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김해공항을 걱정하는 이유

김영동 2023. 5. 3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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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김해공항. 부산시 제공

[전국 프리즘] 김영동ㅣ영남데스크

1998년 4월 강원도 철원 군부대에서 3박4일 첫 휴가를 나왔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서울역에서 집이 있는 부산까지 기차로 네댓 시간이 걸렸지만, 비행기로는 한 시간이면 넉넉했다. 집도 김해공항에서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생애 첫 비행의 감동과 기대는 40여분 만에 공포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비행기는 세 차례 실패 뒤 가까스로 착륙했는데, 착륙에 실패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느라 수명이 줄어드는 듯했다.

2002년 4월15일 오전, ‘쿵’ 소리를 집에서 들었다. 김해공항에 착륙하려고 선회접근을 하다 안개 등 기상 악조건으로 활주로를 찾지 못한 중국국제항공 비행기가 경남 김해시 돗대산에 부닥치며 난 소리였다. 탑승객 167명 가운데 129명이 숨졌다. 이런 경험 뒤 비행기 타는 것을 ‘매우’ 싫어하게 됐다.

김해공항은 착륙이 어렵기로 소문난 공항이다. 위치와 기상 조건 때문이다. 김해공항에는 봄여름에 종종 강한 남풍이 부는데, 착륙 때 강한 뒷바람을 받으면 양력이 떨어지고 활주 거리가 늘어난다. 따라서 강한 남풍이 불면 김해공항을 찾는 비행기는 남쪽에서 올라와 활주로를 지나친 뒤 선회해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며 착륙해야 한다. 그런데 김해공항 7~10㎞ 북쪽에 돗대산과 신어산이 있다. 게다가 김해시의 소음 문제로 남해고속도로 북쪽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 결국 비행기는 김해공항 북서쪽 김해평야 지역으로 비행하다 김해시와 부산시 경계 지점에서 우선회 착륙한다. 조종사들 사이에서 악명 높다는 선회접근 뒤 착륙이다.

선회접근은 왜 악명 높을까. 국토교통부 항공정보간행물 등을 보면, 조종사는 활주로에서 5㎞가량 떨어진 남쪽에서 진입해 공항과 활주로 등을 눈으로 우선 확인하고, 활주로 기준 왼쪽으로 3.6㎞가량 떨어져 활주로와 평행하게 직진 비행한 뒤 활주로에서 1.8㎞가량 벗어난 곳(강서구 가락동)에서부터 우선회를 시작한다. 45도씩 4단계에 걸쳐 180도로 우선회하되, 선회 반지름은 신어산과 김해시 등을 고려해 4~6㎞를 넘으면 안 된다. 시속 220~250㎞를 유지하며 고도를 360m, 270m, 210m, 135m로 점차 낮춘 뒤 활주로와 비행기를 정렬해야 한다. 날씨 등으로 지형지물 확인이 안 되면 무조건 고도를 올려 다시 처음부터 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이때 조종사는 무척 바쁘다. 진입방위·하강각도·하강률·기체안정화·고도·속도 확인, 기체 활주로 정렬 등 계기비행에다가 활주로 유도등·지시등·선회등과 항공장애주간표지·지형·기상 상황 등 눈으로 직접 외부 상황을 시시각각 판단하면서 착륙을 진행한다. 짧은 시간 동안 상황 변화에 따라 여러 판단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국내외 여러 항공사는 김해공항을 조종 난이도 최고 등급의 특수 공항으로 지정한다. 중국 상하이항공 등은 조종사들에게 선회접근 뒤 착륙 훈련을 시키고 평가에서 합격해야 김해공항 비행을 허가할 정도다.

그런데도 선회접근 관련 항공기 준사고(중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는 일어난다. 2012년 5월8일 김해공항으로 선회접근 뒤 착륙하던 비행기가 허가받지 않은 군용 활주로에 착륙했다. 당시 활주로에서 작업 중이던 작업자들은 관제사의 긴급 지시를 받고 황급히 대피해야 했다. 대피 시간이 2분14초를 넘었더라면 비행기가 차량과 충돌해 대형 사고가 났을 터다. 2019년 9월7일에도 비행기가 선회접근 뒤 착륙하다 엉뚱한 활주로에 착륙했다. 마침 활주로가 비어 있어 다행이었다. 여태까지 항공 종사자 등의 노력과 빠른 대응, 그리고 운이 더해져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도 착륙하기 위해 김해공항 왼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병풍처럼 둘러 있는 산 위에서 비행기가 선회하며 고도를 낮추는 모습을 보면 머리카락이 주뼛 선다. 항공 종사자들이 실수하지 않기를, 행운이 있기를 기원한다.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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