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정부 집값 하락 리스크 대비 못한 결과”
전세금반환보증제 완화 등이 사태 불러…‘사인 간 계약’ 치부도 영향
초기 공론화 때 전수조사 했다면 ‘수법 고도화’된 2차 사기 막았을 것
정부 보완책 불충분…전세권 등기 의무화·HUG 보증제도 손질해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안’이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여당안이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된 지 한 달여 만이다.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법안”이라는 피해자들의 지적이 잇따르자 여야는 다섯 차례의 소위를 거쳐 피해 인정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특별법을 요구해온 피해자들을 비난했다. “개인이 잘 알아보지 않아서 사기를 당한 것을 왜 국가 세금으로 지원해달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김선주 경기대학교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전세사기를 ‘구조적 실패’이자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했다.
“20~30대 너무나 젊은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전세사기로 전 재산을 날렸는데, 정부 대책을 봐도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자립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전세사기 조직들이 주택거래 계약에 미숙한 청년들을 어떻게 속일 수 있었는지가 근본 질문이어야 합니다.”
■ 전세사기를 만든 토양
집값 상승기 서울 아파트의 평균 중위가격은 10억원(2022년 7월)을 넘어섰다. 매매값 폭등으로 아파트 전세 수요는 늘었는데,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빈자리는 우후죽순 지어진 신축빌라가 채웠다. 김 교수는 당시 정부가 전세대출과 전세금반환보증제도를 완화시킨 것을 전세사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정부가 신축빌라 공급을 직접적으로 지원해줬다기보다는, 빠른 시간 내에 ‘선분양’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고 봐야죠. 당시에는 3억짜리 집에 3억짜리 전세를 들어간다 해도 전세대출이 나왔으니까요.”
담보가 확실한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전세대출은 ‘전세금 반환이 가능한 안전한 주택’이라는 보증기관의 보증서가 필수다. 통상 부동산업계에서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80%를 넘으면 ‘깡통주택’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정부는 집값 상승기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이유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 발급 기준을 전세가율 100%까지 보장했다.
이는 보증금 반환능력이 없는 갭투자자들의 부동산시장 유입을 부추겼다. 금리는 낮고 전세 수요는 폭발하면서, 2021~2022년 서울의 연립·다세대주택 평균 전세가율은 70%를 넘어섰다. 일부 지역에선 평균 전세가율이 100%를 넘기도 했다. 자기자본이 적거나 심지어는 아예 없어도 주택을 매수해 최대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코로나 이후 시장에 돈이 풀리고 부동산 투자 유튜브에서 ‘갭투자 안 하면 바보’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20~30대 사회초년생들까지 투자동호회를 꾸려 임장을 다니거나, 오를 만한 지역이라는 말만 듣고 매물을 보지도 않고 계약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전했다.
■ 골든타임 놓친 정부
김 교수는 청년뿐 아니라 정부도 집값 하락에 따른 리스크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전세가율이 고점을 찍으면 매매가격이 하락하고, 역전세와 깡통전세를 중심으로 보증금 미반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점은 과거 사례를 통해 이미 예견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정부가 반환보증 심사 요건을 더 엄격하게 하는 등 리스크 헤징을 했어야 하죠.”
과거 전세사기는 주로 중개인이 하나의 물건을 여러 명에게 중개하는 등 소규모·국지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최근의 전세사기는 수법과 규모 면에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전세사기를 ‘사인 간 계약’ 문제로 접근하는 동안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2019년쯤 조직적 전세사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한 명의 바지 임대인이 수백·수천 채를 보유하는 수법이었지만, 최근엔 바지 임대인을 여러 명 확보하는 등 수법이 고도화되고 있어요. 1차 수법이 공론화됐을 때 전수조사를 했다면 최소한 2차 사기는 막을 수 있었다고 봐요.”
일각에서는 전세제도가 소멸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김 교수는 “주택가격 상승기에 전세는 주거비를 아끼고 싶은 임차인, 목돈이 필요한 임대인, 선분양자를 찾아야 하는 건축주 모두에게 유리한 제도”라며 “수요와 공급은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만큼 정부가 인위적으로 없애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앞으론 전세사기 안 생길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앞으로 체결될 계약 건에 대해선 철저한 예방조치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전세사기 종합대책’을 발표해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기준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낮추고, 중개사에게 임대인의 세금 체납을 열람하게 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 정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전세에 대한 경각심이 있지만, 주택가격 상승기가 다시 도래해 전세매물이 부족해지면 전세가율이 높아도 계약을 할 수밖에 없어요. 보증 가입 조건에 맞춰 매매가의 90%로 전세 계약을 맺어도, 집값이 30%만 하락한다면 이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는다고 할 수 없죠.”
김 교수는 전세를 ‘양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중 하나가 전세권 등기 의무화다. 임차인이 등기상 전세권자(채권자인 임차인)로 설정되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을 때 강제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임대인 동의가 필요하고, 등기 비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임차인들이 전입신고 확정일자를 받아 대항력을 확보하고, 전세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는 ‘차선책’을 택한다. 다만 김 교수는 “전세권 등기를 의무화하려면 임대차 계약 해지 시 전세권도 자동말소되는 조항이 필요하다”며 “집주인이 전세권 등기를 꺼리는 이유는 세입자가 전세 계약이 끝나도 전세권 등기를 말소하지 않으면 권리관계가 얽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HUG 보증제도의 손질도 필요하다고 봤다. 김 교수는 “전세금반환보증은 주택과 임차인 정보만으로는 완벽하게 심사할 수 없고, 임대인의 신용정보가 필요하다”며 “임대인이 보증 가입에 협조하면 심사 절차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임대인의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는 헌법상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김 교수는 “계약기간이 끝나고 보증금을 반환하면 보증료를 환급해주는 등 어드밴티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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