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고단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아내가 제 손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고단했던가 봅니다/ 곧바로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윤병무 시인의 ‘고단(孤單)’이라는 시의 첫 연이다. 다음 연에서 시인은 삶의 고단함으로 힘이 풀리는 손을 보며 문득 별세(別世)의 순간을 떠올린다. 제목에 한자를 병기한 데에서 ‘지쳐서 피곤하다’는 뜻과 ‘단출하고 외롭다’는 뜻을 겸하여 담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조선 최고의 천재 가운데 한 명으로 불리는 율곡 이이 역시, 자신의 고단(孤單)함이 너무나 심해서 스스로 민망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우계 성혼과 편지로 치열한 성리 논변을 주고받다가 그마저도 자신과 소견이 같지 않음을 탄식하면서 한 말이다. 이이의 문집에는 성혼과 주고받은 편지가 22편이나 실려 있다. 한 살 터울의 두 사람은 오랜 시간 가깝게 지내며 삶과 학문을 나누었다. 이이가 세상에 자신과 부합하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하면서 “저에게는 오직 형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이 편지를 받은 성혼은 굳이 서로 부합하고 의견이 같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 되묻는다. 스스로 깨달은 실제가 있다면 온 천하 사람과 뜻이 다르더라도 마음이 평화롭고 즐거울 뿐이니 굳이 자신의 고단함을 민망히 여길 것 없지 않은가. 배움이 견문에 따라 진전되고 견문이 실행을 통해 깊어지기를 기다려야지 당장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할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군자로서 지녀야 할 본연의 자세를 상기시키는, 매우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학설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이가 진솔하게 토로한 고단함의 무게가 더 마음을 울린다.
이이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열정을 가지지 못한 우리에게도, 삶은 고단하고 고단하며, 고단해서 더욱 고단하다. 학문적 소견을, 혹은 삶의 행보를 같이할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이 고단함이 그칠까? ‘고단’의 시구와 같이, 가장 가까운 사람과 손을 잡고 함께 잠드는 순간에도 고단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삶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돌아보며 이 시의 마지막 연을 나지막이 되뇌어 볼 뿐이다. “아내 따라 잠든/ 제 코 고는 소리 서로 못 듣듯/ 세상에 남은 식구들이/ 조금만 고단하면 좋겠습니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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