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가 환생한 듯 꼬리·구린내·색깔까지 빼닮은 족제비싸리[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6. 11. 07: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수괴(紫穗槐), 수화괴(穗花槐), 자취괴(紫翠槐), 왜싸리, 일본아까시나무 별칭
한국근대화의 생생한 증인…6·25전쟁 후 황폐해진 산림 복구 사방사업·녹비용
박정희, 경부선 건설 때 “연도 토사 유출 방지 위해 족제비싸리 심을 것” 지시
족제비싸리는 꿀벌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꽃꿀과 꽃가루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밀원(蜜源)식물이다. 봄 야생화 꿀은 족제비싸리에서 시작해 밤꽃이 필 때까지 이어지 개망초로 마무리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 5월26일 서울 서대문구 안산 기슭 꿀벌이 정신없이 꿀을 빨고 있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싸리나무에 왜 ‘족제비’ 이름이 붙었을까. 족제비싸리라는 이름은 꽃색이 움직임이 재빠른 동물인 족제비 몸 털색과 닮았고, 잎과 줄기에서 족제비처럼 고린내가 나고 꼬투리 모양이 족제비 꼬리와 닮은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족제비싸리 가지를 꺾어보면 중국 음식에서 나는 향신료 같기도 하고 비누향 같기도 한, 약간 구리고 느끼한 냄새가 특이하다. 족제비는 강한 적을 만나면 항문주위샘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분비물을 뿜으며 달아난다. 족제비싸리 줄기나 가지를 문지르면 족제비와 비슷한 고린내가 나고 이 냄새는 겨울이 오면 더욱 지독해진다고 한다. 모양·색깔·향기까지 마치 족제비가 환생한 듯한 모습이다.

족제비싸리는 생명력이 강하고 질소를 고정하는 콩과식물로, 생명력이 강해 과거 전국의 황폐지 복구를 위한 사방사업용으로 많이 식재했다. 5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안산

족제비싸리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1930년경에 만주 등 중국 동북부를 거쳐 들어온 외래수종이다. 이 나무는 과거에 전국의 황폐지 복구를 위한 사방사업용으로 많이 심었다. 족제비싸리는 생명력이 강해서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며, 뿌리가 잘 뻗어서 토사유출방지 목적의 사방공사와 경사면의 피복용 수종으로 이용한다. 공해, 추위, 건조에 모두 강해 어디서나 잘 자라서 6·25전쟁이 정전협정으로 멈춘 후 비료로 쓰는 녹비(綠肥)용으로 헐벗은 산이나 강둑에 마구 심었다. 전쟁이 끝나고 숲을 찾아보기 힘든 때인 1960년대는 ‘사방의 날’이 있었다. 며칠에 걸쳐 전국에 싸리와 팥 씨를 뿌렸다. 모두 콩과 식물로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다. 지금도 대표적인 사방식재 식물로 참싸리, 아까시나무, 족제비싸리와 같은 콩과식물을 많이 심고, 빠른 시일 내에 뿌리를 정착하는 초본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족제비싸리 꽃은 자주빛 보라색, 또는 암갈색을 띤다.꽃 색깔이 족제비 털색을 닮았다. 2022년 6월4일 서울 안산

족제비싸리는 콩과식물로 토양개량을 목적으로 심기도 했다. 또 가지를 잘라도 새눈이 잘 나오므로 도로의 산울타리용으로 활용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5월 2일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을 발표하자 학자 지식인들이 고속도로를 이용할 만큼의 물동량이 없을 뿐더러 자가용을 가진 부유층들의 나들이 고속도로가 될 것이란 비판에도 불구, 2년여 동안 직접 수많은 건설현장을 누비면서 독려와 점검, 지시와 제안들을 했고 박 대통령 얼굴은 햇볕에 새카맣게 탔을 정도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공사 진척 상황판을 설치하고 수시로 도상점검을 했으며 심지어 연도 조경지시 메모 및 스케치까지 친필로 작성해 관계기관에 꼼꼼하게 하달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연도의 토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착근력이 강한 족제비싸리를 심으라는 지시와 그 스케치까지 작성해 내려 보냈다는 사실이다. 족제비싸리가 철도, 고속도로 및 국도의 가장자리 비탈진 경사면에 많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족제비싸리는 6·25전쟁 후 황폐한 산림복구를 위한 사방사업용, 관상용, 비료로 쓰기 위한 녹비용으로 많이 식재됐다. 더구나 전초를 약재로 사용할 수 있다. 잎 모양이 아카시나무를 닮아 일본 아까시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5월26일 서울 안산

족제비싸리나무는 콩과식물의 낙엽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약 3m 정도에 이른다. 다른 이름으로 자수괴(紫穗槐), 수화괴(穗花槐), 자취괴(紫翠槐), 미국싸리, 점박이미국싸리, 왜싸리 등으로 부른다. 잎이 아카시나무와 비슷해 일본 아까시나무라고도 한다.

