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간호법 폐기'… ‘정치 무능’ 드러내고 논란만 키워
소통없는 정부·여야 조정 실패
김진표 “정쟁 인한 상황 유감”
간호법 내용 대부분 의료법서 차용
31개 조항 중 새로운 건 7개 조항뿐
간호사 처우 개선 등 방향제시 그쳐
그럼에도 의료인들 내부 극한 대치
“尹은 협치 밝히고 野는 실용 접근을”
낡은 법 정비·의사 수 확보 등 과제로
“국민 입장에서 부당한 입법폭주를 저지하기 위해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지켜보던 간호사들 퇴장 대한간호사협회 회원들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이 부결되자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이 출석 의원 289명 중 찬성 178명, 반대 107명, 무효 4명으로 부결됐다. 서상배 선임기자 |
정부·여야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사이 간호사·간호대생은 거리로 나섰고 의사·간호조무사 단체는 국민 건강권을 볼모로 한 부분파업을 감행했다. 법안이 폐기됐지만 갈등이 금세 사그라들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은 이날 국회 본회의 직후 간호법 재추진 의사와 함께 내년 총선 심판의 뜻을 밝혔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여야 모두 대화를 하고자 하면 (진영 내에서) 욕을 먹는 상황이 된 것 같다”며 “내년 총선 때까지 경색 국면이 해소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보니깐 정치권의 대화 실종이 일종의 뉴노멀(새 기준)이 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제2, 제3의 간호법 사태를 막기 위해 윤 대통령에겐 “협치에 대한 의지 천명”을, 제1야당인 민주당에는 “실용적 접근”을 주문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은 결국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며 “결국 대통령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협치 의지를 밝히고 국민의힘에 야당과 협상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윤 대통령이 협치를 선언하더라도) 손바닥 하나로 박수를 칠 수 없기 때문에 야당 또한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윤 대통령이 여야 대화·타협을 통한 협치로 정국 전환을 모색하고 민주당이 실용적 관점, 민생 우선의 관점에서 화답하는 모양새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간호법 논쟁은 정치권에만 숙제를 남긴 게 아니다. 낡은 의료법 체계가 과거와 달라진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데 따라 현장에서 누적된 갈등이 간호법 처리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다. 시대착오적인 의료체계의 손질이 필요한 이유다. 각 직역 업무영역 유연화·의사 공급 확대 등을 통해 대폭 늘어난 지역사회 돌봄·의료수요에 대응해야 한다는 게 대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해외에서 간호사나 임상병리사, 방사선사가 할 수 있는 걸 우린 의사만 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의사들이 여러 직종의 업무를 모호하게 규정했으면서 다른 직역의 업무를 두고는 업무영역 침해라고 하는 게 반복돼 지난 60년간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간호법에는 간호사 업무 관련 내용이 10페이지 넘게 들어가 있다고 한다.
앞으로 병원 밖 돌봄·의료수요가 늘어나면 간호사나 물리치료사 등의 업무가 더 유연해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부도 재택 의료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은 방문진료를 비롯한 재택 의료체계가 미비해 참여율이 높지 않다. 흔히 왕진으로 불리는 동네의원의 방문진료는 2019년 말부터 시행됐는데, 이날 기준 전체 동네의원 약 3만5000곳 중 858곳(한의원 제외)만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매번 의사를 불러 큰 비용의 방문치료를 받을 수는 없다”며 “지역사회에서 의사 외의 다른 직역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관건이다. 도서벽지 등 의료취약지와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는 부족한데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 증원과 다른 직역의 업무범위 확대 등을 모두 반대하고 있다. 소위 ‘기피과’ 의사들의 처우개선도 중요하지만 늘어날 의료수요에 맞게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 교수는 “간호사 등이 방문간호를 할 때 지시, 판단을 내리는 의사 수도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며 “의사는 없는데 의사 배출이 늘지 않으면 고령화에 대비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1일 대한의사협회와 의대정원 확대 관련 논의를 재개한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줄어든 수(351명)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김승환·최우석·이정한·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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