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이 멀티버스는 무사할까…플래시

손정빈 기자 2023. 6. 15.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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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DC 확장 유니버스(Extended Universe) 새 영화 '플래시'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미덕을 두루 갖췄다.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슈퍼히어로는 언제 어디에 갖다 놔도 매력적이고, 이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 에즈라 밀러는 숱한 사생활 논란에도 불구하고 거부하기 힘든 아우라를 갖고 있다. 슈퍼히어로 내면의 아픔과 아물지 않는 상처를 어떻게든 봉합하려고 발버둥치는 영웅의 이야기는 이 장르 서사의 정석에 가깝다. 관객을 몰아치는 듯한 빠른 전개와 화려하기 그지 없는 액션 및 시각 효과, 팬 서비스라고 봐도 무방한 슈퍼히어로 캐릭터 전시 역시 충분한 즐길 거리가 돼 준다. 최소한 티켓 값이 아깝진 않다. 그러나 그래서 새로운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망설여 진다. DCEU가 멀티버스(multiverse·다중우주) 시대를 열었다는 게 대답이 될 수 있겠지만, 마블도 수습하지 못 하고 있는 멀티버스 세계관을 DC가 온전히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플래시'의 가장인상적인 대목은 마블 영화가 나오기 한참 전인 1978년에 시작된 '슈퍼맨' 시리즈, 1989년에 출발한 '배트맨' 시리즈를 기억하는 이 장르의 오래 팬을 소환한다는 점이다. 우선 마이클 키턴이 연기한 원조 배트맨이 전면에 나와 플래시와 함께 극을 이끈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슈퍼히어로가 판을 치는 시대에 키턴의 배트맨이 보여주는 재래식 액션은 향수를 자극한다. 원조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의 모습을 볼 수 있고, 1990년대 새 슈퍼맨으로 캐스팅 됐으나 제작이 무산되며 하늘을 날지 못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슈퍼맨이 된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쿠키 영상엔 또 다른 배트맨까지 등장하며 관객을 즐겁게 한다. 이처럼 DC코믹스 기반 슈퍼히어로 영화 속 캐릭터(배우)가 대거 등장할 수 있는 건 결국 멀티버스라는 전가보도 덕분이다. 따라서 앞으로 DC 영화에서 어떤 캐릭터가 재등장할지 지켜보는 것도 이 세계관을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다만 이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래시의 액션은 상대적으로 평범하다. 빛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슈퍼히어로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방식은 10년 전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가 선보인 혁명적인 액션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간 많은 영화에서 반복 연출된 이른바 '퀵실버 식(式) 액션'은 '플래시'에서 또 한 번 재생되며 한계효용 체감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도 플래시가 빛보다 빠르게 달리면서 시간 여행의 문을 여는 순간을 시각화 한 연출은 특기할 만하다.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이 흔히 선형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플래시'는 비선형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이건 분명 앞서 나온 어떤 슈퍼히어로 영화에도 본 적 없는 그림이다. 당연히 이 시퀀스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스크린이 크고 음향이 좋은 상영관에서 봐야 한다. '플래시'는 영화 전체를 아이맥스(IMAX) 카메라로 찍었다.


'플래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역시 플래시를 연기한 배우 에즈라 밀러다. 밀러는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고 친구도 없는 소심한 법의학자 배리 앨런(플래시)과 과거로 돌아가서 만나는 정반대 성격의 대학생 배리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밀러의 재능이 놀라운 건 서로 다른 두 개 캐릭터를 구분하기 위해 어떤 과장된 표정이나 몸짓을 동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세한 조정으로 두 명의 배리를 온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연기는 평범한 배우가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폭행·강도·절도 혐의로 기소되고, 미성년자 성폭력 의혹까지 받고 있는 문제아 중 문제아인 밀러를 안드레스 무스키에티 감독이 적극 감싸고, DC 스튜디오 공동 CEO로 있는 제임스 건 감독 역시 밀러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는 건 그에게 이런 대체불가능한 능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밀러의 범죄 이력·의혹 때문에 일부 관객은 '플래시' 불매를 선언하기도 했다.

DC스튜디오는 2013년 '맨 오브 스틸'로 시작해 '플래시'까지 10년 간 이어온 DCEU를 마무리 하고 DC유니버스(DCU)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DC 슈퍼히어로 세계관을 리빌딩 하겠다고 발표했다. '플래시'는 DCEU 마지막 영화이면서 동시에 DCEU와 DC유니버스를 잇는 가교 영화이기도 하다. 전 세계 슈퍼히어로 영화 팬은 마블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시리즈였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마무리하고 DC로 넘어온 건 감독이라면 그간 마블에 밀려 기죽어 지낸 DC를 살려낼 거라고 믿는 듯하다. 실제로 건 감독은 DCEU에서 가장 볼 만한 영화라고 평가 받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가장 잘 만든 드라마라는 호평을 이끌어 낸 '피스메이커'로 그만의 유일무이한 감각을 또 한 번 증명했다. '플래시'로 첫 발을 뗀 DCU 멀티버스는 마블도 아직 해내지 못한 안정적인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을까. DCU는 벌써 영화 7편과 드라마 4편, 애니메이션 1편 제작에 돌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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