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도우미 본격화…예상 외 ‘고비용’ 장애물, 영어교육 장점도

세종=손덕호 기자 2023. 5.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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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저임금 적용 부정적
최저임금 이상 임금 줄 경우 月 200만원 넘어
왕복 항공료, 보험료도 고용주인 가정서 내야 할 수도
내국인·중국 동포와 금전 면에서 이점 사라져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5일 외국인 가사근로자와 관련한 토론회에서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국민 의견을 수렴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공식 제안한 뒤 8개월 만이다. 그 사이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 미만의 낮은 보수를 줄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은 외국인이 제조업체와 건설 현장, 농업·어업 현장에 배치하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국내에 입국해 가사근로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재 내국인과 중국 동포처럼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청소와 빨래는 물론, 아이 양육을 하는 ‘베이비시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극심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3일 오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아이엘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에어바운스에서 놀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활성화돼 있는 홍콩·싱가포르처럼 한국에서도 일반 가정이 동남아 출신 가사도우미를 쓰기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어 예상과 달리 상당힌 수준의 임금을 줘야 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가, 홍콩·싱가포르와 달리 한국에서는 영어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장점에 논의 시작됐지만…日은 내국인과 동일한 임금 주도록 규정

첫 번째 장애물은 예상 외로 비쌀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임금이다. 오 시장은 지난해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을 제안하면서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값싼 노동력을 수입해 육아 부담을 덜자는 주장이었다.

이 방안이 실현되려면 조정훈 의원이 발의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고용부·외교부·법무부는 이 법안에 대해 “현행법 체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해외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부정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원모 전문위원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최저임금법 적용을 제외하는 것은 국적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판례, ILO 협약과 상충될 우려가 있다”며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외국인에 대해서만 적용을 배제하는 사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제도가 없는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600싱가포르달러(약 6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과 대만에는 최저임금 제도가 있지만, OECD 가입국이 아니다. 홍콩의 입주 가사도우미 최저임금은 월 4730홍콩달러(약 86만원)다. 대만은 월 2만대만달러(약 86만원)다.

비교적 최근인 2017년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싱가포르·홍콩·대만과 달리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내국인과 동일하게 노동관계법도 적용한다. 노동 인권에 대한 글로벌 기준을 반영한 결정이다.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도입하더라도 각 가정이 이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줘야 한다면 금전적인 면에서 이점이 없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9620만원이고, 주 40시간 근무와 유급 주휴수당을 고려한 월 최저임금은 201만580원이다. 홍콩·싱가포르처럼 왕복 항공권 비용과 보험료 등을 가정에서 납부해야 할 경우 부담은 더 커진다. 월 250만원 안팎인 한국인이나 중국 동포 가사도우미와 비용 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지는 셈이다.

2021년 11월 7일 오후 이주노동자평등연대가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열사 51주기, 이주노동자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조선DB

◇제조업·농업 등 가사도우미보다 근무 여건 좋은 곳에 취업해 ‘불법 체류’ 우려

가사근로자가 될 조건으로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이 더 나은 근무여건을 찾아 떠나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제조업체나 농업·어업에 취업하면 하루 24시간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해야 하는 입주형 가사도우미보다 일은 더 적게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부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와 소비자 현장 의견도 가사 서비스 영역의 저임금 상황 때문에 외국 인력 이탈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며 “아이 돌봄을 담당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이탈은 제조업에서 이탈과 매우 다른 문제”라고 했다.

◇홍콩·싱가포르, 도우미에게 가정 내에 독립된 방 제공…경제적 여유 있어야 가능

숙소도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 가사도우미가 가정에 입주해 생활하는 홍콩·싱가포르·대만은 가정 내에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가족이 사용하고 남는 독립된 방이 있는 가정만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는 셈이다. 방이 3개인 아파트에 부모와 자녀 두 명의 4인 가족이라면, 가사도우미를 위해 자녀 두 명을 한 방에 자게 해야 한다.

일본은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가정에 출퇴근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민간 기업이 고용하는데, 기업이 숙소를 제공해야 한다. 이 제도를 한국이 도입할 경우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조 연구위원은 “한국의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일본처럼 숙소를 제공한다면 수익 창출이 가능한가라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청담러닝이 운영하는 영어유치원 '크레버스 키즈'가 롯데몰 월드점에 개점했다. /롯데백화점 제공

◇홍콩·대만, 자녀 영어 교육 이유로 필리핀 가사도우미 선호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한국의 가정에서 마주할 큰 문제는 의사소통이다. 정부는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 일정시간 이상 입국 전·후 취업교육을 거쳐 근무지에 배치할 계획이다. 교육 내용에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가사 관련 기술이 포함된다.

이민정책연구원 장주영 부연구위원은 토론회에서 “다문화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어머니의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니어서 (아동 발달에) 문제가 있다는 연구가 계속 발표되고 있다”며 “어머니도 아닌 외국인 노동자에 의해 (돌봄이) 이뤄지면 어떤 영향을 줄까”라고 했다.

필리핀 출신은 영어 능력이 장점이 될 수 있다. 고용부가 2021년 11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의 부모들은 영어 능력 때문에 필리핀 가사근로자 고용을 선호한다. “일상적 의사소통에 영어를 사용하는 필리핀의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은 홍콩 어린이들의 영어 의사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대만 가정도 아이 돌봄을 위해 필리핀 출신 가사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자녀 영어 교육을 위해서다.

◇가사서비스 종사자 92.2%가 50대 이상…외국 인력 필요성 높아져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사도우미 전문 기업인 홈스토리생활의 이봉재 부대표는 토론회에서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지금 즉시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 부대표는 “가사·육아 인력 공급이 너무 부족하다”며 “전국 ‘맘카페’에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허용이 아주 큰 이슈다.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가사서비스 종사자는 2017년 16만4000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1만4000명으로 5년 만에 30.5% 줄었다. 또 지난해 상반기 기준 가사서비스 종사자의 59%가 60대이고, 50대는 33.2%를 차지하는 등 고령화되어 있다. 이상임 고용부 외국인력담당관은 “저출산 대응과 여성 경력단절 방지를 위해 외국 인력 활용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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