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닥터 차정숙’ 엄정화 “나이 타박 장면, 내 시대 대변해준 것 같아 큰 공감”
데뷔 30년차 가수 겸 배우 엄정화(54)가 다시금 전성기를 맞았다. JTBC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통해 31년차 베테랑 여배우의 내공을 보여주며 스스로 황금기를 또 한번 열었다.
‘닥터 차정숙’은 겉보기엔 세상 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20년차 주부 차정숙(엄정화 분)이 죽다살아난 간이식 수술을 기점으로 현실을 자각하고, 가족을 위해 포기했던 전공의 과정에 재도전하며 2회차 인생을 사는 이야기다.
찍 소리 못하고 살다가 “이제 나 꼴리는 대로 살 거야”라며 남편 서인호(김병철 분)에게 불꽃따귀 날리는 차정숙의 다이내믹한 변화는 사이다와 함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타이틀 롤 ‘차정숙’ 을 연기한 엄정화는 맞춤옷을 입은 듯 진정성 있는 연기로 큰 공감을 불러모았다.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한 차정숙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첫회 4.9%(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출발해 4회 만에 10%를 돌파했고 최종회에서 18.5%로 막을 내렸다.
최근 소속사 사람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난 엄정화는 “항상 밖에 나가면 ‘엄정화씨’라 불렸는데, 이젠 친근하게 차정숙으로 불러준다”며 “연예계 생활을 30년 해왔지만 이런 친근한 반응과 캐릭터 이름으로 불리는 게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다”고 즐거워했다.
“저도 ‘닥터 차정숙’을 찍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뭘까 생각하게 됐어요. 이제 ‘최애’ 캐릭터는 ‘싱글즈’ 동미 보다 차정숙이에요.(웃음)”
‘닥터 차정숙’의 흥행은 그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타이틀 롤을 맡은 그는 대본을 받고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을 기다렸다.
엄정화는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기도 했지만 놓고 싶지 않았던 작품이었다”며 “이야기 자체가 잔잔하고 착해서 반응이 궁금했고 연기할 땐 차정숙의 진심이 오롯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작도 아니고 스케일이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실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연기에 대해서도 이렇게 칭찬을 받을 거라 생각도 안 해봤고요.(웃음) 잔잔하거나 착한 드라마를 아직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어요.”
‘닥터 차정숙’은 경력 단절 여성을 소재로 46세에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이 스스로 행복을 찾아나서는 모습으로 공감을 얻었다. 혼외자식, 불륜 등 막장 요소를 갖고 있었지만, 유머 코드로 버무리며 논란도 피해갔다.
무엇보다 “정숙이 나이로 타박 받는 장면에서 공감했다”고 한다. 인호가 “너 이렇게 해서 의사 되면 곧 50이야”라고 하자, 정숙은 “100세 시대에 50이면 청춘이지. 뭐 그래”라고 받아친다. 엄정화는 이 장면에 대해 “정숙과 나의 세대를 대변해주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저도 나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고, 기회가 줄어들기도 했어요. ‘이 나이엔 이거 하면 안된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 같은 나이가 주는 부담감은 내가 만든 게 아니잖아요. 옛날 사람들이 정해놓은 거 아닌가요. 꿈꾸기에 적당한 나이가 어디 있겠어요. 차정숙이 잘 되어서 저도 많은 힘을 받았어요.”
가장 속 시원했던 대사로는 “남편이요? 죽었어요”를 꼽았다. 엄정화는 “그 대사를 하자마자 현장에서 웃음이 터졌다”며 “정숙의 돌려서 까는 능력은 배우고 싶다”며 웃었다.
간이식 재수술을 한 차정숙은 최종회에서 서인호와 이혼하고 병원 개업 후 새 삶을 시작한다. 로이킴(민우혁 분)과 이어지지 않은 결말에 아쉬움 섞인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도 있지만, 엄정화는 “스스로의 길을 오롯이 걸어가기로 선택한 결말이 마음에 든다”며 “정숙의 독립을 응원해 주시는 시청자들이 많아서 시대의 변화를 느꼈다”고 했다.
“저라면 당연히 로이킴을 선택하죠.(웃음) 로이킴과 잘됐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실시간 댓글을 보면서 본방을 봤는데 정숙의 독립을 제일 바라고 있더라고요. 예전 같았으면 ‘누구를 선택하라’ ‘로이 킴과 잘돼라’는 시청자들이 많았겠지만 시대가 변한 것 같아요.”
“저는 가끔 환호소리를 들어요. 상상으로요. 그런데 이걸 대학 축제에 가서 듣게 된 거예요. 이런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닥터 차정숙’을 통해 다시 그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비슷한 시기 작품이 오픈되면서 배우 엄정화와 가수 엄정화의 모습을 동시기에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요. 최대한 이 순간을 느끼려고 해요. 누군가 ‘축하해요’ 하면 ‘아니에요’가 아니라 ‘나 지금 너무 기뻐요’ 이렇게 말해요.”
[진향희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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