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로하는 어떤가요

리빙센스 2023. 6. 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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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이봉규

당신을 응원하는 가요

CBS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유쾌한 B급 감성 라디오 프로그램 〈이봉규의 어떤가요〉. 나른한 오후 시간대, 1990~2000년대 댄스음악과 신들린 듯한 진행으로 청취자들의 정신을 번쩍 깨우고 있는 이봉규 아나운서(@wwwbklife)와 나누고 온 범상치 않은 음악 이야기.

방송이 시작되면 라디오 부스 안이 신나는 노래방으로 변신한다.

〈이봉규의 어떤가요〉는 월~토요일 오후 2시 5분부터 4시까지, 함께 만드는 가요 모읍집, 컴필레이션 카세트테이프를 표방하며 프로그램의 A면과 B면 을 1990~2000년대 댄스음악으로 가득 채운다. CBS에서 본 적 없는 B급 감 성으로 무장한 채 선보인 첫 방송 이후 모두가 '이 프로그램은 금방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벌써 3년째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은 아마도 나른한 오후 시간대를 깨우는 레트로 감성 사운드, 그리고 이봉규 아나 운서가 쏟아내는 수만 가지 추임새일 것이다. 그는 청취자들이 음악을 감상 하는 동안에도 여느 DJ들처럼 잠자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춤추고, 환호하 고, 소리 높여 따라 부른다. 매일 같은 시간 CBS의 돌연변이 같은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이봉규 아나운서는 무려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이라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스스로를 내향형 INFP 인간이라 말하며 때로는 방송을 위해 '억지 텐션'을 끌어내기도 한다고 말하지만, 심상치 않은 수준 의 '흥'이 노력만으로 발산되지는 않을 터. 그런 그를 만나 〈이봉규의 어떤가요〉가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된 비결과 흥의 원천, '인생의 쓴맛을 단맛으로 바꿔줄' 신명 나는 플레이리스트에 대해 들었다.

이봉규 아나운서와 나눈 이야기

Q CBS 방송국에서 가장 CBS스럽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불리고 있더라고요.

사실 진행자인 저조차도 아무리 길어봐야 2년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자리를 잡고 3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일단 나 부터 이 시간을 즐기고 사랑하면 진심은 언젠가 통할 거라는 마음만을 되새김질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Q 늘 차분한 무드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던 CBS가 〈이봉규의 어떤가요〉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배경이 아주 궁금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현재 프로그램의 담당 PD(저희 장모님과 이름이 같아 오피스 장모님이라고 부릅니다)인 선배와 돈가스를 먹고 있는데, 1년 뒤 론칭을 목표로 기획 중인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목도 정해뒀고, 댄스곡을 트는 동안 마이크를 켜둘 테니 마음껏 떠들어보라고 하더군요. 사실 속으로 '이 사람 정신 나간 소리한다' 생각하며 귓등으로도 안 들었습니다(웃음). 그런 B급 정서 의 프로그램은 절대 컨펌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6개월 뒤 쯤 오더니 진짜로 해보자고, 1990~2000년대 음악 공부를 시작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선배의 말을 귓등으로 듣기 시작했고, 출퇴근길에 1990년대 댄스곡을 무한 재생하다 보니 어느덧 유튜브 알고리즘이 저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숙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죠.

Q 1990 ~2000년대 댄스음악이어야 했던 이유는요?

당시는 시대적으로도 격변의 시기였던 만큼 정말 다양한 소재와 주제, 콘셉트로 음악이 만들어졌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절 음악들은 지금과는 달리 나름의 여유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음악이 시작되면 5초 안에 대중의 귀를 사로잡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여겨지잖아요. 하지만 1990~2000년대 음악은 지금 들으면 꽤나 길다고 느껴질 만큼의 길고 긴 전주, 간주, 후주가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호흡할 수 있는 틈을 허락해줍니다.

