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 부동산 시장을 혼란 불러···지금이 소멸 적기”
[주간경향] 한국사회에서 ‘전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쉽게 꺼내놓기 어렵다. 전세를 부정한다는 건 ‘내 집 마련’ 성공담에 단골로 등장하는 수단이자 자가-전세-월세로 내려오는 주거 계층화의 욕망에 대한 도전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월세는 사라지는 돈이지만 전세는 결국 내 돈이 된다’는 믿음이 팽배한 사회에서 전세소멸이 ‘철없는 소리’로 치부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전세 때문에 전 재산을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등장은 ‘전세의 위험성’보다 ‘전세에 대한 의심’을 키웠다는 점에서 변곡점이 됐다. ‘일단 깡통전세, 역전세에 걸리면 내 집 마련 시기를 미뤄야 한다. 이제 보니 전세가 내 집 마련을 방해하고 있다. 이참에 전세를 없애버리는 것이 낫겠다’로 이어지는 구조다. 하지만 전세사기로 인한 일시적 충격으로 만들어진 논리에서 ‘전세를 어떻게 없앨 것인지’, ‘없애고 난 후의 임대차 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는 없었다. 주간경향이 전세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팽배한 시절부터 꿋꿋이 ‘전세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온 전문가를 찾아나선 배경이다.
지난 6월 6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그는 “전세소멸을 주장하다가 정말 욕 많이 먹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구 소장은 한국 부동산 문제와 대책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전·월세 문제를 다룬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정책을 만들고 제안하는 일 등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구 소장은 “전세는 한국 부동산 시장을 혼란케 하는 핵심 기제”라고 분석한다. 그의 주장에는 전세를 자산증식 수단으로 악용하는 투기 세력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전세가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어떤 상황적 맥락 때문일까.
“임차인 입장에서 보면, 현금흐름을 저렴하게 가져가면서 주택을 빌려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전세에서 중요한 것은 임차인이 아닌 임대인의 입장이다. 시장에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 공급을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수요만 있어서는 시장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공급자 입장에서 ‘왜 자신의 집을 전세로 빌려주려고 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이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해답이 변한 적이 없다. 답은 ‘무이자 대출’이다. 이게 한국 부동산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가 살아남은 이유다.”
-전세를 부동산이 아닌 금융적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것인가.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내주는 주택은 일종의 담보다. 그 대신 목돈을 달라는 것이다. 본질은 집을 대가로 무이자로 돈을 받는 행위다. 법리적으로 보면 이는 순수한 채권-채무 관계다. 그래서 전세 세입자들이 임대인에게 갑질을 당하는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것은 임대차 계약이기도 하다. 즉 한쪽으로 보면 채권자-채무자 관계, 다른 한쪽으로 보면 임대인-임차인 관계인 것이 전세다. 현재는 전세의 본질을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로 보는 시선이 더욱 팽배해 있다. 하지만 계약이 ‘사적 대출’로 엮여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들이 사적 대출인 전세를 이용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전세를 임대차 계약으로 보고, ‘주거’라는 사용가치에 집중한다면 임차인의 동기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증금 이상의 가치를 지닌 집에서 수년간 거주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해당 관점으로는 임대인의 동기가 이해가 안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집을 8억원 정도의 보증금만 받고 세입자를 들였다고 해보자. 임대인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바보 같은 계약이 없다. 부동산을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세금을 내고, 집에 이상이 생기면 수리도 해줘야 하는데 정작 본인은 10억원짜리 집에서 살아보지도 못한다. 결국, 임대인의 동기는 사용가치가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임대인들이 전세를 선호하는 것은 교환가치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가진 현금이나 은행 대출로는 10억원짜리 집을 살 수가 없는데 전세라는 사적, 변칙 대출을 끼면 이 불가능한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이 궁극적 동기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전세는 계속해서 효용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럼에도 전세가 소멸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설명한 전세 구조에는 하나의 대전제가 빠져 있다. ‘집값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조건이다. 이 믿음이 깨지면 전세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집값이 안정화된 세상에 전세라는 제도는 존재할 수가 없다. 전세 끼고 집 사는 투자, 소위 ‘갭투자’를 통한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면 전세는 그 존속 이유를 상실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세는 소멸할 것이고, 소멸해야 한다고 본다.”
-전세소멸을 지향점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전세가 빠진 자리를 채울 실질적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나.
“무턱대고 전세를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사적 임대차 시장의 주거안정을 이루는 데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전세 보증금에 대한 관리다. 임대인 입장에서 보증금은 분명히 사적 대출임에도 지금껏 이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전세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정책이 나왔지만, 어느 하나 전세 보증금 자체를 규제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을 안정화하겠다고 여러 대출 정책을 내놨다. 그런데도 집값은 잡히지 않고 천정부지로 뛰었다. 이는 결국 전세라는 우회 통로를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증금을 임대인 소유 ‘부동산’의 하위영역으로 봐서는 대책이 나올 수 없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 보증금을 ‘대출’의 하위영역으로 보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규제하면서 전세 보증금만 규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 된다. 이렇게 보증금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면 시장은 월세로 방향을 틀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는 최저 주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월세 주택에 대한 ‘최대 임대료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쉽게 말해 이러이러한 기준을 갖추지 못하면 얼마 이상의 월세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쪽방촌 사례로 입증이 됐다. 사람들은 쪽방촌 주거환경을 보고 임대료가 아주 저렴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확인해보면 그렇지 않다. 정부가 주거급여를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쪽방촌 임대료가 해당 주거급여 수준으로 뛰어 버렸다. 지원을 하면서 동시에 관리도 했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결국 쪽방촌 사람들은 여전히 최악의 주거 수준에서 생활하고 있고, 정부 지원만 임대인에게 이전되고 있다. ‘최대 임대료 기준’을 마련한다면 전체 주거환경을 개선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도 선순환 구조다. 이를 달성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월세에 대한 ‘표준 임대료’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당연히 현재 전세 부담보다 적은 수준의 임대료다. 이렇게 하면, 전 재산을 보증금으로 맡길 필요도 없고 ‘집값이 계속 상승할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모두 법적 테두리와 상식선에서 가능한 내용이다. 단지 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부동산이 오르는 상황에서는 이런 정책들을 도입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전셋값이 내려서 각종 사회문제가 동시에 불거진 상황이 적기다.”
