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14좌 두 번 완등] "세상 모든 등반가와 겨뤄도 이길 자신 있다"

신준범 2023. 5. 2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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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두 번 오른 네팔 사누 셰르파
사누 셰르파. 블랙야크 50주년 기념식 참석차 방한했다.

지구 최강 등반가는 누구인가? 같은 환경, 같은 조건에서 산을 오른다면 가장 먼저 8,000m 정상에 오를 사람은 누구인가?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2023년 기준 확률적으로 14좌를 가장 먼저 오를 사람으로 네팔의 사누 셰르파Sanu sherpa(48)가 꼽힌다. 그는 세계 최초로 14좌를 두 번 완등했다. 지난해 칸첸중가, 마칼루, 로체, 가셔브룸을 등정하며 14좌를 두 번 오른 인류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그의 기록은 산악인들 사이에 '대단하다'는 이들과 '큰 의미를 둘 정도는 아니다'는 이들로 나뉜다.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들은 사누 셰르파의 상업성을 지적한다. 원정대로부터 돈을 받고 고용되어 산을 올랐기에 등정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 '대단하다'는 이들은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올랐다 해도 14좌를 두 번 이상 오른 것은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큰 족적이라는 것.

그는 한국의 14좌 완등 등반가인 김미곤 대장의 오랜 파트너다. 김 대장의 초대로 블랙야크 50주년 행사 참석차 방한한 사누 셰르파를 만났다. 그는 직업이 셰르파이고, 성이 셰르파이다. 셰르파는 네팔 고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2022년 5월 28일 마칼루 정상에 올라 네팔 국기를 든 사누 셰르파.

19세기 히말라야 초등 시기부터 등반대에 고용돼 셰르파로서 등반가들을 정상에 서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등정의 영광이 등반가들에게 향할 때 그들은 항상 조용한 동반자 자리를 지켜왔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가장 위험한 직업인 것.

지금의 사누 셰르파를 있게 한 건, 김미곤 대장의 역할이 컸다. 대부분의 셰르파들이 그렇듯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원정대의 짐꾼(포터)과 주방 보조(키친 보이)로 일했다. 포터가 등반 셰르파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체력과 힘은 기본이고, 셰르파의 대장인 '사다 셰르파'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사다 셰르파는 원정대의 셰르파를 선발하는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누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다. 10대 후반부터 원정대나 트레킹 팀을 따라 포터나 키친보이로 일했다.

키친 보이로 따라나선 아일랜드피크(6,189m) 등반에서 그는 처음으로 등반을 돕는 가이드로 일했다. 그후 몇 차례 5,000~6,000m 트레킹 피크를 오르는 팀원으로 일하다 2006년 처음으로 8,000m대인 초오유 정상에 섰다. 이 등반에서 그는 사다 셰르파를 비롯한 동료 셰르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을 받아 같은 해에 시샤팡마까지 올랐다.

김미곤 대장과 사누의 인연은 2007년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김미곤 대장은 2006년 가셔브룸 2봉 등정에 이어 두 번째 14좌 도전이었다. 김미곤 대장은 사누 셰르파의 체력과 등반능력을 눈여겨보았다. 무엇보다 그의 순수하고 착한 성품이 좋았다고 한다. 이후 14좌 완등 목표를 세운 김미곤 대장은 원정마다 사누와 함께 등반했다. 대부분 원정에서 두 사람은 속전속결로 안전하게 8,000m 산 정상에 올랐다. 사누 셰르파는 김미곤 대장의 14좌 완등에 일등 공신이며 가장 친한 네팔 친구가 되었다.

사누 셰르파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7번 올랐으며, 8,000m 산 정상에 36번 올랐다. 8,000m 등반을 위해 원정대를 꾸리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걸 감안하면, 사누의 기염은 셰르파만이 가능한 기록이다.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이 들기에 14좌 등반가들 중 같은 산을 두 번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는 작년 한 해에만 8,000m 4개 봉우리에 올랐다. 2022년 8월 12일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일본 원정대에 고용되어 가셔브룸 2봉 정상에 오르며 8,000m대 14개 봉우리 2회 완등에 성공했다.