Q 아나운서님에게도 그 시절의 음악은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요즘 나오는 음악들이 소위 '핫플' 맛집이라면 저에게 1990~2000년대 음악은 엄마의 집밥이 아닐까 생각해요. 매일 외식만 하다 보면 한 달만 지나도 집밥이 먹 고 싶어지잖아요. 어린 시절 늘 먹고 자라온 밥이니까요. 그래서인지 그 시절의 음악에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던 갓 지은 밥의 온도가 느껴지는 것 같 아요. 대기 줄이 끝없이 늘어선 핫플 맛집에서처럼 빨리 먹고 비키라는 눈 초리에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주던 엄마의 마음이 그 시절 음악에는 존재합니다. 물론 저는 현재 아이브의 팬입니다.

Q 1990 ~2000년대 음악 외의 평소 음악 취향은 어떤 편이세요?

이 프로 그램을 진행하기 전 저는 〈ALL that Jazz〉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평소에는 재즈 음악을 즐겨 듣습니다. 방송 시간 외에는 가요를 거의 듣지 않는 것 같아요. 집밥 먹었으니까 외식하는 거죠(웃음).

Q 정말 믿기 어려운 취향이군요. 프로그램의 선곡 기준이 궁금해지는데요. DJ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나요?

저는 일절 선곡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담당 PD의 선곡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도 멘트 혹은 진 행 스타일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우산 없이 비를 쫄딱 맞고 집에 돌아와도 "재밌었니?"라고 물어봐 줄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따금씩 듣고 싶은 곡이 생겨 요청하면 틀어주긴 합니다(웃음).

Q 음악에 대한 '찐'사랑이 없고선 매일 이 정도의 흥을 발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사랑은 '갑돌이 사운드' 시절부터 시작되었나요?

갑돌이 사운드 와 관련해서는 할 말이 참 많은데요(웃음). 저의 음악 인생(?)은 사실 대학교 입학 이후 시작됐습니다. '에밀레'라는 동아리에 가입한 것이 저의 인생 분기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풍류를 좀 즐길 줄 아는 놈으로 다시 태어났거든요. 그리하여 만들어진 대학 시절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MBC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이었습니다. 군 제대 후 버킷 리스트 실현을 위해 결성된 그룹이 바로 갑돌이 사운드였고요. 남성 3인조 트로트 그룹이었는데 '못난 남자'라는 곡으로 2012년 본선에 진출했고, 가요제 참가 이후 각종 행사에 불려 나가면서 나름 짭짤하게 용돈도 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Q 이쯤 되니 아나운서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아나운서가 제 직업이 될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어요. 대학 졸업 후 여의도 어딘가의 삭막한 건물에서 일하는 직장인이었거든요. 1년 정도 지났을 즈음, 도저히 못해 먹겠다 싶어 과감히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다 대학가요제 를 통해 몇 번인가 방송에 출연했을 때의 도파민이 떠올라 이 길로 들어서 게 됐습니다.

Q 아나운서로 살고 계신 지금은 어떠신가요? 매력적인 직업인가요?

아나운서도 한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에 불과한데, 하는 업무가 조금 다를 뿐인 것 같아요. 가끔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는 있는데요. 지인들이 뜬금없이 연락을 해와서는 어떤 단어를 발음할 때 A가 맞냐, B가 맞냐 물어오곤 합니다. 그럼 제가 A가 맞다고 근거와 함께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곤 하는데 그런 순간들이…(웃음).

Q 당연하겠지만 늘 라디오를 진행할 때처럼 높은 텐션을 유지하고 계시진 않네요. 매일 2시간씩 흥을 유지하며 방송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뭔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정말로 흥겨울 때도 있지만 연기를 할 때도 많습니다 (청취자 봉팔님들이 배신감을 느끼실까 봐 걱정됩니다). MBTI도 INFP거든요. 매일매일 신나는 진행을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울 때도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일한 품질의 텐션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하루 종일 말을 거의 하지 않다가 방송에서 폭발시킨다거나 하는 것들. 비결이라 기보다 용을 쓰고 있다고 표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척하다 보면 생활이 된다고 하잖아요(웃음). 모든 직장인들과 같은 마음 아닐까요?