-전세소멸론을 말한 사람 중에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있다. 그런데 정부가 말하는 전세소멸은 그런 방향이 아니다. 시행된 대책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허그)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요건 강화 정도이고, 시행할 대책은 임대차 3법에 대한 조정 수준인데.
“정부는 전세가 파생한 문제들조차 제대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를 뭉뚱그려 그냥 ‘전세사기’라고 한다는 점이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쓴다. 전세사기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형법상의 범죄 성립 요건을 갖춘 사기를 의미한다. 상대를 기망해 재산상 손해를 입힌 행위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벌어진 전세사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분류법을 보면, 시장에서 한 달 전에 물건을 샀는데 그 물건값이 현재 가격보다 비싸 사기라는 식이다. 그게 깡통전세다. 집값이 전셋값보다 떨어져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경우인데 이건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생긴 문제이지 사기라고 보기 어렵다. 사람들이 전세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은 대부분 이 깡통전세 문제다. 그러면 이에 맞춘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를 구분하지 않다 보니 대책 자체가 뒤죽박죽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허그에서 전세보증금 대위변제액수에 이 깡통전세 문제를 넣고, 언론이 뭉뚱그려 전세사기 규모라고 보도한다는 점이다. 당장 나오는 반응이 ‘전세사기 피해 규모가 저렇게 큰데 그걸 어떻게 다 구제하냐’,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니 그냥 전세를 없애버리자’ 식의 대응이다. 원 장관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 있다. 전세를 없애려고 해도 전략적 접근을 해야 한다. 막연한 공포감만 조성하며 시간을 끌더니 사기 피해자들을 구제도 못 하고 골든타임만 놓쳤다. 몰라서 그랬다면 최악으로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정말로 나쁜 것이다.”
-‘임대차 3법’은 어떤가. 정부는 이 법이 전세 문제의 시발점이 됐기 때문에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핵심은 4년에 한 번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 보니 한 번 올릴 때 크게 올리면서 문제가 시작됐다는 논리다. 실제로 부동산 중개인들도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전세가격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난이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1000만원을 주겠다고 모 언론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밝혔다. 단 한명도 이를 입증하겠다고 연락해 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임대차 3법 비판에는 ‘왜’라는 질문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임대차 3법을 비판하는 주요 논거는 이 법 때문에 전셋값이 집값 수준으로 올랐고, 집값이 전셋값보다 떨어져 문제라는 식이다. 전형적인 인과관계 혼동이다. 애초 계약 당시, 집값을 뛰어넘는 전셋값은 있을 수가 없다. 상식에 기초한 세입자라면 누가 그런 계약을 하겠나. 그런 전세계약을 할 것이면 그 돈으로 그 집을 사는 것이 정상이다. 즉 임대차 3법 이전이든 이후든 적어도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할 당시에는 모든 전셋값이 집값보다 아래에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임대차 3법으로 전셋값이 폭등했다고 비판하려면 그 당시 부동산 가격 추세가 어땠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당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집값이 올라서 전셋값도 덩달아 올랐다고 보는 것이 인과관계가 맞지,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셋값이 집값 수준으로 올랐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는 인과관계를 뒤집어보면 더욱 분명히 보인다. 임대차 3법이 전셋값을 폭등시키고 집값까지 올린 것이 맞다면 법을 개정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대체 왜 전셋값이 하락하는 것’인가. 결국 집값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도 집값이 계속 올랐다면, 그때도 임대차 3법이 문제라고 지적했겠나. 오히려 전세를 싸게 살게 됐다고 안도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보나.
“현재의 전세는 부동산 시장을 혼란케 하는 기제다. 한국에는 집값이 등락을 거듭해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한 축이 있다. 이와 반대편에는 집값을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보고 등락을 계속해야 한다고 보는 또 다른 한 축이 있다. 후자의 세계에 머무는 사람들은 자산증식 수단으로 전세를 이용한다. 결국 시장을 혼란케 하는 전세가 존속하는 한 주거불안은 해소되기 어렵다. 모두를 충족시키는 대책은 있을 수 없다. 정부가 정말 부동산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결단을 해야 한다. 자산증식 수단으로 활용되며 각종 문제를 낳는 전세 대신 월세에 대한 정책을 늘리면 된다. 사람들이 월세를 싫어하는 것은 전세 비용보다 상대적으로 비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전세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할까. 이는 정부가 전세 지원책을 계속 쓰기 때문이다. 월세를 정책적으로 지원해 지금의 전세보다 부담을 덜 느끼도록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전세가 시장에서 자연히 도태된다. 불가능하지 않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정부가 전세를 지원하는 것이 부동산 투기를 계속하라는 말과 같다는 사실부터 인식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전세 없는 세상’에 대한 논의를 심도 있게 시작해야 한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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