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만한 첼로 메고 매일 버스 2시간…“속상하지만 포기 못해”

윤연정 2023. 6. 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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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눔꽃][나눔꽃]
첼리스트를 꿈꾸는 이지안(가명·17) 학생이 5월31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첼로 연주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달 31일 충남 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내 건물 2층에서 만난 이지안(가명·17)양은 능숙하게 첼로 케이스에서 첼로를 꺼내 자리를 잡고 음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익숙한 선율의 바흐의 무반주 첼로 1번 프렐류드를 연주했다. 첼로를 꺼내는 것부터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 지안의 지난 10년을 실감케 했다.

■ 초2, 운명처럼 다가온 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지역아동센터에서 음악을 배울 기회를 접한 지안이는 첼로와 플루트, 바이올린의 차이가 뭔지도 모르는 채 운명적으로 첼로를 선택했다. 처음에 다른 악기도 같이 배웠지만, 결국 지안이의 마음을 끌어당긴 건 첼로였다. 지안이는 첼로를 배운 지 2년째 되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첼로 연주가 주는 전율을 처음 느꼈다고 설명했다. “처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를 할 때 곡을 끝내고 나서 느꼈던 그 후련함과 오케스트라 연주 끝에 온몸에 전율이 오르는 그 경험을 잊지 못해요. 그때 그 감정을 못 느꼈다면 지금 음악을 안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느덧 10년차 첼로 연주자가 된 지안이는 오케스트라에서 서로 다른 악기가 어우러지면서 멜로디가 되는 그 과정이 여전히 신기하다고 했다. 교회와 지역아동센터의 도움으로 중학교 때까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첼로 연습을 하고 대회 준비를 했던 지안이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정말 이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느 순간 제가 첼로고, 첼로가 제가 된 것 같아요. 항상 같이하는 이 모습이 익숙해요.”

■ “다른 건 몰라도 음악 아니면 안 돼”

같은 날 지안의 아버지(63)는 딸이 중학교 3학년 때 “다른 건 몰라도 음악은 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를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 첼로를 좋아하는 딸한테 지원해줄 수 없을 거 같았다. ‘음악은 취미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본 말에 보인 ‘음악을 해야 한다’는 지안의 반응에 아버지는 마음이 먹먹해졌다고 한다. 지체장애(3급)가 있는 아버지는 다른 노동을 하지 못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지안이의 엄마도 지적장애(1급)가 있어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되지만, 되레 지안이가 엄마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다. 세 식구가 살아가는데 들어오는 수입은 부모의 기초생활 수급과 장애인수당, 장애인 연금 등 국가에서 나오는 지원금 월 170만원이 전부다. 첼로를 전공하려는 아이를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다.

이런 사정을 아는 월드비전과 인근 지역아동센터 등 주변 기관에서는 지안이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 후원하고 여러 곳에서 지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올해는 대부분의 지원이 만료됐다. 당장, 첼로 레슨비와 개인 연습실을 감당하기에도 빠듯하다. 동네 피아노 학원 원장의 배려로 월 15만원에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빌리고 있지만, 개인 연습에 집중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다.

지안이는 주변 친구들처럼 월 30만원 하는 개인 연습실을 다니고 싶지만, 이마저도 가계 부담이 되기 때문에 지난해 여름, 처음 한달밖에 다니지 못했다. 지안이의 아버지는 “딸아이가 표현을 잘 안해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며 “속상하다고 말하면서 따지고 싶을 법도 한데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딸아이가 첼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으면 좋겠는 마음뿐이다. 이에 지안이가 내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입시 준비 때문에 돈이 더 많이 들어갈 것을 대비해 올해부터 매달 20만원씩 모으고 있다. 적은 금액이지만,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 조금이라도 지안이의 꿈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첼리스트를 꿈꾸는 이지안 학생의 아버지가 지난달 31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최근 지안이가 큰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난생처음 봤다고 설명하는 아버지의 표정에는 자랑스러움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드러났다. “제가 몸이 아프고 불편하다는 핑계로 아이를 더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거 같아서 미안해요. 딸아이가 정말 그렇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너무 났어요. 왜 더 일찍 신경 써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지난달 학교에서 열린 정기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지안이는 최종 협연자 두명 중 한명으로 선발돼 15분간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을 솔로로 연주하기도 했다. 곡 안에 여러 감정이 담겨 있는데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면 웅장해서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고 지안이는 소개했다.

