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장관이 쏘아 올린 ‘전세 폐지론’..... 서민에게 축복? 재앙?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 사기극과 관련,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한 것 아닌가”라고 발언한 이후 ‘전세 폐지론’ 논란이 불 붙고 있다. 한때 전세는 한국 서민들에게 축복이라는 찬사까지 들었지만, 전세사기극과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벌어지면서 극단적인 폐지론까지 등장했다. 전세는 일종의 개인 사금융으로 공적 금융시스템이 발전하지 않은 과거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이다.
전세의 단점은 전세 사기극만이 아니다. 전세는 이론적으로 보면 매매가의 무한상승을 전제로 한 제도이며 투기적 주택구입을 위한 자금조달처이다. 그 극단적인 형태가 자기 돈 한 푼들이지 않고 전세금으로 집을 사는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무갭투자)이다. 매매가와 전세가격이 무한 상승할 때는 전세의 치명적 단점이 감춰져 있지만, 상승의 고리가 끊기는 순간 무자본 갭투자는 전세금 미반환사고, 전세사기극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전세는 서민의 축복에서 재앙으로 돌변한다.
◇서민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전세가 서민에게 축복이라는 평가도 재평가가 필요하다. 전세는 집값 변동성도 극대화한다. ‘통화정책과 전세’(The Credit Channel of Monetary Policy Transmission: Evidence From the Chonsei System)라는 논문을 발표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앤서니 장 조교수는 “전세제도의 궁극적 결과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투기적 주택 구입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전세거래로 인한 집주인의 수익은 주택가격 상승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정부는 물론 현 정부도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세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공적 금융의 발전으로 점차 존재가치를 잃어가던 전세의 생명을 연장시킨 게 다름 아닌 정부의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전세가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 내린 제도이기에 인위적으로 폐지하려는 시도는 또다른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전세의 문제점을 최소화할 방법은 없을까? 앤서니 장 교수는 보증금 미반환리스크 등 전세 제도의 부작용을 고려, 세입자들이 전세를 덜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전세를 금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반전세와 같은 부분 전세의 확대를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은행에 대해 과도한 전세 보증금 대출에 대해 추가 금리를 요구하는 것도 보증금 규모를 줄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작년말부터 시중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선 것과 관련, 앤서니 장 교수는 “시중금리의 하락은 전세금 하락과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금리는 2022년 이전의 금리보다 여전히 높고 미국의 기준금리가 오를 수 있어 집값의 향방을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부가 세입자를 위해 전세대출과 전세보증 한도를 늘린 것이 결과적으로 보면 전세가와 집값을 올렸다고 봐야하는가?
“우리 논문이 그러한 대책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았다. 그러나 다른 논문들을 참조하면 그러한 조치들이 전세자금 대출 증가로 이어져 전세보증금과 집값을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조치들로 인해 세입자가 더 큰 전세보증금을 감당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전세 보증금 크기와 집값을 상승시키는 동력이 됐을 것이다.”
-논문에서 전세의 변동성을 줄이는 제도적 장치를 제안했는데, 설명해달라?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정부는 장기적으로 세입자들이 전세를 덜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세제도가 오래전부터 있어 왔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전세와 같은 부분 전세제도를 의무화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은행에 전세 보증금 대출에 대해 추가 금리를 부과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인이 이미 반전세를 포함한 부분적 전세제도에 익숙해져 있는 만큼 반전세와 같은 부분 전세제도를 제도화하는 것이 가장 손쉽게 안정성을 도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전세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유는?
“제가 아는 한, 역사적으로 한국에서는 시중은행을 비롯한 공적 금융 시스템이 오랫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택구매자에게 충분한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하지 못했다. 전세제도가 등장하고 발전하는 주된 원인이 됐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에서는 도시 인구가 크게 증가했는데, 당시에는 공적 금융이나 은행 시스템이 낙후해 개인 간의 금전거래인 전세제도가 만들어졌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8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평균 LTV(집값대비 담보인정 비율) 가 36%로 대부분의 선진국 평균 LTV 보다 현저히 낮았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개인간의 대출거래에 더욱 의존하게 됐고 그게 전세제도라는 형태로 남아있다.”
◇금리 인상, 필연적으로 보증금 미반환 초래
-전세사기와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제도적 방지책은?
“전세계약 불이행의 일부는 집주인이 의도적으로 의무를 회피한 것이므로 전세사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세사기가 없더라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필연적으로 집주인의 전세계약 불이행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실제로 전세사기도 어떤 의미에서는 일정 부분 금리 인상과 관련이 있다.
금리가 오르고 전세 보증금이 줄어들면 집주인은 결국 이전 세입자에게 기존 보증금을 돌려주고 그 대신에 더 적은 보증금을 받게 된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주택을 구매하는데 써버렸기 때문에 원래의 보증금과 새 보증금의 차액을 상환할 수 없는 경우, 결과적으로 전세계약 불이행이 발생한다.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보증금을 제3자에게 맡기고 임대계약이 끝날 때 세입자에게 안전하게 돌려준다. 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은 그런 안전장치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동시에 논문에서 제안하는 정책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결국 전세 보증금 규모를 줄여서 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가 다양한 전세사기 방지책을 내놓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 정부는 여러 차례 전세사기 방지 및 피해자 지원 대책들을 발표했다. 이 대책들에는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전세계약 시 세입자에게 계약하는 집과 집주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전세제도를 이용한 주택투기를 막으려는 정부의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효과적으로 전세사기를 예방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대부분의 전세보증금 반환 불이행이 금리 상승과 이에 따른 전세 보증금 규모의 축소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전세 계약이 세입자와 집주인에게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전세 제도가 경제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정부가 어떻게 이 제도 자체를 규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욱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 논문이 정책입안자들에게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논문은 정책입안자들이 전세보증금의 규모를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 즉 금리와 통화정책이 전세 및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입주물량과 전세가격의 상관관계, 들쭉날쭉
-전세금은 금리도 변수이지만, 입주물량과도 관계가 있는 것 아닌가.
“전세 보증금의 크기는 금리 뿐 아니라 아파트의 수요공급과도 당연히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논문에서 금리가 전세보증금의 크기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다. 다만, 금리가 전세보증금 크기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게다가 입주물량 자료를 살펴보면 아파트 입주물량과 아파트의 월세대비 전세가, 월세대비주택가격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2016년 이전에는 이 세 변수가 함께 움직였지만, 그 이후로 이 세 변수는 서로 따로 움직였다. 예를 들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입주물량은 계속 증가했지만, 월세대비 전세가와 월세대비 주택가격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2019년 이후 월세대비 전세가와 월세대비 주택가격은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입주물량은 2018년 이후 계속 감소했다. 이 세 변수 간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 전세를 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은?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는 전세가 세입자에게 유리한 것 아닌가?
“이론적으로, 임차인은 전세보증금의 기회비용이 월세보다 적을 경우에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임차인이 월세가 아닌 전세를 선호한다면 월세는 시장에 존재하기 힘들다. 달리 말하면 전세와 월세가 공존할 수 있고 전세 보증금과 월세가격이 시장에서 동시에 형성되는 이유는 전세보증금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월세와 거의 같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전세는 월세보다 특별히 유리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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