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건너뛰고 결말까지 공개…‘드라마 요약본’에 제작사 골머리

남지은 2023. 5. 3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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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까지 공개한 드라마 리뷰 영상들. 유튜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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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드라마 요약본’을 검색하면 콘텐츠 수백개가 뜬다. 드라마를 핵심만 추려 놓은 것이다. 17년 전 24부작 <궁>(MBC)부터 최근 나온 넷플릭스 10부작 <엑스오(XO), 키티>까지 웬만한 작품은 다 있다. 요즘에는 ‘중간 정산’도 이뤄진다. 30일 현재 14회까지 나간 <닥터 차정숙>(JTBC)은 지난 25일 1~12회 요약본이 등장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활성화로 드라마 제작이 많아지고, 영상이 익숙한 세대가 쇼트폼 등 짧은 콘텐츠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유튜브에 이런 요약본이 활개를 친다. 드라마를 요약본으로 자주 본다는 직장인 김아무개(45)씨는 “블로그에서 회차별 줄거리도 읽지만, 영상으로 보면 짧은 시간에 드라마 한편을 감상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대학생 윤아무개(22)씨는 “꼭 보고 싶은 작품 외에는 요약본으로 내용을 파악한다. 할 일도 많고 볼 것도 많은 시대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드라마에 대한 유튜브 콘텐츠가 10분짜리부터 60분짜리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자극적인 제목이나 섬네일(메인 화면)에 대한 사용자들의 거부감도 덜하다. 드라마 관련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200만명이 넘는 인기 채널도 많다.

그러나 이 ‘쉽고 빠른’ 요약본이 드라마 시장을 망가뜨리고 있다. 요약본이 조회수 높이는 ‘킬러 콘텐츠’가 되면서 결말까지 공개되는가 하면, 영상 무단 사용이 늘어 저작권 침해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 제작사에서 드라마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방영 초반에는 유튜버와 연계해 요약본을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홍보라는 생각에 무단 사용을 방치하다 보니, 결말이 공개되는 사태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 요약본은 대략 3년 전부터 인기를 얻었는데, 결말까지 공개하는 유튜브 콘텐츠는 최근 1년 사이 크게 늘었다.

저작권 문제가 중요해지면서 유튜버들이 방송사에 허락을 받기도 한다. 방송사와 유튜버가 연계해 요약본을 마케팅으로도 활용한다.

관련 업계는 콘텐츠 보호에 나서고 있다. 저작권 침해 신고를 해본 드라마 제작사의 관계자는 “신고를 당하고 영상을 삭제당한 사실까지 유튜버가 공개하고 다른 이들도 알게 되면서 한동안 신고 효과는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영상이 너무 많아서 최근 작품이나 결말까지 공개된 것들을 주로 신고한다”고 말했다. 오티티 웨이브 쪽은 “유튜버에게 초반 회차 사용에 한해 허가해주는데, 결말 공개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티티 넷플릭스 쪽은 “홍보 영상에 한해서만 (영상 이용을) 허락한다”고 했다.

유튜브 쪽은 “저작권 보호 시스템들을 이용해, 2021년 상반기 전세계 기준으로 7억2천만건 이상의 저작권 침해 사례를 발견하고 160만건 이상의 삭제 요청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상이 너무 많은데다가, 프로그램 제목을 언급하지 않는 등 여러 방법으로 단속을 피해나가기 때문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요약본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 맞춰 드라마의 서사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상파 출신 프리랜서 드라마 피디는 “요약본이 확산하고 일반화되면, 거기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 맞춰 드라마에서도 인물이 사색하는 신 등은 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작품에 대한 적절한 감상과 이해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한 유명 드라마 작가는 “드라마는 소품 하나에도 의미를 담는데, 요약본에서 다 건너뛰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직접 보고 생각해야 하는 기회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억울하다는 유튜버들도 있다. 드라마 결론까지 공개해 조회수 높이기에 열을 올리는 경우와 드라마 비평·해설 등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경우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유튜버는 “드라마 저작권을 보호하면서 유튜버도 창작활동이 보장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영상을 구매해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드라마 영상은 30초에 40만~120만원을 받는 곳도 있어서 개인 유튜버가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저작권 침해로 영상 삭제를 경험한 유튜버들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거나, 직접 출연해 설명하는 등 대안을 찾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유튜버들을 상대로 한 저작권 소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일본의 주요 미디어 기업 13곳이 영화 요약 영상을 올려 저작권을 침해한 유튜버 3명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 1월 50억원 배상 판결이 선고됐다.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디어 기업 쪽 변호인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소송은 피해 복구와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한 일”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유튜버들이 영화 전체 내용을 10분 내외로 편집한 ‘패스트 영상’이 논란이 되고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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