지난해 학교에 3등으로 입학해 1학년이 끝날 무렵 실기 1등을 거머쥔 지안이는 지독한 연습벌레이기도 하다. “학교에 들어와서 친구들이 엄청 열심히 하고 잘하는 모습에 자극받았어요. 매일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와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 연주 준비 때는 새벽 3시까지도 연습했던 거 같아요. 안 되는 부분 때문에 화가 나도 화난 채 될 때까지 연습했어요.”

■ “상황이 속상하지만, 노력이 더 중요”

또래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지원을 받는 지안에게 ‘지금 상황이 속상하거나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대화하는 내내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던 지안이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지금 상황이 안 슬프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제일 속상하고 화날 때는 제가 제 기대만큼 못 하고 있을 때예요. 결국 제가 한 만큼 (연주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서, 지금은 다른 것보다 선생님이 알려줬는데도 제가 못 한 게 없는지 먼저 생각하게 돼요.”

그래도 지금 바라는 게 있는지 연이어 물어본 질문에 지안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악기도 조금 더 좋은 걸로 바꾸고 싶어요. 지금 연습실은 피아노 학원이라 시끄럽다 보니까 개인 연습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말 비현실적인 건데 차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첼로 메고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요.” 매일 162㎝인 자신의 키만 한 큰 첼로를 등에 메고 버스로 왕복 2시간이 걸리는 학교를 등하교하는 지안이는 항상 친구들을 차로 데리러 오는 부모님이 내심 부러운 듯 말했다. 기본 전공 첼로의 경우 천만원도 넘지만, 상을 휩쓸었던 지안이의 첼로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같이해온 200만원짜리 악기다. 지안이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참여한 대회에서 항상 2~3등을 하다가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참가한 콩쿠르 대회 3개 중 2개에서 1등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지안 학생은 2019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참여한 대회에서 항상 2~3등을 하다가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참가한 콩쿠르 대회 3곳에서 두번 1등을 거머쥐기도 했다. 사진은 지안이가 받은 상장. 이지안 학생 제공

■ 조금 더 넓은 세상이 궁금한 17살 소녀

어떤 첼리스트가 되고 싶은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안이는 솔직하게 말했다. “거창한 꿈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돈 잘 버는 첼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들한테 첼로를 가르쳐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첼로를 그만둔 미래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일 거예요.” 이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돈 잘 벌면 집에 연습실도 만들고 싶어요. 집이 제일 좋은데 집에서는 연습할 수 없어서 아쉽거든요.”

지안이는 좀 더 넓은 세상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안에게 ‘넓은 세상’은 가깝게는 서울이고, 더 멀리는 유럽이나 미국 등 클래식 본고장이기도 하다. “좀 더 넓은 곳으로 가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첼로에 꿈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이따금 상상하곤 해요. 사실 연습을 하다 보면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거든요. 저는 곡을 연주할 때 유튜브를 보고 잘하는 사람들 연주를 보곤 하는데, 영상과 실제는 다르니까 직접 보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안이의 눈이 반짝였다. 대화 내내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안이의 표정에 변화가 생긴 찰나였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이지안(가명) 학생과 가정에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우리은행 285-999966-18-004 예금주: 월드비전). 네이버 해피빈에서도 후원에 참여하실 수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원하시는 분은 월드비전 대표번호(02-2078-7000)로 문의해주세요. 또한 후원에 참여하신 뒤 월드비전으로 연락하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15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지안이가 꿈을 잃지 않도록 첼로 레슨비와 내신 성적을 위한 교육비(과외)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입니다. 월드비전은 지안이가 목표했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후원금을 투명하게 전달하고 보고하겠습니다. 목표 금액인 15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가정의 뜻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극희귀질환 포토키 룹스키 증후군을 앓고 있는 2살 지율이네 가족의 사연이 소개된 뒤 406분께서 “지율아 힘내자”, “희망을 잃지 마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1924만5684원(6월5일자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지율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고 도울 예정이며 지율이와 비슷한 다른 위기가정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했습니다. 후원금은 지율이의 의료비, 생계비로 전달됩니다. 지율이네 가정을 위해 따듯한 마음을 보내주신 후원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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