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산정무한] 봄비 추적추적… 禪定 같은 산행

김윤세 2023. 5. 2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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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와불산 전경. 정상부가 누워있는 석가모니 부처 형상이다.

올해 들어 지난 4월 30일까지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의 등산로와 임도, 지리산 둘레길을 산행한 것이 모두 26차례에 이른다. 작년에는 한 달에 보통 8~9회 산행을 한 데 비해 올해는 월 6.5회에 그쳤는데 달마다 두세 번 토요일에 열린 중요 행사에 부득이 참석하다 보니 산행 횟수가 다소 줄게 된 것이 그 이유이다.

5월에 들어서는 공휴일인 5일 어린이날과 6일 토요일 모두 종일 비가 내렸으나 산행을 거를 수 없어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서 빗속에 우산을 쓰고 비교적 순탄한 산길과 임도를 걸었다.

5일에는 쉼 없이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후 1시 20분경, 우산을 쓰고 삼봉산 투구봉 입구 금강송 군락지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함양읍 양동마을 뒤 탁 트인 전망대까지 4.1km를 쉬엄쉬엄 느긋하게 걸었다.

함양 읍내까지 조망되는 그곳에서, 산림청에서 설치한 벤치에 앉아 농주 탁여현과 점심 대신으로 준비해 간 견과류 간식을 먹은 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크게 오르거나 내리막 경사 없는, 해발 425m~717m 순탄한 임도를 평균 시속 3.4km로 모두 8.2km 거리를 2시간 50분에 걸쳐 걸어서 오후 4시 10분경 산행을 마무리했다.

산행을 부랴부랴 마무리한 것은 함양군에서 5일부터 9일까지 개최하는 천령문화제 개막식 행사에 참석하는 일정 때문이었다. 산행 거리를 줄여서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종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된 만찬과 개막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튿날인 6일에는 승용차로 용유담으로 이동해 오전 11시 25분, 입하立夏 절의 초여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쓰고 산행을 시작했다.

산세 가파른 지리산 동쪽 줄기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의 흐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종료되고 산맥 흐름의 최종 마무리는 정맥과 지맥에서 끝난다.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다시 따로 형성된 산 하나가 있는데 바로 '부처께서 누워 있는 모습'이라는 뜻을 지닌 '와불산臥佛山(1,213.9m)'이다.

지리산 전체를 통틀어 이곳 동부지역은 인가에서 비교적 거리가 멀고 산세가 가파르며 험준한 바위들이 많은데다 비바람을 피할 만한 자연 석굴들이 적지 않은 외딴곳이다.

그런 연유로 1950년 6·25를 전후해 소위 빨치산으로 불리는 이들의 상당수가 숨어들어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서 군경합동 토벌대에 끝까지 저항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적 역사의 현장 중 한 곳이다. 마지막 빨치산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진 산청 출신 정순덕이 와불산 독바위 아래 선녀굴에서 10여 년간 숨어 지내며 저항하다가 붙들린 곳 역시 이곳 동부지역이다.

용유담의 송전리 모전마을에서 출발한 산행은 시멘트 포장길이지만 처음부터 제법 비탈진 경사로를 따라 오르다가 1.2km 지점의 고양마을을 지나 300m쯤 더 오르면 '천연와불성지天然臥佛聖地'라고 쓴 돌 표석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조계종 사찰 견불사見佛寺이다.

가는 빗줄기가 계속 내리는 가운데 오르막 경사로를 500m쯤 더 오르니 이날 산행의 최고점인 해발 590m 지점에 다다르고 이어 경사 완만한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다시 길을 걷는다.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는 관계로 쉴 만한 벤치를 지나쳐 한참을 더 걸어서 약 4km를 갓 지난 지점에 자리 잡은, 옛터만 남은 단군 천진전天眞殿을 지나 국가 보호수로 지정된 세진대洗塵臺 소나무 옆의 정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아내 우 원장과 함께 송홧가루 자욱이 내려앉은 정자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지니고 온 탁여현을 꺼내 150ml 잔에 가득 부은 뒤 함께 단숨에 마신다. 숨차고 힘든 산행을 잠시 쉬면서 알코올 도수 15도의 탁여현을 단숨에 들이켜니 뱃속만 시원한 게 아니라 가슴속까지 상쾌해지는 느낌이다.

탁여현 한 잔을 마시고 나서 주위를 돌아보니 운무에 휩싸인 겹겹의 산봉우리들이 비로소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낸다. 이렇듯 기기묘묘한 광경을 조선 중기의 고승 편양 언기鞭羊彦機(1581~1644) 선사는 이렇게 시로 읊었다.

흰 구름 위로 천 겹의 산봉우리들 드러나고

난간 밖에서는 끊임없이 계곡 물소리 들려오네

열흘 내내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비 갠 뒤의 저 '청정한 하늘'을 어찌 볼 수 있으랴

雲邊千疊嶂운변천첩장

檻外一聲川함외일성천

若不連旬雨약불연순우

那知霽後天나지제후천

휴정의 법통을 이어받은 편양 선사

긴긴 장마철 어느 날, 편양 선사는 열흘 내내 내린 비로 불어나 세차게 흐르는 계곡 물소리의 쉼 없는 법문法門을 들으며 천 겹, 만 겹 구름 위로 솟은 산봉우리들의 장엄한 별천지 속으로 몰입하여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든다.

선사는 11세에 출가해 휴정休靜의 제자인 현빈玄賓에게 계戒를 받은 뒤,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휴정의 법法을 이어받았다. 숯장수와 물장수를 하면서 시정市井에 나와 중생을 교화했고, 묘향산 내원암內院庵에서 입적했다.

휴식을 마친 뒤 다시 걸음을 옮겨 세동마을을 지나 도로를 따라 용유담 부근의 출발했던 곳으로 회귀했다. 시종일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한 산행 거리는 총 7.3km이고 소요 시간은 3시간 30분이다.

빗속의 산행은 우산을 든 팔이 아프고 등산화가 젖어 다소 불편한 점은 있지만 온 산을 휘감는 운무로 인해 펼쳐지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고, 빗물 머금은 초목들의 청초한 푸르름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걸으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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