Q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청취자분께 응원 문자를 보내드렸던 일화를 우연히 봤어요. 사연을 주고받는다는 점은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 같아요.

청취자분들이 저를 통해 힘을 얻기도 하시고, 저 역시 청취자분들의 사연을 통해 힘을 얻기도 해요. 저희 프로그램 덕분에 갱년기 우울증이 사라졌다, 운전 중 잠을 깨워줘서 고맙다, 이 프로그램을 들으려고 일부러 같은 시간에 외근을 나온다 같은 사연들이 떠오르네요. 처음 들었던 날엔 최악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애청자가 됐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도 정말 큰 힘이 났어요.

일과 삶 모두에 언제나 진심으로 임하는 이봉규 아나운서. 3년 전 포스터 촬영을 위해 구매했던 의상을 오랜만에 꺼내 입었다

Q 생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도 많이 일어날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세요?

1주년 특집 돌잔치, 2주년 공개방송도 기억에 남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사건은 호기롭게 시작한 첫 방송 후 이튿날 바로 방송을 하지 못했던 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아내가 밀접 접촉자가 되면서 가족도 격리해야 하는 방침으로 출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첫 방송 이후 CBS에서 본 적 없던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이 일던 때라 '바로 짤렸나 보다' 생각하신 청취자들도 많았다고 해요(웃음).

Q 대형 사고였네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죠.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라디오 진행의 가장 큰 매력은 뭘까요?

귀 기울여 듣지 않더라도 삶 속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해 묵묵히 소리를 내는 것이 라디오라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일상에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기도 하고요. 그만큼 말 한마디의 무게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저희 프로그램 덕분에 하루가 더 즐겁다는 시그널을 보내주시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습니다.

Q 진심으로 프로그램을 아끼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져요. 〈이봉규의 어떤가요〉는 이봉규라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토르의 망치, 아이언맨의 슈트 같은 존재. 가끔은 내 피부 같아서 상처가 나면 연고도 발라주고 싶고 요. 열심히 공부해서 매수한 주식 종목 같기도 합니다. 이 종목과 사랑에 빠져 손절도 못하고 강제 장투하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 습니다. "프로그램과 내가 비로소 한몸이 되었다라고요(웃음).

부스 안에 들어가면 마이크와 나, 오직 둘만의 싸움이 시작된다.
부스 안에 들어가면 마이크와 나, 오직 둘만의 싸움이 시작된다.

Q 〈리빙센스〉 독자분들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치 〈이봉규의 어떤가요〉처럼, 꿀꿀한 기분을 끌어올려 줄 곡들로요.

'인생의 쓴맛을 단맛으로' 만들어줄 곡들을 추천해드린다면 나훈아의 '테스 형!', 봉딱의 '인생부동산'(참고로 제가 봉딱입니다), 양혜승의 '화려한 싱글'. '가슴이 뻥 뚫리는 곡'을 원하신다면 노라조의 '사이다', 싸이의 'Right Now', 차태현의 '이차선 다리'(반드시 록 버전으로 들어주세요). 'B급 같은 A급' 감성을 원하신다면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 루이스의 '중화반점', 크레용팝의 '빠빠빠'. 마지막으로 최신 곡들을 추천해드리자면 아이브의 'After Like'(PD와 제가 광팬입니다),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 세븐틴의 '아주 NICE'.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Q 〈리빙센스〉에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추천 곡들이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어요.

대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예상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 보니 미래의 제가 어떤 삶을 살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네요. 그저 한 아이의 아빠로,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으로, 자랑스러운 부모님의 자식으로, 그리고 〈이봉규의 어떤가요〉가 존재하는 한 봉팔님들의 봉디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싶습니다. 삶의 지혜인 '리빙' 센스는 다소 부족하지만 '러빙' 센스만은 풍성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웃음). 〈리빙센스〉 독자 여러분, 모두 우상향 길만 걸으시길 간절히 응원합니다!

〈이봉규의 어떤가요〉 (월~토요일) 오후 2시 5분 CBS 표준 FM 98.1MHz (서울, 경기)

CREDIT INFO

editor장세현

photographer김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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