나무가지에 털이 있으나 점점 없어진다. 잎은 어긋나고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11∼25개씩이고 달걀 모양 또는 타원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5∼6월에 피고 자줏빛이 도는 하늘색이며 향기가 강하고 수상꽃차례에 달린다. 꽃받침에 선점(腺點)이 있고 화관은 기판뿐이다. 열매는 9월에 결실하며 협과이다. 열매에는 1개의 종자가 들어 있으며 신장 모양이다.

지난 5월26일 서울 서대문구 안산에 족제비싸리 암갈색 꽃이 피어있다. 아카시 나무 잎과 많이 닮았다.

족제비싸리는 산림이 울창해진 요즘은 별 눈에 띄지 않고, 별 볼일 없는 나무 취급 받고 있지만 한국 근대화의 생생한 현장을 함께했을뿐더러 생활 속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 소중한 나무였다. 다른 나무에 비해서 크게 쓰임새는 적었지만 나름대로 요긴한 나무이기도 했다. 과거 농촌에서는 줄기가 가늘고 곧아서 감을 깎아 곶감으로 만들 때 감을 꿰어 건조시키는 나무로 쓰였다. 보온을 위한 비닐 못자리 골조로 이용하기도 했다. 나무를 엮어서 시골 채전 밭 울타리를 만들기도 했다. 들에서 일을 하거나 소풍을 가서 젓가락이 없을 때 매끈한 줄기를 꺾어 즉석에서 젓가락을 만들어 음식을 먹는 등 용도가 다양했다. 새로 자란 줄기는 농한기에 농촌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고 특히 비 또는 방비(빗자루처럼 쓰는 도구)도 만드는데도 유용한 자료로도 활용했다. 족제비싸리는 넓은잎 작은 키나무로, 줄기가 무더기로 올라오므로 좋은 밀원식물(蜜源植物)이고 겨울에는 땔감으로, 잎은 사료, 줄기에서 벗긴 껍질은 섬유자원으로 이용됐다.

족제비싸리 잎은 아까시나무처럼 생겼는데, 작은 잎이 더 작고, 단단해 보이며, 청록색을 띤다. 키가 1~2m 정도라면 족제비싸리라고 보면 된다. 꽃이 피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꽃 색은 아까시 나무의 우아한 미색과 대조되는 자주색이며, 주황색 꽃가루도 유난하다. 2022년 6월 4일 서울 안산

족제비싸리는 뛰어난 효능을 가진 약초이기도 하다. 전초에 약성이 있어 잎, 줄기, 열매, 뿌리 모두를 약으로 이용한다. 강심작용을 하므로 가슴을 쥐어짜듯 아픈 협심증을 치료하고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를 억제하고 피부를 건강하게 하고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항암작용을 한다.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피를 맑고 깨끗하게 한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동맥경화, 뇌졸중, 관상동맥질환을 예방한다. 손상된 간세포를 회복시키고 숙취해소, 알코올 해독작용을 한다. 스테미너를 증진시키고 갱년기 골다공증을 개선하고 녹내장, 백내장, 야맹증 등 눈 건강에도 좋고 당뇨병에도 효능이 있으며 강력한 항염증 작용으로 신장염, 방광염, 전립선염, 위궤양 등 각종 염증에 효능이 있다. 이뇨작용이 탁월해 몸의 붓기를 내려주고 몸의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시킨다. 족제비싸리는 말린 줄기, 잎, 뿌리 열매 등을 물로 달여 마시기도 하고, 담금주로도 활용한다.

하지만 족제비싸리는 성질이 서늘한 편이어서 몸이 차가운 분들은 맞지 않으며, 위장이 약하거나 맥이 약한 분들은 가급적 섭취를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 과다섭취 시에는 무기력해지고 환각 증세까지 보일 수 있어 적정량 섭취가 중요하며, 2개월 이상 장기간 복용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