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미터 상공에 매달린 실존의 문제…연극 '굴뚝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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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m 상공의 어느 굴뚝 위.
땅보다는 높고 하늘보다는 낮은 이 곳에서 두 사람이 하염없이 '굴뚝'을 기다린다.
'누누'는 굴뚝 따윈 처음부터 없었던 거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굴뚝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순간 이들 앞에 놓일 것은 누군가는 무더위와 추위에 방치된 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하루하루 운 좋게 피하는 삶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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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70m 상공의 어느 굴뚝 위. 땅보다는 높고 하늘보다는 낮은 이 곳에서 두 사람이 하염없이 '굴뚝'을 기다린다.
자신들의 옆에 놓인 것이 굴뚝이란 것도 모르는 듯 시답잖은 말장난으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 앞에 굴뚝 청소 노동자 '청소'와 청소 로봇 '미소', 10대 유튜버 '이소'가 차례로 찾아온다.
노동자의 고공농성 투쟁을 소재로 다룬 극단 고래의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가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작품의 작·연출을 맡은 이해성 연출은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인공 지능과 메타버스의 발달 등 2년 전과 달라진 시대성을 반영해 새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2021년 초연한 '굴뚝을 기다리며'는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는 원작의 주제 의식에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더했다.
2018년 파인텍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을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쓴 이 연출은 "옆에서 지켜본 고공농성의 현장은 투쟁보다는 실존적인 기다림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초연에서 그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로봇을 상징했던 '미소'는 이번 공연에서는 구체적으로 학습형 인공 지능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삼킨 것 같은 '미소'는 매사에 공정하고 정확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조종하는 건 상위 '1퍼센트'에 불과한 기득권의 목소리다.
이 외에도 온라인에서 가상의 '부캐'(부캐릭터)로 활동하며 희망이 사라진 현실을 '갓생'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10대 소녀 '이소'를 통해 초연 당시와는 달라진 2023년 현재 청년 세대의 고민도 반영됐다.
이 연출은 "초연 이후 2년 사이에 노동 현실과 청년 세대의 상황이 많이 변해 그대로 공연을 할 수 없었다"며 "20대인 배우를 통해 메타버스와 인공 지능 등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언어와 고민을 조사해 작품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두 주인공 '누누'와 '나나'가 기다리는 굴뚝은 단순히 해고 노동자의 복직을 넘어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에 대한 희망을 의미한다.
여름에는 영상 40도, 겨울에는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극한의 환경에서 '누누'는 그냥 굴뚝을 기다리지 말고 땅으로 내려가자고 '나나'를 조른다.
'누누'는 굴뚝 따윈 처음부터 없었던 거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굴뚝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순간 이들 앞에 놓일 것은 누군가는 무더위와 추위에 방치된 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하루하루 운 좋게 피하는 삶 뿐이다.
굴뚝을 기다리는 70m 상공과 굴뚝이 없다고 믿는 지상 중 어느 곳이 나은지 되묻는 나나의 말은 모든 기약 없는 기다림과 투쟁이 가지는 숭고함을 되새기게 한다.
이 연출은 "고공농성과 단식 투쟁은 모두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며 "작품을 통해 불평등을 바꾸기 위해 이들이 했던 행위의 의미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은 6월 11일까지 이어진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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