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계약직 여사원, 어떻게 정직원으로 점프했을까

세이노 sayno@korea.com 2023. 5.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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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닷컴 독점 연재] 세이노의 가르침
저는 4년 넘게 계약직으로 전전하며 항상 고용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공기업 정규직이 되기 위해 시험 공부는 하고 있지만, 계속 낙방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돈 걱정을 안 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은 계약직이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지만, 돈 버는 방법을 꼭 찾고 싶습니다.(지난 26일 받은 20대 독자의 메일 중 일부)

그동안 계약직으로 일하는 20~30대 젊은 독자들이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 달라며 보내는 메일들이 많았다. 그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계약직 혹은 무기계약직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계약직은 근로기간이 최대 2년이며 2년을 넘기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는 것(파견직인 경우에는 원청회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 무기계약직은 해고 절차가 정규직과 동일하여 고용은 안정된 상태지만 대우는 정규직과 차이가 난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이와 관련된 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시행령이다. 하지만 계약직이나 무기계약직이라는 용어는 법에 전혀 나오지 않으며 고용노동부에서 편의상 사용하는 용어일 뿐이다.

법에서 계약직은 기간제 근로자다. 무기계약직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라고 부르는데 정규직이 법적으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직이므로 정규직과 법적 신분은 동일하다(계약직으로 2년 넘게 일해도 문제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건설현장에서 공사기간에 맞춰 일하거나 질병을 앓아 휴직 중인 정규직 근로자를 대신할 때다. 이때는 정규직 휴직 근로자가 복귀할 때까지 계약직 유지가 허용된다. 또한 나이가 55세 이상이거나 고액 근로소득자이거나 전문직인 경우에도 2년 이상 계약직을 유지할 수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는 계약직, 파견직 등을 의미한다. 무기계약직은 제외된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하지만 계약직 근로자가 무기계약직이 되었을 때, 처음부터 정식으로 공개선발과정을 거쳐 채용된 정규직 근로자와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때문에 한국에서 근로자의 신분은 계약직, 무기계약직, 정규직으로 계층화되어 있다.

계약직은 근로 기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고용과 해고가 손쉽다. 무기계약직은 보수 차이를 제외하고는 이론적으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정규직과 동일하다.

기간제법 제8조 제1항에서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임을 이유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 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조항은 ‘①계약직 대 무기계약직의 관계’이고 ‘②무기계약직 대 정규직의 관계’에는 적용될 수 없다.

물론 이 조항이 ‘③계약직 대 정규직의 관계’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가 아니라면(또는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한다면, 또는 정규직 그 누구도 그 업무를 하는 사람이 없게 한다면) 그 주장은 힘을 잃는다.

‘②무기계약직 대 정규직의 관계’에서 무기계약직에게도 정규직에게 적용하는 취업 규칙을 적용하여 호봉과 수당 등을 동일하게 인정하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기는 하다(대법원 2019.12.14. 2015다254873).

하지만 이 경우는 무기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계약서는 있으나 취업 규칙이 따로 없는 회사였기 때문에 그렇게 판결이 난 것이다. 별도의 취업 규칙이 있다면 적용 불가능하므로, 현실적으로 보수 차이에 대한 법적 제재는 없다.

물론 무기계약직을 대상으로 한 취업규칙에 대하여 근로기준법 6조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균등대우 및 평등원칙)를 근거로 무효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없고 하급심에서 무기계약직은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는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한국에서 이런 계약직 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고용안정성이 고용유연성(고용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시되는 사회주의가 득세했기에 명목뿐이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당시 IMF가 고용 유연성을 높이라고 강력 권고했고, 정부는 이를 명분으로 계약직 제도를 체계화했고 현재 상태로 고착된다.

기업에서 계약직 제도를 적극 도입한 이유는 분명하다. 정규직으로 뽑은 직원 중 일부는 막상 일을 시켜보니 저성과자여서 해고해야 하는데 그게 다른 나라들처럼 ‘You are fired!(당신 그만둬!)’라는 한 마디로 쉽게 끝낼 수 없었다. 대상자가 노조원이면 더더욱 그랬다. 비노조원이라도 자신이 부당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공연히 골치 아파질 일은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많은 대기업 사례에서 보았듯, 경영상의 이유로 인원 감축을 하려고 해도 노조가 반대 시위를 하며 끝장까지 가는 경우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계약직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동 퇴사가 되니 얼마나 쉬운가. 2년 일을 시켜 보고(1년씩 나누기도 한다) 믿을 만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 계속 일하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전환 과정조차, 능력보다는 인맥이나 다른 것들이 개입하면서 종종 아주 불투명하게 처리되는 것이 문제다.

