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헌법 파괴·역사인식 부재” 살아 있는 권력 앞 지식인의 외침

정혁준 2023. 5. 2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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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시국선언’ 경북대·부산대 르포
3자 변제 등 대일 굴욕외교가 촉발 “잠수함 토끼 같은 사회 참여”
“대구·경북, 정권 창출에 부채감”…“부산·경남, 개방과 저항의 도시”
“윤 대통령 ‘자유’ 편향되고 독점적…공공의 선 추구하라”
채형복·김창록·손광락 경북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24일 교내 여정남공원에 섰다. 이들을 포함한 경북대 교수와 연구자 등 181명은 지난달 13일 윤석열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과 굴욕적인 한-일 정상회담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대구/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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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낮 1시 대구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 교내 북쪽 언덕에 있는 종합정보센터 1층엔 이른바 ‘밥센터’로 불리는 학생식당이 있다. 메뉴는 왕돈가스, 닭불고기비빔밥, 불고기파스타와 마늘빵, 마라샹궈덮밥 등이었다. 밥을 먹고 나오는 경북대 학생에게 ‘최근 교수들이 낸 시국선언을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학생은 “몰라예”라고 말하며 손을 내저었다.

이날 낮 2시 대구 기온은 한여름 같은 32도를 기록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 킥보드를 탄 학생들이 씽씽 내달리며 캠퍼스를 지나갔다. 여러 학생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책부채를 연신 부치거나 손선풍기를 활용해 느닷없이 찾아온 더위를 식혔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마주친 경북대 본관 건물. 1960년대 말에 지은 본관은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석굴암 천장, 덕수궁 석조전의 기둥을 본떠 만든 웅장한 화강암 건물로 유명하다. 지난달 13일 경북대 교수 등 20여명은 이곳 본관 앞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과 굴욕적인 한-일 정상회담을 비판했다. 이날 시국선언에는 학생까지 포함해 181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대한민국 국격이 일개 정부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외교정책으로 무너졌다”며 “반헌법적, 반민족적 강제동원 해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13일 경북대 교수와 연구자들이 본관 앞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과 굴욕적인 한-일 정상회담을 비판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시국선언에 참여한 이들은 대자보 30여개를 붙이고 펼침막 3개를 게시했다. 한 강의동 건물에 붙은 시국선언문엔 ‘종북 좌파’라고 쓰인 낙서가 발견됐다.

본관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오면 학생 복지관이 보이고, 그 옆에는 여정남공원이 있다. 2010년 인혁당 사건 35주기를 맞아 이 사건으로 희생된 여정남을 추모하기 위해 유족과 경북대 동문의 성금을 모아 조성된 공간이다. 여정남은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62학번으로 총학생회장을 맡아 한-일 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해 제적당했다가 1969년 다시 복학한 뒤 대구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공원 옆 벤치에 앉아 있던 경북대생 3명에게 ‘교수 시국선언에 낙서한 사람이 밝혀졌는지’를 물었다.

“시국선언예? 니, 아나 시국선언?”

“모른다. 그게 뭐꼬?”

“우리가 지금 졸업반이라서예. 취업 준비 땜에 바빠서 잘 모릅니더.”

학생 신분으로 시국선언에 참여한 김근성(정치외교학과 4)씨는 “많은 학생이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외교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요즘 학생들은 정치 문제에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는데다 정치 이슈 자체에 관심이 없는 탈정치 흐름이 높다”고 짚었다. 경북대는 코로나19와 취업난 탓에 총학생회 출마자가 아예 없거나 출마한 경우에도 최소 투표율이 미달해 3년 연속 총학생회를 꾸리지 못했다.

‘권력 정점에서 나온 시국선언’의 무게

지난 24일 경북대 생활과학대학 건물 입구에 윤석열 정부의 굴욕외교 등을 비판하는 시국선언문이 붙어 있다. 앞서 지난달 13일 경북대 교수들은 이런 내용을 담은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대구/이정용 선임기자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이동해 김창록·채형복 교수(이상 법학전문대학원)와 손광락 교수(영어영문학과)를 만났다. 이번 시국선언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교수들이다. 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교수가 소설가 김훈이 쓴 에세이집 <밥벌이의 지겨움>을 들고 가는 게 보였다. 시국선언을 한 교수들에게 ‘밥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왜 시국선언을 했는지’를 물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과 굴욕적인 한-일 정상회담이 ‘기점’이 됐다고 했다.

