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더퓨처’처럼… 인공지능 세계에선 GPU가 만능 타임머신이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2023. 6.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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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AI시대의 전략]
챗GPT는 결국 확률, 엔비디아 GPU로 수학 행렬 계산해
시간별로 기록된 일기장 들춰 보듯이 과거·미래 여행 가능
국내 업체 퓨리오사AI·리벨리온·사피온, 엔비디아에 ‘도전 중’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저녁 식사 시간에 즐겨 보던 가족 드라마로 ‘패밀리 타이(Family Tie)’가 있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만든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 주인공이 바로 유쾌한 청춘 배우 마이클 제이 폭스였다. 이후에 그는 영화 ‘백 투더 퓨처(Back To The Future)’로 세계적 청춘 스타가 되었다. 그 영화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걸작이다. 영화에선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언(DeLorean)’이 등장한다. 그 타임머신 드로리언은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자로(Giorgetto Giugiaro)가 설계했다. 그는 현대자동차의 ‘포니 쿠페’도 같이 설계했는데, 그래서 두 자동차는 모습이 비슷하다. 두 자동차 모두 범퍼부터 보닛까지 길쭉하고 날렵하게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뚜렷한 선이 독특한 인상을 준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포니 쿠페를 재현해서 우리 기억의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1970년대로 돌아가게 했다. 하지만 우리가 물리적으로 과거 시간으로 여행하려면 빛보다 빨리 날아갈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무한대 에너지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공지능 세계에서는 우리가 과거와 미래로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과정의 계산 결과가 시간 순서대로 메모리에 기록되어 있는데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의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들어가서 고치기도 한다. 이 작업을 하는 반도체가 바로 ‘GPU(Graphics Processing Unit·그래픽 처리 장치)’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GPU는 인공지능 세계의 타임머신 ‘드로리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는 생성 과정에서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와 확률적으로 가장 가까운 단어, 그림, 혹은 음악을 그럴듯하게 순서대로 쏟아낸다. 마치 인간처럼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는 착각을 한다. 그런데 입력 데이터에서 시작해서 최종 출력인 확률을 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수학 행렬’ 곱셈이 순서대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행렬은 일종의 ‘숫자 묶음’으로 곱셈을 통해서 데이터가 존재하는 시공간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마치 행렬의 곱셈은 시간별로 기록된 일기장을 한 장씩 뒤로 넘기면서 과거의 기록을 들쳐 보는 것과 같다. 반대 방향으로 계속 일기장을 넘기다 보면 미래가 예측된다. 이렇게 일기장을 앞뒤로 넘기는 작업이 행렬 곱셈이다. 그리고 일기장은 반도체 메모리에 기록되어 있다. 이공계 수학 중에서 전통적으로 미적분이 중요했는데 이제는 행렬이 더 중요한 수학이 되었다. 행렬에 대한 기초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 교과과정인 ‘공통수학 I’에서 배운다. 이러한 수학 행렬 계산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기계, 즉 타임머신이 바로 GPU다.

GPU는 미국의 떠오르는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NVidia)가 개발했다. GPU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 GPU 공급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최근 1조달러(약 1307조원)를 돌파했다. 반도체 기업으로는 처음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GPU 시장 규모는 2022년 34조원에서 2025년 47조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김성규

GPU는 처음에는 컴퓨터 게임기의 3차원 영상 처리를 위해 설계한 반도체였다. 물체의 음영, 조명, 밝기, 표면 거칠기, 촉감, 느낌을 현실감 있게 구현한다. 이때도 인공지능과 마찬가지로 행렬 계산이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이제는 주로 챗GPT와 같은 초거대 인공지능을 위한 데이터 센터에 사용된다. GPU 내부에는 1만6000개 이상의 덧셈과 곱셈용 계산기 코어(Core)가 병렬적으로 설치된다. 옆으로 늘어선 병렬 구조가 행렬 계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GPU와 AI용 메모리 사이의 연결망도 병렬 연결 구조다.

현재 GPU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 서비스 능력에 있다. 엔비디아의 GPU 기반 행렬 계산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CUDA’라고 부른다. ‘CUDA’는 GPU의 특성에 맞게 최적화된 계산용 코딩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원리는 마치 회사에서 많은 직원이 협력하여 일을 효과적으로 동시에 처리하도록 지원하는 업무 프로세스와 매우 비슷하다. 예를 들어 매니저가 직원들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것과 같이, 어떻게 GPU를 활용해 작업을 순서대로 효율적으로 수행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이는 회사 내에서 직원들의 능력과 역할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소프트웨어는 엔비디아 경쟁력의 원천이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기업이 가장 부족한 핵심 역량이다.

인공지능 컴퓨터는 계산을 담당하는 프로세서와 계산 결과를 기록하는 메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에는 강국이지만 프로세서 산업(시스템 반도체)은 미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이제 프로세서 산업도 성장시켜야 진정한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GPU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 반도체가 절호의 기회다. 그 인공지능 반도체는 챗GPT와 같은 특정 생성 모델에 특화된 반도체가 될 수도 있다. 또는 학습보다는 생성 기능에 집중한 생성 전용 반도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저전력 성능과 저비용이 필수 경쟁력이 되어야 한다. 신뢰성과 안정성도 검증되어야 한다. 막대한 투자 비용도 마련해야 한다. 대단한 도전이다. 우리나라가 1980년대 처음으로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벌이는 상황과 유사하다. 그래서 대표적인 국내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들인 퓨리오사AI, 리벨리온과 사피온에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개발한 인공지능 반도체인 ‘드로리언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여행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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