결국 무기계약직 전환을 위해 계약직은 심지어 새벽 6시에 출근하여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을 하기도 하고, 간쓸개 다 내놓고 스스로 착취 당하는 것을 감수하는 경우까지도 종종 발생한다. 또한 2년 기간이 끝나고 이전과는 다른(혹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업무를 하는 내용으로 다시 2년을 시작하기도 한다(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7두61874 판결).

지난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현장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연합

✅논란 일으킨 文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가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고, 공항공사 사장도 전환 약속을 했다.

그래서 당시 모든 비정규직 인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던가? 겨우 241명만 전환되고 9644명은 공항공사가 만든 3개의 자회사에 과거에 받았던 대우 수준의 정규직으로 고용되었다. 이게 대통령이 약속했던 내용은 절대 아니었기에 공항공사는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정규직 청원 경찰로 직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추진에 취업 준비생들이 입사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거세게 반발한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 2020년 9월 인천공항공사 직원들과 취업준비생 등이 졸속으로 진행된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비판하며 촛불 대신 스마트폰의 불을 밝히고 있다./뉴스1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입사한 정규직은 물론 취업준비생과 청년층에서 “그게 공정이냐, 역차별이다”라고 하였으나 사실은 내용이 잘못 확대 해석된 면이 있다. 대통령의 약속을 이행하려던 공항공사 사장은 갑자기 해임되었지만 해임처분취소소송에서 승소했고, 기자간담회를 열어 “인국공 사태 관련 모든 누명을 뒤집어썼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공항공사 사장의 해임 취소소송 관련 상고를 포기하는 코미디가 벌어진다.

비즈워치가 지난 2019년 기준 36개 공기업의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직원이 근무하는 29개 공기업의 연봉 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간 연봉 차이가 적게는 420만원부터 최대 6225만원까지 났다(2020.05.26 보도). 어째서 공기업 정규직 입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다. 연봉 격차가 가장 큰 곳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인데 정규직 직원 294명의 1인당 평균 연봉은 9159만원이었고 무기계약직 7명은 1인당 평균 2934만원을 수령했다.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업무 내용을 모르므로, 연봉 격차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다.

내가 주시하는 부분은 공항공사의 자회사들이다. 무기계약직 직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은 비록 보수가 예전과 비슷한 수준일지라도 회사 내에서의 보수 차별을 없앤 것이고 계약직 직원들 역시 계속 고용이 보장되는 신분으로 바뀌었기에 심리적 만족감이 증대되는 장점이 있다. 경영 상황이 나빠지면 해당 자회사만 직장 폐쇄하면 되는 것도 장점이다.

많은 회사들은 그런 직접투자 자회사 형태가 아닌 독립된 하청업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거느리기도 한다. 백화점에 입점한 매장을 여러 개 갖고 있는 회사들이 매장별로 예전 직원 혹은 경험자를 개인 사업자 형태의 매니저로 계약하고 보증금을 받은 후 월 매출의 일정 퍼센트(%)를 수수료로 지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결국 그 매니저가 고용한 직원은 5인 미만 사업장의 직원이 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4대 보험이나 퇴직금은커녕 근로계약서조차 없기도 한다.

어떤 회사들은 정부가 급여 일부를 지원하는 기간에만 직원을 고용했다가 지원이 끝나면 적당한 핑계로 해고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고용해서 정부 지원금을 타먹으려는 얄팍한 짓도 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계약직으로 일하기 전 알아야 할 점

혹시라도 정규직 입사에는 자신이 없어서 계약직으로 일하고자 한다면, 이제부터 말하는 내용을 기억하여라.

계약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혹은 정규직 전환은 보통 인사 규정이나 회사 내규에 따른다고 하거나 정규직 티오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공기업이나 큰 회사라면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전체 인원이 100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들은 다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은 사장이나 임원들이 전권을 갖는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계약직으로 일하는 동안 당신이 그 일을 하기 전에 비슷한 일을 하였던 다른 계약직 직원들 보다 탁월하게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사장이나 임원들이 알게 된다면 절대로 당신을 내보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계약직 일자리를 찾는다면 재정 상태는 탄탄한데 규모는 작은 회사가 좋다. 회사의 재정 상태는 인터넷에서 그 회사의 신용정보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신용정보에 포함되어 나오는 재무제표 읽는 법은 알아야 한다. 신용정보 열람 시 수수료도 내야 하는데 ‘요약정보’로도 충분하다. 신용정보는 법인만 나오고, 개인사업자는 나오지 않는다).

