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은 계속 줄어들지만… 그래도 살길은 있더라 [G-story]

이연우 기자 2023. 5. 2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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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중면 주민 172명뿐… 年 10명씩 감소
댑싸리 명물… 마을 먹여살리는 효자 품목
"인구소멸 시대적 흐름… 관광자원이 살길"

 

2023년 여름의 시작점, 북쪽을 향했다.

사실 이 문장을 2년 전에도 비슷하게 썼다. 당시엔 여름의 끝자락에 맞춰 포천시 관인면 (경기일보 2021년 9월14일자 1·3면)을 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목적은 같았다. 경기도의 대도시, 신도시가 아닌 관심 밖 소규모 마을을 둘러보겠다는 것. 그뿐이었다.

인구 감소지역인 연천군의 여러 관광자원 중 하나인 댑싸리공원. 가을이면 온통 붉은 댑싸리가 노을과 어우려져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민경찬PD

■ ‘댑싸리 명소’ 중면, 인구 최하위…年 10명씩 감소

첫 번째 도착지는 총 주민 수가 172명에 불과한 연천군 중면. 남자가 98명, 여자가 74명으로 평균 연령은 60~70대다. 거주자보다 군인이 많이 보이는 마을, 사람보다 두루미가 유명한 마을이다. 재개발로 철거 중인 광명시 광명1동을 빼면 경기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동네다. 1년에 약 10명씩 인구가 줄어든다.

정처 없이 도착한 이곳에서 다짜고짜 검색을 시작했다. ‘음식점, 대형마트, 영화관, 편의점, 사진관, 미용실’ 없음. 그나마 ‘농원, 목장, 정미소, 상회, 약수터’는 있음. 유일한 의료기관은 연천보건지소인데 자가용으로 30분은 가야 하는 상황. 혹여 부인과라도 가려면 강원도 철원까지 먼 여정을 떠나야 하는 곳. 그런 시골 동네였다.

명물은 ‘댑싸리’라고 한다. 푹푹 찌는 한 여름에는 청명한 초록색이었다가,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면서부터 화려한 분홍색으로 변하는 한해살이풀. 임진강 상류를 통해 북한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장 먼저 마시게 되는 화초. 그 댑싸리가 오늘날 중면을 먹여살리는 효자 품목이다.

“올해 댑싸리는 아직 심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오셨어요. 이번달 말부터 씨 뿌리기 시작하는데… 그때 오시지, 볼 게 정말 많거든요”. 김유미 중면 면장이 시원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중면 삼곶리에 있는 임진강 댑싸리공원을 찾은 관광객이 지난 한 해에만 8만명에 달할 정도다.

이어 김 면장은 설명했다.

“우리나라 민통선 내에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이 딱 2곳 있어요. 파주시 대성동과 여기 중면. 특히 우리 동네는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2만5천평 규모의 ‘댑싸리 장관’이 펼쳐지기 시작해서 늦가을까지 외지인들이 구경하러 많이 찾아오세요. SNS에 입소문이 났는지 댑싸리공원이 알려져 아름다운 연천의 모습들을 많이 즐기고 가시죠. 관광객들이 오시면 재래식 두부나 옥수수 등 지역 먹거리를 드시기 때문에 주민들 입장에선 소득이 증대되는 효과도 있어요.”

‘관광객들이 와서 잘 곳은 있나요?’ 묻자 김 면장은 아쉬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동네엔 없죠. 코옆이 북한인 안보 지역이라 교통 시설도 부족하고요. 결국 대부분이 당일치기라 ‘반짝 소득’이에요. 연천은 관광자원이 정말 많지만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 같은 게 부족해요”라던 그는 “인구가 워낙 적어 여러 인프라를 갖추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주민분들이 여기에 살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에요”라고 전했다.

