화 1위는 영화 '명량'이지만 가성비 최고영화는 '극한직업'이다. '극한직업'의 손익분기점은 230만명이었는데 최종 관람객은 1342만명을 기록. 손익분기점보다 1112만명의 관객이 더 들었다. 총제작비 95억원의 14배에 달하는 1359억5000만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1761만명을 동원한 '명량'의 손익분기점은 650만명이어서 '극한직업'에 상대적으로 밀렸다. '명량'은 총 19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7배 정도의 매출(1357억5000만원)을 올렸다. '7번방의 선물'은 총제작비 58억원의 15배에 이르는 914억원의 매출을 거둬 가성비 최고영화 3위에 랭크됐다. 그런데 관객수로 보면 '극한직업'은 역대 순위가 2위, '7번방의 선물'은 8위다. 관객수와 매출순위를 보면 이렇게 달라진다. 이익을 남기고 싶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자명해 보인다. 이런 손익분기점과 가성비 개념은 재투자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2017년 '범죄도시'는 총제작비 70억원, 손익분기점은 200만~220만여명선이었는데 최종 668만명이었다. 1000만명을 넘지 않았지만 가성비 최고의 영화가 됐고 5년 뒤 8편의 제작을 예정한 마동석시네마틱유니버스(MCU)로 등장할 수 있었다. 신작일수록 이러한 손익분기점은 매우 중요한 평가지표며 차기작의 재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현빈·황정민 주연, 임순례 감독의 '교섭' 손익분기점은 약 350만명인데 100만명은 넘겼지만 200만명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영화 '육사오'는 인기배우 하나 없이 손익분기점을 한참 지난 198만명을 넘겼다.

한편 이번에 관객조작을 통한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제작비 300억원의 '비상선언'은 손익분기점이 500만명이었지만 관객수는 205만명으로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 심각한 사례도 있다. 스타감독 최동훈이 7년 만에 선보인 '외계+인' 1부의 누적 관객수는 152만여명으로 제작비 400억원의 손익분기점인 730만명에 한참 부족했다.

이런 영화들은 실패한 영화가 아니라 다만 제작비가 너무 많을 뿐이다. 하지만 제작비가 대거 투입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는 현상이 한국 영화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반드시 성찰이 필요하다. 관객 숫자를 동원하는 대형 흥행 마케팅은 관객들도 외면하기 때문이다. 관객수 조작혐의에 대한 수사를 넘어 중요한 것은 1000만 관객이 아니라 가성비 좋은 영화라는 점이다. 이는 산업으로나 관객에게도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