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천 | 맞벌이 부부 해방시켜준 고향 같은 곳[내 이름 걸고 추천하는 맛집](7)

2023. 6. 1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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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원동 ‘수타손짜장’
주재천 원장이 ‘수타손짜장’에서 아내와 함께 식사하고 있다. / 주재천 원장 제공


도시에서 살다 보면 자연이 그리워진다. 녹보수, 행운목, 고무나무 등 여러 식물을 화분에 심어 집안 곳곳 가꾸는 것도 자연을 좀더 가깝게 느끼고 싶어서다. 특히 코로나19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밖보다는 집안에서 생활하는 일이 늘었다. 많은 사람이 식물을 가꾸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식물을 가꾸는 사람들을 ‘식물집사’ 또는 ‘식집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반려식물’을 가꾸는 이들이 많아진 만큼 걱정거리도 늘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병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처음에는 파릇파릇한 식물들이 신기하고 예쁘기만 하지만, 갑자기 잎이 시들고, 한 장 두 장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집사들은 허둥지둥,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인터넷을 통해 식물들이 아픈 이유를 찾아봐도 시원한 답을 찾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픈 식물을 치료해주거나 병의 원인을 알려주기 위한 반려식물병원이 최근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문을 열었다. 처음 개원했을 때만 해도 이 외진 곳까지 사람들이 무거운 화분을 들고 과연 찾아올까 싶었다. 착각이었다. 막상 개원하고 보니 의외로 많은 분이 찾아온다. 젊은 분도 상당히 많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연을 향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최근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자라나는 외로움 속에서 오롯이 나만의 휴식과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가 필요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친구처럼 편안한 반려식물을 가꾸다 보면 지친 일상을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을 듯하다.

현재 생활이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사람들은 부모님이 계신 곳 또는 어릴 적 동심이 녹아 있는 곳을 찾는다. 나도 그랬다. 고향에 가면 왠지 푸근하고, 마음이 놓였다. 예전의 패기 넘치던 시절로 돌아가 다시금 힘을 내곤 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서울에서의 맞벌이 생활이란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맞벌이 부부가 퇴근하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일조차 간단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 같은 식당을 발견했다. 집 근처에 있던 ‘수타손짜장’(서울 강남구 개포로 615)이라는 상호의 조그만 중국집이었다. 저렴한 가격에다 푸짐하게 내주는 짜장면 한 그릇이 입에 군침을 돌게 했다. 손으로 직접 만든 울퉁불퉁한 면발이 쫄깃쫄깃한 식감을 자아냈다. 탕수육과 깐풍기도 정말 맛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애들과 함께 그렇게 다녔다. 내가 면 종류의 음식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날만큼은 저녁 준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수타손짜장은 그야말로 꿀맛 같은 휴식처였다. 두 아이도 워낙 잘 먹어 한 달에 3~4번씩은 들르곤 했다.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처음 발을 들였던 듯하다. 어느덧 중학생이 됐다. 첫째는 고등학생이다. 이들에게도 그곳은 많은 추억이 아로새겨진 식당이다. 키가 성큼 자란 아이들이 가끔 찾아가면 지금도 사장님께서 반갑게 알아봐 주신다.

요즘은 많은 이들이 반려식물을 보며 고향을 느낀다고 한다. 너무 애틋한 나머지 식집사들이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물관리’다. 다들 처음 화분을 살 때 “이 식물엔 며칠마다 한 번씩 물을 주나요?”라고 묻는다. 이 질문의 대답은 참고는 하되, 맹신해서는 안 된다. 식물은 자라는 환경에 따라 필요한 물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성껏 돌본다고 주기적으로 물을 주게 되면 식물이 상하게 되고, 심하면 고사하기도 한다. 그러면 물은 어떻게 주어야 할까.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는 언제 물을 먹지?” 하고 자문해보면 된다. 식물도 여름처럼 온도가 올라가면 목이 마르다. 겨울처럼 온도가 내려가면 목이 덜 마르다. 여름에는 자주 물을 주고 겨울에는 띄엄띄엄 줘야 하는 까닭이다. 좀더 정확하게 식물에 물이 필요한 시기를 알고 싶다면 화분 흙을 3~4㎝ 깊이로 손가락이나 나무젓가락으로 찔러보면 된다. 수분기가 없다면 물을 줘야 한다.

주재천 반려식물병원장이 병원 입구에서 포즈를 취했다. / 주재천 원장 제공


월드컵이 대한민국을 들뜨게 했던 2002년 꿈에도 그리던 서울시 공무원이 됐다. 2013년부터 농업인을 위한 농업교육과 여러 농업 전문 사업을 하는 서울농업기술센터 소속으로 일했다. 일반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는 식물병원 사업도 맡아 많은 경험을 쌓았다. 이때의 경험이 이번에 서울농업기술센터 내 반려식물병원을 개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팔자에도 없는 ‘병원장’ 직함까지 달았다. 2013년 ‘찾아가는 식물병원’ 사업 당시엔 열정이 넘친 만큼 아쉬움도 컸다. 아파트 등 현장에서 주민들이 상태가 좋지 않은 식물을 가져와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 성심성의껏 답변하곤 했는데, 정작 내 얘기에 그들이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식물들에 현혹돼 화제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지난 4월 문을 연 반려식물병원은 오로지 식집사가 가져온 식물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실제 동물병원처럼 꾸몄다. 현미경 등을 갖춘 진단실과 진찰실만 있고, 관상용 다른 식물은 아예 들여놓지도 않았다. 예상대로 식물집사들은 가져온 식물 얘기에만 집중했다. 왜 이렇게 시들고 아프게 됐는지 물었고, 어떤 행위로 인해 생육이 나빠졌는지를 이해하고 배우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반려식물을 더 잘 가꾸겠다는 다짐과 함께 돌아서는 집사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행복해진다. 이를 통해 같은 사업이라도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내용을 달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생명체인 식물은 더 그렇다. 열이면 열 사람 모두 다른 것처럼 이들이 가꾸는 식물도 잎이 퉁퉁한 다육식물, 꽃이 예쁜 식물, 잎이 크고 화려한 식물, 향기가 좋은 식물 등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식물을 가꾸는 방식도 다 달라야 한다. 향기가 좋거나, 꽃이 예쁜 식물은 물을 싫어하고, 햇볕은 엄청 좋아한다. 잎이 크고 화려하거나 잎 모양이 예쁜 식물들은 물은 엄청 좋아하고, 강한 햇볕을 싫어한다. 사람들이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해가 뜨면 일어나고 지면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식물도 물을 마시고, 필요한 양분을 흙에서 흡수해야 튼튼히 자랄 수 있다. 광합성만으로는 충분히 생장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듯이 식물도 잘 흡수하는 영양분이 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영양제(비료)도 섭취해야 잘 자란다.

일반병원은 건강을 찾아주지만, 반려식물병원은 행복을 찾아준다. 반려식물을 살뜰히 챙기고픈 마음이 있는데,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언제든 오시라. 누구든 환영이다.

필자는 서울시 공무원이다. 올해로 공직생활 22년째를 맞았다. 대학에서 자원식물학(농학사)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시농업기술센터 근무 중이다. 도시농업, 원예기술보급, 종합분석실 운영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지금은 지난 4월 문을 연 반려식물병원을 운영하면서 초대 원장 겸 ‘식물 전문 의사’로 활동 중이다.

주재천 서울반려식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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