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산로드] '북벌론'의 시작, 강화산성 사대문 따라 걷기

신준범 2023. 6. 9.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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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여행 강화산성 10km 사대문 답사와 고려산 6km 산행
고려 궁터의 깔끔한 잔디밭. 읍내에서 북산을 오르는 산입구다.  잔디밭에서 우측으로 들면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고, 뒤쪽 임도를 따라 오르면 산성을 만나게 된다.
봄날의 강화산성을 찾은 젊은 등산인 안희운·백경록씨. 예상보다 더 화사한 산성 경치에 표정이 환해졌다.

강화산성은 효종의 복수심을 기억하고 있다. 왕자였던 봉림대군 시절,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봉림대군을 비롯한 왕실 가족은 강화도로 피란했으나, 출발이 늦었던 인조는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피란했다.

강화도를 지킬 지휘관으로 김경징을 임명했으나 패착이었다. 김경징은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이자 영의정인 김류의 아들이었다. 김경징은 유목민족인 청나라가 바다를 건너지 못할 거라 방심하고 추위를 이긴다는 핑계로 술을 마셨다. 청나라 군은 5,0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해 특유의 폭풍 같은 속도로 밀어닥쳤다. 김경징은 도망가고 대신 나선 부관 강진흔도 패하고 말았다.

봉림대군은 강화산성에서 항전하려 했으나, 산성은 이미 압도적인 청군에 포위당하고 말았다. 화약도 없고, 승산이 없었다. 백성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항복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청 병사들은 강화도의 백성들을 살육했다. 남한산성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강화도가 함락되고 왕실 가족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이 닿았고, 인조는 결국 항복해 청태종에게 머리를 박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아기마냥 귀여운 애기똥풀 꽃이 남산 오르는 산길을 가득 메웠다.

이후 봉림대군은 청나라 수도 심양에 인질로 잡혀가 9년 만에 돌아왔다. 부친 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효종은 북벌을 주장해 청나라를 치고자 했다. 10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 동안 10만 정예군 양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효종의 복수심 속에는 어릴 적 강화산성의 패전이 남아 있었다. 전쟁에 패한 인조는 치욕을 당했지만, 강화도는 백성들의 피가 넘쳐흘러 훨씬 더 참혹했다고 한다. 백성들이 숱하게 죽임을 당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걸 보았던 봉림대군의 마음에는 항상 복수심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강화산성으로 갔다. 읍내를 둘러싼 성곽 일부만 남아 있지만, 산성 사대문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강화 나들길과 겹치는 구간이 꽤 있어, 나름 운치 있는 걷기여행이 될 것 같았다.

연무당 옛터에서 산성을 따라 남산으로 들면, 입산 의식 같은 분위기의 나무계단이 나온다. 백경록씨는 등산전문 프리랜서사진가이다.

강화도 시리즈 세 번째 북부 이야기. 첫째 날은 강화산성을 걷고, 둘째 날은 고려산 산행으로 일정을 짰다.

연무당 옛터 주차장에서 강화도 북부편의 주인공 백경록(@rok_tographer), 안희운(@ola.heeun)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독특한 방식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별도의 계정을 운영해 인기를 얻고 있다. 백씨는 산에서 찍은 사진을 부계정(@sangaja.snap)에 공유하는 프리랜서 사진가다. 이를테면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산에 오른 커플 사진처럼, 참신한 시도를 하고 있다. 안씨는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산에서 찍은 인물사진을 투고 받아, 산을 소개하는 부계정(@mountain_e_ola)을 운영한다.

장군 지휘소였던 읍내 최고봉, 남산

서문西門이 늠름하다. 서문삼거리의 주인공이지만, 차량만 쌩쌩 지난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연무당鍊武堂 옛터 비석이 있다. 조선시대 병사들을 훈련시키던 곳으로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장소다. 흔적만 있지 않을까 염려했던 강화산성 사대문은 시작부터 역사의 현장이 연이어 나온다.

곧장 흙길이다. 강화읍의 북한산격인 남산을 오른다. 강화산성은 고려시대 1234년 처음 지었으며 조선시대에 여러 번 쌓고 보수했다. 800여 년간 외세의 침략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충지였다.