경북대에선 여러 교수가 이견을 조율해가는 ‘집단지성’ 방식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지난달 김창록 교수가 먼저 지식인으로서 이런 현안을 묵과할 수 없으니 시국선언을 내놓자고 제안했다. 여러 교수들이 동의했고 김창록 교수가 초안을 잡았다.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서 의견을 반영해 초안을 수정해나갔다.

채형복 교수의 얘기다. “시국선언 내용을 놓고 현 정부의 문제점을 좀 더 지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반대로 모든 것을 담기보다 핵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죠. 정부 비판의 톤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비판의 톤보다 내용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이렇게 여러 의견을 수정·보완하면서 조율했죠.”

최종 수정한 시국선언문은 경북대 교수들과 연구자들에게 전자우편으로 전송됐고, 이에 동의하는 대학원생과 학부생 181명이 이름을 올리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시국선언을 발표한 구체적인 이유를 물었다.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고) 대법원이 판결한 내용을 행정부가 없는 것으로 뒤집은 게 핵심입니다. 헌법을 파괴한 것이니까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30년 이상 피해자들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시민이 법정 투쟁을 해왔습니다. 이런 역사적 성과물을 일개 정부가 나서서 없애려고 한 것이죠. 윤석열 정부는 반성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생존 피해자에게 설득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찾아가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라고) 괴롭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스토킹이죠. 이런 문제를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김 교수)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입니다. 시민 이익을 대변하는 헌법기관으로 시민의 지시와 요구에 맞춰 그 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첨예한 국가 이익이 걸려 있는 한-일 외교에서 시민의 바람을 무시한 채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과도하게 일탈하는 굴종외교를 벌이고 있습니다. 지식인으로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채 교수)

“대구에는 교수·변호사·의사·약사 등 지식인 단체 모임이 있습니다. 이들 단체가 하나로 뭉쳐 3월21일 윤석열 정부의 굴욕외교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워낙 나라를 망가뜨리고 대일 굴욕외교를 하니까 이렇게 자발적으로 결집하는 것입니다. 마치 1905년 전후에 조정 대신들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을 때 의병들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손 교수)

대학교수 시국선언은 민주화 운동 당시 들불처럼 일어났으나 그 뒤 잠잠해지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때 다시 불이 붙었다. 2016년과 비교하면 어떨까? 채 교수의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시국선언이 있었습니다. 당시 경북대에서 시국선언에 참가한 인원은 88명이었죠. 그때만 해도 박근혜 정권 후반부였지만, 이번 시국선언은 윤석열 정권이 1년도 안 된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살아 있는 권력의 정점일 때죠. 이를 생각하면 현 정부의 심각성에 많은 교수와 지식인이 우려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셈입니다.”

손 교수는 종교계 움직임도 짚었다. “교수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시국선언이 확산하는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은 정부가 잘되기를 기대하며 미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도해도 희망이 없었죠. 이젠 사제단은 퇴진을 바라고 있습니다.”

“대구의 야성, 풀뿌리로 살아 있어”

보수 정치 지지세가 강한 대구에서 시국선언을 하는 데 부담은 없었을까?

“대구는 내가 자라온 고향입니다. 이곳의 진보적인 학자들은 대구와 경북이 박근혜·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기반이 된 점에 부채감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지식인이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힘들긴 하지만 외롭지 않아요. 이게 시국선언의 동력이 된 거죠.”(채 교수)

“저는 서울에서 살다 대구에서 교수를 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볼 땐 대구가 보수의 중심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안에서 들여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역사를 공부하거나 사회를 개혁하는 데 관심 많은 작은 시민단체가 생각보다 많아요. 대구의 야성이 풀뿌리로 살아 있는 거죠.”(손 교수)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도 시국선언이 나오고 있지만 강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왔다. “서울은 집값과 경제 수준, 일자리 등에서 지방보다 너무 가진 게 많아 다소 소극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서울 시민들은 생명과 안전에 관심이 많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잘못 처리할 경우, 이 사안은 전국적인 국민 저항의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채 교수)

