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던 '간호법' 결국 폐기됐는데...오히려 표정관리하는 민주당, 왜?
야권이 입법을 강행 추진해온 간호법 제정안(이하 간호법)이 정부·여당의 반대로 결국 폐기됐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다. 입법은 무산됐지만 '야권 강행 처리→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재표결→최종 부결' 과정을 거친 만큼 총선을 앞두고 간호사 표심을 야당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국회는 30일 오후 본회의에서 간호법 재의의 건에 대해 무기명 투표를 실시, 법안을 부결 폐기시켰다. 표결 결과는 재석 의원 289명 중 찬성 178명, 반대 107명, 무효 4명이었다. 간호법은 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해 다시 국회로 돌아온 법안이다. 법안이 재의결에서 통과되려면 재석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민주당은 법안이 부결된 직후 "간호사들의 오랜 열망인 법이 통과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당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대통령의 거부권 때문에 현실적으로 입법이 어려운 이른바 '거부권 정국' 속에서 핵심은 여론의 향방이었는데, 이 부분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자평이 나왔다.
한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명확했던 상황에서 이번 싸움의 쟁점은 법안의 통과 여부가 아닌 여론전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였다"며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간호사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과 간호법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약속했던 법안이라는 점을 강조해온 것이 여론전에서 효과를 봤다"고 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간호법에 대한 우호적인 목소리가 꽤 높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알앤써치가 지난 3~5일 CBS노컷뉴스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해 '반대' 의견이 51.8%, '찬성' 37.8%, '의견유보'는 10.4%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성별·연령대별·지역별 인구 구성비에 따른 비례 할당으로 추출된 표본을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전화 RDD(임의전화걸기) 100% 자동응답 방식으로 이뤄졌다. 응답률은 1.6%, 표본오차는 95%의 신뢰수준에 ±3.0%P(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간호사들의 강력한 결집력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간호사 자격증 소지자는 39만1493명이다.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나머지 보건의료인력 92만9342명의 절반에도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특성상 정치적 결집력이 강해 대선보다 투표율이 낮은 총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간호사들은 간호법에 반대하는 의사나 간호조무사들은 물론, 어떤 직군과 비교해도 결집력이 강하다"며 "내년 총선에서 표심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국민의힘 의원들의 우려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수도권에서 간호사들이 본인의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에게 투표를 독려한다면 영향력이 분명히 적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간호협회는 현재 총선기획단까지 출범시키며 정부·여당을 투표로 심판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은 지난 19일 총선기획단 출범식에서 "국민의힘은 간호법 제정 약속을 어겼고, 복지부는 간호법 가짜뉴스 확산에 앞장섰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간호법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한 부패정치인과 관료들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정부와 국민의힘은 간호계 달래기에 애쓰는 모습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0일 본회의 전 간호법에 대해 "앞으로도 직역 간 중재와 설득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당정은 간호계가 요구하는 간호사 처우 개선은 간호법안 없이도 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지난달 25일 정부가 발표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이행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폐기된 간호법은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 등에 대한 규정을 기존 의료법에서 분리하고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았다.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를 별도의 법으로 규정한다는 점 때문에 의료·보건 직역 단체 간 갈등이 첨예하다. 간호사는 처우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 주장하고 있고, 의사·치과의사·간호조무사·방사선사·임상병리사·응급구조사·요양보호사 등은 간호사의 단독개원을 가능케 할 수 있다며 결사반대를 외쳐왔다.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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