일본 여성 산악인 와타나베 나오코와 함께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선 사누 셰르파.

블랙야크 5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만난 사누 셰르파의 첫인상은 돌 같았다.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170cm 초반이며, 다부진 몸에 표정 변화가 많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기자의 질문에 신중하면서도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모든 등반에 셰르파로 참가한 그는 만약 스폰서가 있어 개인적인 등반을 할 수 있다면, "최단 시간 안에 14좌에 오를 자신이 있다"고 명료하게 답했다. 현재 14좌 완등자는 45명을 넘어섰고, 2019년에는 네팔의 산악인이자 영국 구르카 용병 출신인 니말 푸르자가 7개월 만에 14좌를 모두 오르며 최단 시간 완등 기록을 세웠다.

그의 등정 중 18번은 무산소 등정이었다고 한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에서 유달리 적응을 잘하는 까닭을 묻자, "어릴 적 해발 4,500m 야크 농장에 살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으나, 김미곤 대장은 "철저한 자기 관리도 비결"이라고 한다.

2014년 낭가파르바트 정상에서 태극기를 들고 선 사누 셰르파(왼쪽)와 김미곤 대장.

원정에 참가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도 매일 아침 2시간을 달리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김 대장은 "셰르파들 중 상당수는 술과 노름을 좋아한다"며, 반면 "사누는 몸 관리가 철저해서 오랫동안 등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사누 셰르파와의 즉문즉답이다.

Q 48세란 나이가 고산등반하기에 어떤가?

A

네팔의 내 또래는 배 나온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20대보다 훨씬 나은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경험이 쌓인 지금이 고산등반 전성기다.

Q 참 많은 고산등반을 했다. 돈도 많이 모았으니 가족들이 그만 가라고 반대하지 않나?

A

나는 9남매 중 둘째다. 혼자 노후에 먹고 살 정도는 모았지만, 형제들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 아들 둘과 딸 셋을 뒀는데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서도 아직 경제적인 부양이 필요하다. 가족들은 가지 말라고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일을 더 해야 한다. 50대에도 계속 현역으로 있을 것이다.

Q 산이나 등반이 좋아서 등반을 하는 순간도 있나?

A

직업이라 원정대의 등반을 성공시키기 위해 등반한다. 직업적인 책임감으로 등반한다.

2016년 안나푸르나 정상에 선 김미곤 대장과 사누(오른쪽).

Q 악천후에 등반을 강요하는 원정대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A

몇 년 전까지는 기상 시스템이 좋지 않아서 예보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등반가들의 요구대로 따라갔는데, 지금은 조언을 많이 한다. 사고가 날 것 같은데 가자고 하면, 이제는 거절한다. 그 정도 결정권은 있다.

Q 8,000m 산 중 가장 아름다운 산은?

A

초오유가 가장 아름답다. 네팔과 티베트를 다 볼 수 있고 히말라야를 다 볼 수 있는 곳에 솟아 있어서 경치가 가장 이상적이다.

Q 만약 스폰서가 있어서 원하는 등반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나?

A

14좌 3번 완등까지 10개 산이 남았다. 그 산을 다 올라 14좌 3번 완등을 이루고 싶다. 그 이후에는 6,000~7,000m 미등봉(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을 오르고 싶다.

Q 8,000m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A

원정을 진행할 수 있는 경제력과 등반장비, 식량, 체력, 날씨 모든 것이 중요하다. 동상을 조심해야 하기에 장비도 상당히 중요하다.

Q 다른 나라 원정대에 비해 한국 원정대는 어떤 특성이 있나?

A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식량과 장비를 잘 쓴다. 특히 산에서 잘 먹는다. 한국인들은 고기를 즐겨 먹고, 맵고 짜게 먹는데 이것이 등반에 도움된다.