사진은 줄타기를 잘하던 재인과 그 부인의 애절한 이야기 전설로 전해지며 연천군의 주요 관광자원인 재인 폭포. 경기일보DB

■ 경원선 중단으로 걸어잠군 대광리역

굽이굽이 흙길을 지나 비탈길을 넘어 드라이브를 떠났다. 차창 너머로 군인이 참 많이 보였다. 군장점도 그만큼 자주 만났다. 두 번째 도착지를 어디로 정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신서면 팻말이 보였다. 5월 기준 총 주민 수는 2천557명, 만 99세의 할머님(1명·최고령자)이 계시는 곳이다.

여긴 중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번화가였다. 커피숍도 더러 있고, 음식점 체인점도 꽤 많았다. 청년층을 겨냥한 분식점도 있었으나 가게 문은 닫은 지 오래 된 모습이었다. 이곳 신서면은 전지역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인 탓에 추가 개발은 쉽지 않다고 한다. 휴전선 11㎞와 접합한 연천군 최북단지역이기도 하다.

과거 경원선이 운행했을 땐 한동안 북방 경제의 활력소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철도가 중단(2019년)되고 대체운송버스가 돌면서 외지인이 선뜻 찾아오긴 어려운 편이다.

1912년 개통됐던 신서면 ‘대광리역’은 알록달록한 벽화 뒤로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어 있었다. 자물쇠로 잠긴 역사 앞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는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는 어르신이 있었고, 주변 그늘진 정자에는 햇빛을 피해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어, 이제 장 보고 들어가고 있어. 막걸리 두 통이랑 족발 포장했지. 지금 대광리역 지난다니까”…검은 봉지를 들고 길을 지나던 김진회 어르신(68)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면회 갔더니 애가 까맣게 탔더만. 아니 근데 어디라고? 일단 끊어봐”하던 김 어르신은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뭘 그렇게 찍어요?”라고 질문을 건넸다.

대광리역 사진을 담고 있다고 하자 “왜?”라던 그는 “나도 여기 사람은 아니야. 날씨도 좋고 해서 술이나 한 잔 하러 왔는데 재미있는 구경하네”라며 “볼 것도 없는데 뭣하러 여기까지 왔어. 나랑 친구가 이제 곧 칠십인데 여기선 막내라니까. 아무튼 더운데 고생해요” 하고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무성하게 자란 잔디, 군데군데 깨진 철로. 노후하고 낡은 대광리역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한 대화였다.

경기도 내 대표적인 인구 감소지역인 연천군에는 다양한 관광자원과 볼거리가 있으나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이 부족해 마을 발전에 지장을 받고 있다. 사진은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대광리역. 민경찬PD

■ “풍족한 관광 자원이 우리 동네 살 길”

대표적인 인구 감소 지역으로 분류되는 연천. 낯선 이가 터를 잡고 머물기엔 아직 여건이 마땅치 않을 수 있지만, 생기를 잃고 죽어가는 도시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연강 큰물터 사업’을 통해 중면 삼곶리 일원에 댑싸리공원 관련 기반시설(댑싸리원, 묵억새원, 휴게쉼터 등) 설치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돌무지 무덤’과 ‘옥류봉 그리팅맨’, ‘재인폭포’ 등의 관광 자원이 넘쳐난다. 11월 이후 월동기에는 ‘율무 먹는 두루미 떼’를 마주할 수도 있는 독특한 생태 지역이다.

이날 연천에서 만난 한 주민은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입을 뗐다.

“전형적인 힐링 장소에요. 빙애여울도 얼마나 예쁜데요.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에겐 관광 자원이 살 길이죠. 인구 소멸은 시대적 흐름이고 갑자기 이 동네에만 늘어나기도 힘든 구조니까요. 주민들도 그걸 아니까 자발적으로 논·밭에 두루미 먹이 주고, 댑싸리 씨 뿌리고 하는 거에요. 그렇게 관광 길이 뚫리고, 전용 버스도 운행하고, 한옥마을 같은 특화 시설도 조성된다면 ‘연천이 이런 곳이었어?’ 하는 사람들이 늘겠죠. 그렇게 점점 마을이 활성화 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앞으로 연천에 그런 기대가 있어요.”  G-Story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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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민경찬 PD kyungchan6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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