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모’의 첫사랑 미스터리…백수린의 ‘눈부신 안부’

이유진 기자 2023. 6. 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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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소설가 백수린 12년 만의 첫 장편 <눈부신 안부>

2011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여름의 빌라> 등 세 권의 소설집과 중편소설, 산문집을 내고 번역가로도 활동해온 소설가 백수린이 데뷔 12년 만에 첫 장편소설을 선보였다. <눈부신 안부>(문학동네)는 2021년 봄부터 2022년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이토록 아름다운’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작품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1994년 도시가스 폭발 사고로 언니를 잃은 10대 초반 해미는 유학길에 오른 엄마를 따라 동생 해나와 함께 독일에서 살게 된다. 독일 G시에는 1970년대에 파견된 한국 간호사 출신 이모들이 있었다. 수재로 이름 높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독일에 온 행자 이모, 자유로운 삶을 즐기려 고국을 떠나 파독 간호사가 된 마리아 이모, 인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도 가지 못한 채 머나먼 땅에 온 선자 이모. 고작 18살 안팎의 청춘들은 하루아침에 “가족도 친구도 없이 불시착한 사람”이 됐고, 그 뒤 독일에 계속 남는 길을 택했다. 더군다나 선자 이모는 잊지 못한 첫사랑을 가슴속에 품고 사는데 그만 뇌종양에 걸린다. 해미는 선자 이모의 아들 한수, 마리아 이모의 딸 레나와 함께 ‘선자 이모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그러나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해미는 부랴부랴 귀국하고, 선자 이모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은 뒤 엉겁결에 하얀 거짓말을 하는데….

언니를 잃고 나서 제대로 된 애도를 하지 못한 해미가 뒤늦게 어른이 돼 선자 이모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치유받는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성장소설처럼 읽힌다. 해미가 깊은 바닷속 블랙박스를 열듯 선자 이모의 ‘첫사랑 미스터리’를 풀어내자 비로소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해미는 자신이 거짓말로써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리라 생각했지만 실은 ‘이모 공동체’의 다정함이 자신을 구원했음을 알게 된다.

독문학을 사랑한 선자 이모가 일기에 거듭 적었던 루이제 린저의 문장이야말로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하얀 거짓말이자 ‘눈부신 안부’일지도 모른다. ‘Alles ist noch unentschieden. Man kann werden, was man will.’(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어.) ‘희생’ ‘애국’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진취적이면서도 주체적으로 재현한 파독 간호사들의 이야기도 가슴에 남는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글항아리 펴냄, 전 3권 11만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완역 출간됐다. 1981년 미국에서 1권이 나오고, 한국어판 첫 번역이 1986년이었으니 완역까지 4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의 번역이 늦어진 데는 전두환 독재정권의 금지뿐만 아니라 한국의 분단 상황 탓이 크다고 적었다. 13쪽 서문만 읽어도 상당수 의문이 풀린다.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로리 오코너 지음, 정지호 옮김, 백종우 감수, 심심 펴냄, 2만4천원

국제적인 자살·자해 연구 그룹인 ‘글래스고 자살행동연구소’를 이끄는 로리 오코너 영국 글래스고대학 교수가 쓴 자살 연구서. 자살의 원인부터 예방까지 25년 연구를 집대성했다. 자살하려는 이의 심리, 자살 생각이 나타나는 과정,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을 지킬 방법, 자살 사별자를 위한 사후 개입 등을 이야기한다.

사계절 기억책

최원형 글·그림, 블랙피쉬 펴냄, 1만7500원

생태·에너지·기후변화 관련 책을 꾸준히 선보인 최원형 작가의 사계에 대한 기록. 새를 위해 전깃줄을 없앤 덕에 순천만에 월동하러 오는 흑두루미, 알뜰하게 단맛 과일을 파먹는 직박구리와 물까치,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 삵, 밟히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숙명을 지닌 질경이 등 한반도 동식물 이야기를 100여 점 세밀화와 함께 선보인다.

엄살원

안담 외 지음, 위고 펴냄, 2만원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세 작가(안담, 한유리, 곽예인)가 활동가들을 초대해 비건 만찬을 차려서 이야기를 나누는 ‘엄살원’을 열었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활동가, (전)디지털성폭력 피해 지원 활동가,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의원, 국내 첫 생추어리 활동가, 기후위기 활동가가 초대돼 웃기고 슬픈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지식의 지도

바이얼릿 몰러 지음, 김승진 옮김, 마농지 펴냄, 2만5천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수학, 천문학, 의학 지식은 중세 천년 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나? 서기 500년부터 1500년께까지 과학과 지식의 역사를 추적한 책. 서구 지식은 고대 그리스에서 근대로 껑충 뛴 것이 아니라 중세 천년의 분투 속에 계승됐다는 주장. 중세 지식의 허브였던 일곱 도시에서 고대의 지식이 재발견된 과정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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