Q 과거 한국 원정대는 결과에 치중해 지나치게 셰르파들을 위험에 빠뜨려 정상에 오르려 한다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A

과거에는 그런 경향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Q 에베레스트만 7번을 올랐다. 그 이유는?

A

셰르파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에베레스트를 가야 한다. 에베레스트에 가려는 원정대가 많고 돈도 많이 쓴다. 에베레스트를 가면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지만, 그걸 포기하고 다른 산 원정대를 택해 14좌를 이뤘다.

Q 김미곤 대장과의 등정 성공률은?

A

15번 같이 등반해서 9개 성공했다. 김미곤 대장 같은 등반가는 못 봤다. 나와 궁합이 가장 잘 맞는 대장이며, 내가 아는 한 가장 체력이 좋고 등반을 잘한다.

2022년 5월 마칼루 정상에 오른 사누 셰르파.

Q 히말라야 등반에서 등반가가 죽고 고용된 셰르파만 살아 내려오면, 그 셰르파가 비판 받는 사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같이 산에 갔다가 같이 돌아오는 것이 셰르파의 일이다. 다만 그렇지 않은 셰르파도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등반가를 두고 온 적 없다. 물론 등반가의 체력이 떨어져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다. 갈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서 데리고 내려왔다.

Q 어느 나라 원정대와 가장 많이 등반하나?

A

한국이다. 한국 사람과 많이 다녀서 한국 사람의 빠른 성향과 정서를 잘 안다. 이제는 한국 사람과 함께 등반하는 게 편하다.

Q 최근 세계적으로 등정 시비가 이슈다. 정확한 산 정상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정상에서 10m 떨어진 곳도 정상이라 보나?

A

논란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정확한 산꼭대기에 가야 한다. 정상 몇 미터 아래는 정상이 아니다. 산 정상에 가야 한다.

Q 스폰서가 있다면 니말 푸르자의 최단 14좌 등정 기록을 깰 자신이 있나?

A

니말은 헬기를 이용한 적 있다. 니말의 기록은 2년 4개월이다. 모든 등반가들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한다면 내가 14좌를 오르는 데 1등 할 것이다.

Q 등반 비시즌 때는 뭘 하나?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할 건가?

A

집에서 농사짓고, 매일 2시간씩 러닝을 한다. 은퇴 후 뭘 할지는 생각 중이다.

Q 고산 등반 가이드만 하나? 트레킹 가이드도 하나?

A

8,000m 원정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 외의 기간에는 6,000m대를 비롯한 대중적인 등반과 트레킹 셰르파로도 일한다.

Q 14좌 중 가장 어려운 산은?

A

보통 K2를 가장 위험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시샤팡마가 어렵다.

Q 산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A

등정 후 클라이언트와 함께 무사히 내려왔을 때. 베이스캠프 돌아왔을 때 행복하다.

사누 셰르파의 등정 기록(높이순)

에베레스트(8,848m): 7회 등정

(2007년, 2008년, 2009년, 2012년, 2013년, 2016년, 2017년)

K2(8,611m): 2회 등정(2012년, 2021년)

칸첸중가(8,586m): 2회 등정(2014년, 2022년)

로체(8,516m): 3회 등정(2008년, 2021년, 2022년)

마칼루(8,463m): 2회 등정(2019년, 2022년)

초오유(8,201m): 2회 등정(2006년, 2008년)

다울라기리(8,167m): 2회 등정(2019년, 2021년)

마나슬루(8,163m): 3회 등정(2010년, 2011년, 2016년)

낭가파르바트(8,125m): 2회 등정(2017년, 2018년)

안나푸르나(8,091m): 2회 등정(2016년, 2021년)

가셔브룸1봉(8,068m): 3회 등정(2013년, 2019년, 2022년)

브로드피크(8,047m): 2회 등정(2014년, 2017년)

가셔브룸2봉(8,035m): 2회 등정(2019년, 2022년)

시샤팡마(8,012m): 2회 등정(2006년, 2011년)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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