교수들은 지식인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소설 <25시>로 유명한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잠수함의 토끼’를 말했어요. 산소 측정 장치가 발달하지 못한 시절 잠수함에 토끼를 태워 산소가 모자라는지 아닌지를 확인했죠. 이처럼 지식인은 시민이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먼저 얘기하는 예언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손 교수)

“저는 앙가주망(지식인의 사회 참여)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자기 일만 하는 건 옳은 지식인이 아니죠. 세상이 잘못되고 있을 때 바로잡기 위해 비판하는 건 지식인의 책무입니다. 권력자 편에 서지 않고 낮은 데로 내려와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참된 지식인입니다.”(채 교수)

“부산·경남, 아니다 싶으면 확확 바꿔”

지난 18일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이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은 학생들이 종종걸음으로 캠퍼스를 훑었다. 마침 이날은 부산대 봄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지난달 11일 부산대 대학본부 대회의실에서 부산대 교수와 연구자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부산/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부산대 교수들과 연구자들은 경북대보다 이틀 앞선 지난달 11일 부산대 대학본부 대회의실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상황을 물어보려고 부산대 총학생회를 찾았다. 총학 간부들이 축제 지원 중이라 사람이 없었다. 우연히 만난 한 간부 학생에게 명함을 주고 시국선언과 관련해 총학생회장의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26일 현재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다만 부산대 월간 학보인 <부대신문>은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1면 톱(‘굴욕외교’에 교수들 시국선언)으로 실었다. 학보사에서 만난 임하은 <부대신문> 편집국장은 “1면 톱으로 여러 건의 기사 아이디어가 올라왔으나, 교수님들이 의미 있는 시국선언을 한 것으로 판단했고, 게다가 전국 최대 규모 시국선언이어서 톱으로 올렸다”고 말했다. 기사를 쓴 정혜은 기자는 “기사가 나간 뒤 대학생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부산대 게시판에 여러 의견이 올라왔다”며 “정치 이슈를 꺼리는 분위기에서도 학생들의 관심을 모았다”고 전했다.

부산대 제1사범관으로 이동해 김호범 교수(경제학과), 진시원 교수(일반사회교육과), 정대성 교수(역사교육학과), 오미일 교수(통일한국연구원)를 만났고 시국선언이 나오기까지의 경과를 들었다.

부산대 교수들은 ‘효율적인 분업’으로 시국선언을 완성했다. 지난달 부산대 교수 대여섯명이 함께 식사를 하다 굴욕외교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교수 10여명이 뜻을 같이했고 역할을 분담하며 시국선언을 준비했다. 한 교수는 초고를 만들었고 다른 교수는 메신저로 진행 상황을 알렸으며 또 다른 교수는 펼침막과 대자보를 만들었다. 지역 언론에 알리는 일도 나눠 맡아 착착 진행했다.

정대성·김호범·진시원 부산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24일 교내 부마민중항쟁탑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부산대 교수와 연구자들은 지난달 11일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전국 대학 시국선언 중 최대 규모인 280명이 동참했다. 부산/이정용 선임기자

부산대 시국선언은 280명이 참여한 전국 대학 최대 규모였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뜻을 함께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호범 교수의 분석이다. “부산은 상당히 개방적인 도시입니다. 개항, 한국전쟁, 경제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부산과 경남으로 타지에서 많은 사람이 들어와 함께 살면서 다양성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개방성은 부마항쟁 등에서 독재 권력을 향한 저항 정신으로 표출되기도 했죠. 다양성과 개방성이라는 부산의 지역적인 특징이 이렇게 많은 참여를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국선언을 하게 된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에 대해 부산대 교수들은 ‘역사인식의 부재’를 들었다.

