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용의 입에서 만물 일체 나온다

2023. 6. 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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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前 이화여대 교수
용은 왕이자 꽃이자 창조신
왕 좌우 항아리에 매화 솟아
금동대향로 밑부분의 용틀임
용 입에선 연꽃 모양 피어나
보주는 우주의 기운 압축한 것
용 입 속 꽃은 만물 생성 근원

연초 처음 이 코너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꽃에 관해 관찰해 온 세월을 이야기했다. 물론 왜 꽃 이야기로 시작했는지 독자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때 이미 말한 것처럼, 세계미술품에 표현된 꽃들은 그 일체가 현실에서 본 자연의 꽃들이 아니고 예술가가 창조한 꽃으로, 역시 만물 생성의 근원임을 알았다. 그래서 영화(靈化)된 꽃인 ‘영화(靈花)’와 자연의 꽃들을 비교하기 위해 주변의 꽃들을 밀착하여 관찰하기 시작했었다. 자연의 꽃이 아니라 영화된 꽃은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변의 꽃을 바라보는 여유가 없을 만큼 팍팍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 꽃 이야기 이후 최근까지 이 코너에서, 용(龍) 얼굴 기와는 정면에서 양옆을 펼쳐서 표현한 기와임을 소개했다. 그런데 단지 용면와(龍面瓦)라고 명칭을 바꾼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명칭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용의 입에서 나오는, 처음 보는 이상한 조형들을 연구하는 데 매달리게 되었다.

2000년 즈음 용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용의 입에서 ‘영화’나 ‘보주(寶珠)’가 나오거나 제1 영기(靈氣)싹, 제2 영기싹, 제3 영기싹들이 나오고 있음을 점차 알아가게 되었다. 우주에 가득 찬 기운은 보이지 않으나 옛 예술가들은 그것을 형상화해 왔는데 그 일체를 영기문(靈氣文)이라 이름 짓고, 그 구성 요소들이 이상의 보주와 제1 영기싹 등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에서 20년째 매주 수요일에 강의하고 있다. 무엇인지 몰라서, 이름이 있을 리 없어서 직접 내가 만든 이상의 용어들은 세계미술품들을 두루 분석하며 세계 최초로 마침내 찾아낸 ‘조형언어의 형태소’들이다.

그 과정에서 처음 만난 것이 ‘용의 입에서 나오는 꽃’이었다. 물론 자연의 꽃이 아니고 영화다. 우리나라 기와지붕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건축물에도 용마루가 있는데, 대개 모란꽃 모양이 함께 전개되거나 입에서 영화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20년 전 이야기다. 용의 입에서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보주가 나온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처음에 꽃 이야기하며 조심스럽게 용의 본질에 접근해 가며 ‘용이 곧 물’이란 진리를 증명하려 했고, 귀신의 얼굴이 아니라 용의 얼굴임을 증명해 왔다. 용의 입에서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이번 마지막 시리즈에서는 ‘영화된 꽃’ 즉 ‘영화’ 이야기만 할 것이다.

용이란 물이므로 만물 생성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며, 가장 존귀한 창조신(創造神)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왕과 같은 존재로 인식돼 왔다.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일컬으며, 왕이 앉는 자리는 용좌(龍座) 또는 용상(龍牀)이라 부르고, 왕이 입는 옷을 용포(龍袍)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왕의 좌우에는 용을 그린 항아리에서 솟아나는 매화가 있다. 이 역시 매화처럼 보이는 영화인 보주다. 이처럼 ‘용=왕=꽃(영화)=보주’의 관계는 밀접하다. 꽃이 피는 까닭은 꽃이 피어 꿀을 담고 있거나 아름다운 꽃잎 색, 그리고 향기로 벌과 나비들을 유혹해 씨앗을 맺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미술품에서 씨앗을 보주로 승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보주란 보배로운 값비싼 보석이 절대 아니다. 보주라는 것은 대우주의 기운을 압축한 것임을 세계에서 내가 처음으로 알아내어 세계미술을 밝혀 나가고 있다. 몇 마디로도 알아듣는 지식만을 축적해 온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깊이 인식하는 바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출중한 ‘백제금동대향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에 관해서는 아직 완벽히 밝혀낼 수 없어서 논문을 쓰지 못하고 있다. 백제대향로 밑부분에는 웅장한 용틀임이 있고 용의 입에서 큰 연꽃 모양이 피어나고 있다. 용과 연꽃의 만남이다. 용의 입에서 거대한 연꽃 모양이 나오고 만물이 화생(化生)하고 있다. 그 큰 연봉 안에는 꽉 찬 거대한 보주가 숨겨져 있으니, 용의 입에서 보주가 나오는 것임을 말한다. 영화 외에 제1 영기싹, 제2 영기싹, 제3 영기싹 등 마침내 용의 입에서 인류 공통의 ‘조형언어’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조형언어로 인류가 창조한 일체 조형예술품을 풀어내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그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그러한 발견의 과정은 최근 출간된 ‘일향 강우방의 예술 혁명일지’(불광미디어, 2023년)에 큰 줄거리로 기록되어 있다. 나의 혁명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다. 매일매일 생각하고 동서양의 용을 분석하며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봐서 아직 혁명의 전야(前夜)일 뿐이리라.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가 알고 있는 용에 관한 지식은 거의 모두 옳지 않아서 그것에 의존하는 한, 그 본질에는 한 발짝도 접근하지 못한다. 용에 관한 엄청난 상징을 모르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아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을 알아 나가노라면, 인류 역사상 조금도 몰랐던 ‘영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체험하면서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익혀 배운 수많이 잘못된 지식을 버리고 지극히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우리는 한계에 갇혀서 살지 말고, 늘 한계를 초극(超克)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누비며 이런 이야기로 강연하거나 발표하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선생님, 지금 이야기한 내용이 어떤 기록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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