✅계약직 쳇바퀴 인생, 탈출하고 싶다면 튀어라

이제 어느 단기 계약직의 실제 정규직 전환 성공 사례를 들려주마.

20여 년 전, 지방 소도시에 살던 고3 여학생이 내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스카이가 아닌 4년제 대학에 입학해서도 가끔 메일이 왔고 졸업할 즈음 취직을 앞두고서 메일이 또 왔다.

취업 준비를 해서 두 군데에 합격했는데, 한 곳은 글로벌 투자은행의 계약직이었고 다른 한 곳은 국내 대기업 보험사의 정규직이었다. 영어 실력은 있었기에 나는 주저없이 ‘끽’소리 말고(아마 ‘입 닥치고’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계약직으로 가라고 했다. 입사 한 달도 안 되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제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업무가 매일 수십 개의 아침 도시락 주문인데 이게 너무 힘들어요. 전임자도 그래서 중도 퇴사했어요.”

그런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들은 본사와의 시차 문제 때문에 핵심 직원들이 새벽 5시 전후에 출근하는 예가 흔하다. 그때 내가 해 준 말은 이러했다.

글로벌 금융회사 직원들은 밤낮없이 일에 빠져 지내는 '워커홀릭'인 경우가 많다./조선DB

“계약직이니 뭐니 하는 것을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회사 규모로 볼 때 네가 어떻게 일하는지 그 사람들 눈에 다 들어오게 되어 있다. 회사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미국 기준으로 이미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간부급이고, 고액 연봉을 받으며 일에 미친 사람들이다. 그 곳에서 일했던 계약직 직원 중에서 그들이 감탄할 만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겠냐? 만약 있었다면 지금 네 일자리 자체가 계약직으로 나오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오늘 당장 그 수십 명 직원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아침 도시락에서 밥, 반찬, 국 중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조사해라. 조사 결과는 액셀로 정리하고 그것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여라. 그리고 인근 식당들에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좋을지 연구하고 식당 주인들과도 상의하여라. 같은 반찬이 계속 전달되지 않게 하여라. 지금까지는 도시락 분배 전에 밥과 반찬 그릇의 뚜껑을 열어봐야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을 테니(안 봐도 뻔하다) 뚜껑만 보아도 내용물을 알 수 있게 어떻게 표시를 하여야 하는지도 궁리하고, 색인지(밥과 반찬이 나열된 표에 동그라미 표시하기 등)도 만들어 식당마다 전달하여라.

도시락마다 “오늘 드신 도시락 어떠셨나요?”라고 구체적으로 묻는 설문지도 붙여서 매일 회수하고, 경리과에 가서 도시락 대금이 최대한 빨리 지급되는 방법도 모색하여라. 너희 회사 이름이 유명하므로 협조가 잘되는 식당에는 ‘ΟΟ회사 지정식당’이라는 마크도 붙여 주고 자부심도 갖게 하여라…(이것보다 길게 설명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참고로 나는 모든 독자에게 친절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5~10년 이상 내 조언을 따르며 메일을 주고 받는 독자에게만 친절하다)”

그녀는 내 조언대로 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그녀에게 놀라운 일이 생긴다. 회사 고위직 이사가 그녀에게 회사에서 핵심 업무를 하는 정규직 직원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이후 그녀는 다른 정직원들과 동등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의 현실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은 드라마 '미생'. 비정규직 사원인 주인공 장그래 뒤로 김동식 대리, 오상식 팀장이 앉아 있다. 장그래는 정규직 전환에는 실패했다./조선DB

얼마 후 이 이야기를 그녀가 다음카페(세이노의 가르침)에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회사 이름과 함께 나온 것을 보고 내가 놀라서 당장 그녀에게 글을 지우라고 했다. 금융위기 때 이 회사가 규모를 줄이자 그녀는 다른 나라로 가서 비슷한 레벨의 회사에 입사했고, 현재는 해외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사는데 가끔씩 내게 메일을 보낸다.

당신이 공기업 입사 시험에서 계속 몇 년째 낙방하며 작은 회사에서 비정규직이나 알바 자리를 쳇바퀴처럼 하고 있다면, 어느 한 곳에서도 퇴사할 때 회사나 가게에서 당신을 붙잡아두려고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자문하여 보기 바란다. 한 번도 없었다고?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살 것 같다.

⇒나는 내 평생 단 한번도 계약직 사원을 고용한 바 없다. 입사 후 3개월 이내의 수습기간을 주고 그 기간에 정규직 채용 여부를 결정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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