“윤석열 정부는 역사의 흐름과 과정에 대한 인식이 부재합니다. 역대 보수 정권은 외교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죠. 노태우 대통령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소련을 상대로 북방정책을 폈습니다. 그 결과 외교 관계가 수립돼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던 한국인 일부가 귀환하기도 했죠.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독도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독도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보수 정권의 그런 맥을 이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의식 부재는 외교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 경제, 노동 등에서도 드러납니다.”(오 교수)

진시원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역사인식 부재의 구체적인 예로, 한-미 동맹 다걸기를 짚었다. “한-일 굴욕외교의 배경에는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올인이 있습니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원하는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역사 문제로 다툼을 벌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한-미 동맹에 올인하려는 것을 간파한 일본은 한국에 고자세 외교로 일관하고 있는 거죠.”

정대성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보수·수구 세력의 역전과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촛불로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은 뒤 보수 세력은 잃어버린 5년을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외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보수·수구 세력이 모든 걸 바꾸려고 시도하는데, 윤석열 정부가 앞장서는 모양새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뀔 수는 있지만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를 감내하면서까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정 교수는 부산대의 최대 규모 시국선언의 배경을 이렇게 분석했다. “부산이나 대구가 보수적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이곳 지식인들은 저항의 코드를 갖고 있어요.”

대자보 붙이는 교수님

부산은 부마항쟁의 발상지다. 경남에선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했다. 현재는 여당 지지가 우세하다. 부산대 교수들은 지역민심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부산과 경남은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를 거머쥐었습니다. 부산·경남 시민은, 아니라고 판단하면 시원하게 확확 바꾸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6월 민주화 운동 당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부산에서 30만명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붙이기도 했죠. 진보적인 대통령 두명을 당선시키는 데도 부산과 경남은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진 교수)

민주화 운동 당시엔 학생이 앞장서고, 교수는 소극적인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에 대해서도 교수들은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달 제가 시국선언 대자보를 붙일 때 학생들이 쳐다보면서 지나갔어요. 속으로 ‘뭐지? 학생이 붙이고 교수가 쳐다봐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본 학생들이 사회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정 교수)

“제가 대학을 다닐 때 교수님들은 공익과 사회의 공동선을 향해 ‘지행합일’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때도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교수님을 보고 ‘저런 분이 교수고 지사다’라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생각과 이념이 존재하는 현재와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도 국가공동체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진 교수)

“강의할 때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건 공감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거예요. 지역사회와 국가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공감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죠.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향한 공감 능력을 키우게 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오 교수)

교수들은 현 정부를 향한 비판과 바람도 쏟아냈다. “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편향된 자유’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잖아요. 공화국은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게 맞습니다. 대다수 시민이 반대하는데도 대일 굴욕외교를 강행했죠. 이런 파편화된 개인주의적인 자유야말로 윤 정부가 반드시 고쳐나가야 할 과제입니다.”(진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어서 그런지 계속 자유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헌법엔 자유만 있는 게 아니에요. 헌법 11조는 평등을 얘기합니다. 평등 역시 근대화를 거치면서 많은 이들의 투쟁으로 일궈낸 중요한 역사적 가치입니다. 자본가의 자유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평등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죠.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특정 세력의 독점적인 자유만 있어 보입니다. 자본가의 자유, 검찰 독재의 자유처럼 말이죠.”(김 교수)

“우리 사회가 평등을 낯설어하는 시대가 되고, 공감에서 멀어지는 사회가 되는 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걱정입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평등과 공감을 보여주는 정부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정 교수)

부산대 앞 주점에서 교수들과 뒤풀이가 이어졌다. ‘금정산성막걸리’를 앞에 두고 권력자들과 우리 사회의 약자, 자유와 평등, 진보와 보수를 안주 삼아 거침없는 얘기가 오갔다. 교수들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50~60대 교수들은 술자리에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대학생 새내기처럼 보였다. 밖에는 여전히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대구 부산/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대한민국 시국선언의 역사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나라 어려울 땐 어김없이

시국선언은 정치·사회적으로 심각한 혼란이 우려될 때 지식인, 종교·예술계 인사들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 때마다 등장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시국선언은 1960년 3·15 부정선거 때다. 그해 4월25일 전국 대학교수 258명이 시국선언을 했고 이틀 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2016년엔 박근혜-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이 드러나고 10월26일 부산대와 이화여대를 필두로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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