산성을 따라 곧장 남산으로 올랐다. 의외로 숲이 풍성하다. 아까시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짙은 초록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여전히 압도적인 견고함을 과시하는 강화산성. 서문에서 남산 정상으로 이어진 산성길은 경치가 시원해 걷는 맛이 있다.

서문삼거리에서 남산을 보았을 땐 워낙 가팔라 무더위에 고생문 열린 것으로 여겼는데, 애기똥풀 노란꽃이 팡파르를 터뜨리는 숲길은 의외다. 읍내 뒷산 같지 않게 숲 향기가 무척 진하다. 강원도 깊은 곳 밝음이 깃든 숲에 들어가는 것만 같다. 200m대 낮은 시골 뒷산이라 여긴 마음은 사라지고, 걸음이 진지해졌다.

달콤한 아까시 향기가 솔솔 다가오는 통에 일행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도시보다 훨씬 부드럽게 쏟아지는 햇살, 밝은 숲으로 손짓하는 나무 계단. 이토록 낭만적인 분위기의 계단을 본 적 있던가 싶다. 예상치 못한 풍경에 연신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다.

약수터에서 좁은 산길을 오르자, 다시 빛의 세상이다. 산성의 비밀 출입 통로인 남암문南暗門이다. 전쟁 시 필요한 물품을 옮기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구원을 요청하거나 적을 역습하는 이동 통로로 쓰였다. 강화산성에는 4개의 암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암문만 남았다.

비밀의 문에서 산성은 하늘에 닿을 듯 산을 치고 오른다. 승천하는 용처럼 힘 있게 정상으로 산성이 뻗었다. 바위를 겹쳐 쌓은 성벽은 높이만 5m가 넘는 견고한 벽이다. 산성을 따라 그대로 직등한다. 읍내가 등 뒤로 빽빽하게 펼쳐졌다. 길은 단순 명료하고 힘 있다. 여느 산에서 보기 힘든 묘한 경치에 호흡이 거칠어지면서도 재미있다.

남산 정상인 남장대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능선 산성길. 강화 읍내, 김포 문수산, 한강과 서해 합수점, 북한땅이 드러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독특한 경치가 이어진다.

토악질하듯 올라서자 남산(222m) 정상이자 남장대南將臺다. 공작새처럼 솟은 화려한 2층 한옥이 남장대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 천혜의 전망대이자 장군의 지휘소다. 조망도 장군급이다. 376m의 김포 문수산이 저렇게 높았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장벽을 이루고, 북쪽으로는 개성 땅이 드러난다. 북한이 이토록 가깝다는 것에 놀란다.

산성을 따라 내려가는 산길이 시원하다. 읍내 주택가와 멀리 김포가 선명히 드러나는 숨길 것 없는 길이다. 막 피기 시작한 아까시 향기가 진동한다. 산성을 내려서자 남문이다. 공원 역할을 하고 있지만 격조 있는 기품은 그대로다. 아직도 지킬 것이 남았다며 고집스럽게 단단함을 유지하고 있다.

동문으로 가는 길, 읍내를 관통한다. 맛집으로 소문난 육개장집에서 한 그릇 뚝딱 얼큰한 국물을 비우고, 길을 잇는다. 도시적인 것과 시골 분위기가 섞인 읍내도 볼거리다. 담쟁이가 핀 운치 있는 골목, 오래된 다방, 허름하지만 예쁘장한 책방,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섞여 있다. 골목 끝에서 문득 만나는 조선시대. 주택가 사이의 거인 같은 동문에서 하교하는 강화중학교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산성 따라 남산을 내려서면 고풍스런 남문을 만난다. 성문 안팎에 강도남문江都南門과 안파루晏波樓 현판이 있는데, 1975년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쓴 것이다.

공룡 같은 느티나무는 700년 수령의 보호수다. 평범한 주택가 같지만 1900년에 지은 성공회 강화성당을 비롯해 깊이 있는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담겨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고려시대 궁궐 터를 지나 북산(140m)으로 든다. 북문을 찾아 나선다.

