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축구 해설위원 “승부 집착 땐 ‘좋은 축구’ 못해… 즐겨야 재능 발현” [차 한잔 나누며]

장한서 2023. 6. 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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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축구 칼럼 입소문 해설 제의
전문 사이트 찾고 독서… 항상 공부
‘사면 논란’ 축구협회서 소통 역할
즐거운 풀뿌리 축구 활성화 노력”

공 한 개. 어릴 적 ‘축구’라는 공놀이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물이었다. 좁은 골목길에 고깔 두 개를 놓으면 골대가 됐다. 이도 여의치 않다면 담벼락에 분필로 골대를 그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축구는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놀이다. 축구 팬들로부터 ‘준희옹’, ‘갓(GOD)준희’ 등 애칭으로 불리는 1970년생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53·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어린 시절도 그랬다. 학교가 끝나면 동네 골목길에서 공을 차곤 했다. 프로야구가 출범(1982년)하면서 야구도 인기가 많았지만, 여러 장비와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한 위원은 15일 서울 강서구 사무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축구의 매력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공 하나만 있다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공을 차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이 좋아하는 건 또 있었다. 바로 텔레비전(TV)이다. 여름에는 축구와 야구, 겨울에는 농구와 배구를 즐겨봤다. “축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게임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모두가 축구를 했습니다. TV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했는데, 스포츠 중계도 빠지지 않고 봤어요. 차범근 전 감독이 독일에서 뛸 때 하이라이트가 나오곤 했는데 참 재밌었어요.”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이 15일 서울 강서구 사무실에서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하지만 해설위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공계열인 서울대 해양학과에 입학한 뒤 여러 책을 읽으며 철학에 빠졌다. 대학원에서 과학철학 석사학위를 딴 뒤 2000년대 초반 박사 과정을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중에도 해외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 칼럼을 올리기 시작했다. 해외 유명 사이트들처럼 유료화를 시도했지만, 이 사업은 쉽게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위원의 축구에 관한 전문성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MBC에서 ‘해설을 해보지 않겠나’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그는 해설위원의 길을 걷게 됐다. 풍부한 배경지식, 정확한 승부예측, 탁월한 분석력에 특유의 ‘샤우팅’ 중계 등으로 인기를 끈 한 위원은 어느새 20년가량 해설을 한 ‘베테랑’이 됐다.

해설위원의 삶은 어떨까. 중계가 잡히면 새벽에도 나가는 불규칙한 패턴으로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다. 아내가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운전을 못 하는 한 위원을 위해 출장길에 대부분 동행한다. 한 위원은 “정신력으로 버틸 정도로 바쁘다. 연예인들이 소속사가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들만큼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내가 많이 도와준다”며 웃었다. 축구 관련 정보는 대부분 해외 전문 사이트와 책을 통해 얻는다. 매달 해외 웹진 등에 내는 구독료만 수십만원. 

한 위원은 지난달부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3월 승부조작 가담자 ‘기습 사면’ 사태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축구협회는 한 위원을 비롯해 새롭게 이사진을 꾸리면서 수습에 나섰다. 그는 홍보 담당 부회장으로 협회와 팬∙언론 간 소통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위원은 “협회가 잘못된 길로 흐르지 않게 하는 것이 큰 임무라고 생각한다. 회의도 매주 하고 있으며, 제안할 수 있는 부분들은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프로축구 K리그1은 2013년 승강제 도입 이후 역대 최소인 개막 96경기 만에 100만 관중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다. 한 위원은 흥행 열풍 원인으로 화끈한 ‘공격 축구’ 등을 꼽았다. 그는 “골이 많이 나오면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며 “승격팀인 대전과 광주도 과감한 축구를 통해 돌풍을 일으켜 리그가 더욱 재밌어졌다”고 평가했다.

한 위원이 꼽은 역대 최고의 선수는 누구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를 언급했다. 발롱도르 7회 수상 등 화려한 업적을 자랑하는 메시는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을 이끌면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한 위원은 “메시의 가장 큰 놀라움은 경기에서 5~6명을 돌파하는 장면을 ‘꾸준하게’ 한다는 것”이라면서 “두 골을 넣어도 공을 몇 번 빼앗기면 부진한 날이라고 할 정도였다. 앞으로 메시의 위상에 도전하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 정도의 경기력을 커리어 내내 지속해서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한국 축구가 나아갈 길로 ‘즐거운 풀뿌리 축구’를 강조했다. 유소년 시스템에서 결과에 집착하는 ‘운동부 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것. 그는 “승부만 집착하면 나중에 결국 ‘좋은 축구’를 하기 어렵다”며 “즐거운 축구 속에서 위대한 재능도 발현된다. 모든 축구인과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당부했다.

그의 삶의 목표는 뭘까. 한 위원은 “중요한 건 현재”라고 답했다. “제 인생처럼 삶은 예측할 수 없어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현재를 열심히 살다 보면 괜찮은 미래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경기는 다음 경기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바로 직전 경기입니다.”

글∙사진=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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