잠깐 산길을 오르자 다시 산성이다. 보라색 붓꽃이 화려한 색깔로 반긴다. 산성을 따르는 길은 뙤약볕이지만 다양한 새 소리와 봄꽃이 피어 걸음이 가볍다. 높이는 낮지만 싱그러움은 얕지 않다. 북산 정상에는 별도의 표지석이나 이정표가 없다. 산성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넓은 잔디밭인 북장대 터가 정상 역할을 한다. 터만 남았으나 서쪽으로 드러나는 별립산(416m)의 위용에 속까지 시원해진다.

마지막 북문에 닿는다. 사대문 중 유일하게 짙은 숲 속에 있어 호젓하고 운치 있다. 나들길 따라 낮은 산등성이를 내려서자 출발했던 서문이다. 첨화루瞻華樓라는 수려한 이름의 서문은 오후의 햇살에 여유롭게 빛난다. 지난 아픔 잊고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것만 같다.

1900년에 지은 최초의 한옥성당인 성공회 강화성당. 산성 동문과 고려궁지를 잇는 주택가에 있다.

철쭉 화원이 된 진달래 명산

다음날 고비고개를 찾았다. 강화도 북부의 명산 고려산(436m)을 오른다. 진달래철 지난 진달래 명산은 마주치는 등산객 없이 한가롭다. 연극이 끝난 무대마냥 산길에 짙은 침묵이 깔려 있다. 덕분에 쾌적하게 오른다.

백련사를 잇는 도로를 지나자 고려산의 백미인 진달래 능선이다. 연둣빛일줄 알았던 능선은 핑크빛으로 감미롭다. 능선 남쪽 사면이 온통 철쭉 꽃밭이다. 다들 감탄하며 행복감에 젖는다. 진달래철이었다면 평일에도 등산객이 몰려 줄을 서서 걸었겠지만, 천상화원은 우리의 독차지다.

능선 데크길을 걸을수록 마음도 분홍으로 번진다. 아쉽게도 정상은 너무 가깝다. 정상에 배낭을 내려놓고 철쭉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자극적인 디지털 쾌락에 상한 마음의 결이 다시 건강해지는 것만 같다. 복수심 불탔던 효종도 오늘의 고려산에 있었다면, 옷고름 느슨하게 풀고, 스르륵 낮잠에 빠질 것만 같다.

고려산 능선을 종주하여 적석사 낙조대에 닿자 태양 주변의 원형 무지개인 햇무리가 나타났다. '환무지개'라고도 불리며 길운을 상징한다.
고려산 능선에 만발한 철쭉. 진달래로 유명하지만 철쭉도 못지않게 화려하다.

강화도 북부 가이드

고려산 산행은 코스를 다양하게 잡을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고비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해 정상을 거쳐 서쪽으로 종주해 낙조봉에서 적석사로 내려와 낙조대를 구경하고 산행을 마치는 6km 코스이다. 3시간 정도 걸린다.

짧은 산행을 원한다면 백련사까지 차로 올라 데크전망대가 있는 정상부를 둘러보고 백련사로 내려서는 2km 코스다. 긴 코스를 원한다면 미꾸지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해 낙조봉과 고려산을 거쳐 고비고개로 내려섰다가 혈구산을 오르는 방법이 있다. 고려산은 주능선에만 올라서면 완만하고 산길이 잘 나있어서 초보자와 함께하는 대중적인 산행지로 알맞다.

교통

고려산과 혈구산 입구인 고비고개는 강화터미널에서 39번과 62번 버스가 40여 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하산지점인 적석사에서 도로 따라 30분 1.8km를 걸으면 적석사 입구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강화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40여 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강화산성 걷기는 서문~남장대~남문~동문~강화성당~고려궁 터~북장대 터~북문~서문 순으로 돈다. 별도의 '강화산성 걷기길'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스마트폰 지도앱을 활용해 산성과 남장대, 북장대 터를 기점 삼아 돌아야 한다.

강화 나들길과 겹치는 구간이 많지만, 출발할 땐 서문에서 산성을 따라 곧장 오르는 것이 운치 있다. 총 10km이며 4시간 정도 걸린다.

맛집

강화도 북부 플러스 가이드 기사 참조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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