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부르고뉴' 찬사 … 바다안개가 빚는 美소노마카운티 와인

진영화 기자(cinema@mk.co.kr) 2023. 5. 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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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와인 지도가 변하고 있다. 이상고온 현상이 지구를 덮치면서 포도 산지 기후가 달라진 영향이다. 세계 최고급 와인 산지로 이름 높은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최근 빈티지(포도 수확 연도) 와인은 예년보다 알코올 도수가 2~3도 높아져 '예전 같지 않다'는 평을 받고, 와인 양조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던 영국, 노르웨이 등 고위도 국가 와인이 '무서운 신예'로 주목받는 추세다.

대안을 찾아나선 와인 애호가들은 미국 소노마 카운티에 주목한다. 와인 양조용 포도 재배에 최적 조건인 '서늘한 기후'를 지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연중 시원한 기후에선 섬세하고 우아한 맛의 와인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호주 유명 와인 산지 태즈메이니아는 남극해 연안에 위치한 '서늘한 기후의 천국'이란 홍보 문구를 쓰고, 아르헨티나 역시 밤낮 기온차가 큰 해발고도 1500~2000m 안데스 산기슭에 와이너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노마 카운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쪽에 있다. 마크 트웨인이 "내가 겪은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라고 말한 샌프란시스코보다 약 50㎞ 북쪽이다. 육지 쪽으로 시원한 바람이 몰고 오는 태평양 연안을 끼고 90㎞에 걸쳐 길게 자리 잡았다. 높낮이가 각기 다른 구릉이 펼쳐져 있어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 양조가 가능하다. 지리적 영향으로 포도가 자라는 4~10월 낮 기온이 섭씨 20~30도를 오가지만 밤에는 5~10도로 급격히 떨어진다. 일교차가 큰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게 소노마 카운티의 특산물 '바다 안개'다. 소노마카운티양조협회 관계자는 "이른 아침 나타나는 바다 안개가 한낮 뙤약볕을 쬔 포도를 감싸줘 우아한 산미를 보존하고 맛에 복합성을 부여한다. 소노마 카운티 와인은 바다 안개가 빚는 것"이라고 말했다.

큰 일교차는 포도에 '우아함'이 깃들게 한다. 포도가 줄기에 매달려 있는 '행 타임(hang time)'을 적절하게 유지해 고급 와인을 표현하는 높은 산도, 낮은 알코올 도수, 붉은 과실 풍미, 꽃향 같은 특징을 부여한다. 기온이 너무 높으면 포도 생육 조건이 좋아져 당도가 높아지고, 이는 알코올 도수 증가로 이어진다. 동시에 맛과 타닌이 진해지고 우아한 맛을 좌우하는 산도를 잃는다. 반대로 날씨가 너무 추우면 산도가 급격히 치솟아 마시기 어려워진다.

소노마 카운티는 수십 년간 '불운의 땅'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미국 내파밸리라는 거인의 그림자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파밸리는 1974년 열린 블라인드 시음회에서 콧대 높은 프랑스 특급 와인을 꺾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산지다. 내파밸리 와인 가격이 큰 폭으로 뛰고, 특유의 묵직한 질감과 짙은 오크향에 물린 소비자들이 새로운 산지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지난 5일 열린 '소노마 카운티 배럴 옥션'에서 경매 참여자가 패들을 들고 있다.

김현빈 나라셀라 매니저는 "5년 전에도 소노마 카운티 지역의 피터 마이클, 오베르 같은 와인은 마니아층에선 없어서 못 팔 정도였지만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며 "최근엔 미국 와인 중 소노마 카운티 와인 판매량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와인 전문가들은 흔히 내파밸리를 프랑스 보르도, 소노마 카운티를 부르고뉴로 빗댄다. 거대 자본이 유입돼 화려한 관광지로 거듭난 내파밸리와 달리 소노마 카운티는 시골 농장 느낌이 물씬 나기 때문이다. 실제 소노마 카운티 와이너리의 85%는 기업이 아닌 가족 소유로 운영되고, 이 지역 인구의 4분의 1이 와인산업에 종사한다. 주력 품종 역시 비슷하다. 내파밸리는 보르도 지역처럼 카베르네 소비뇽이 우수하고, 소노마 카운티는 부르고뉴같이 '섬세한 포도의 대명사' 격인 피노누아를 내세운다.

한 와인업계 관계자는 "프랑스 부르고뉴와 위도가 비슷한 미국 오리건주도 피노누아를 밀고 있지만 이곳 피노누아는 햄버거같이 기름진 음식과 어울리는 다소 강한 강도를 갖고 있다"며 "피노누아 애호가들이 찾는 가늘면서 섬세한 느낌의 와인이 미국에서 나온다면 그건 소노마 카운티일 것"이라고 말했다. 소노마 카운티는 두 품종 외에도 60여 종의 포도를 재배한다.

소노마 카운티엔 매력적인 와이너리도 즐비하다. "와인 점수는 화장실 변기 옆자리가 적합하다"며 본인 와이너리 와인에 90점 이상 높은 점수를 매긴 전문지를 액자에 넣어 화장실에 걸어둔 '모리슨 와인즈(Mauritson Wines)', "포도가 자라는 토양에 대한 연구는 '패션'에 불과하고, 그저 정직하게 만들면 맛은 따라온다"고 말하는 반골 와이너리 '코지 그레이브스(Coursey Graves)' 등이다. 영화 '대부' 시리즈로 유명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설립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와이너리'도 소노마 카운티에 있다. 센시즈(Senses) 와이너리 오너 크리스토퍼 스트리터는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누아는 품질에 비해 너무 비싸졌다. 반면 소노마 카운티 피노누아는 글로벌 무대에서 승부할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을 끌어올렸고 많은 것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라며 "소노마 카운티 와인은 변곡점을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와인 수입사들도 소노마 카운티 와인을 국내에 들이기 위해 큰 관심을 보인다. 묵직하고 오크향이 짙은 내파밸리 와인 특유의 맛 외에 다른 맛을 찾는 국내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우 금양인터내셔날 브랜드 매니저는 "내파밸리에서 유명한 카베르네 소비뇽의 뻔한 맛에 질린 소비자가 분명히 있다"며 "국내에서 소노마 카운티 와인 수요가 확인돼서 시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소싱하려고 현장에 왔다"고 설명했다.

인터와인, 까브드뱅, 비노테크, 보틀샤크, 와인투유코리아, 리바인 등 국내 와인 수입사들은 지난 5일 소노마 카운티 맥머레이 에스테이트에서 열린 '소노마 카운티 배럴 옥션'에도 참여해 큰 관심을 보였다. 이곳 와인산업 육성을 위한 자금 조성을 위해 개최되는 이 경매엔 와이너리들이 이 행사만을 위해 만든 실험적인 와인 66개 로트(lot)가 출품됐다. 예컨대 소노마 카운티에서 포도 품종 진판델을 가장 잘 만드는 와이너리 7곳이 힘을 합쳐 단 240병의 와인을 빚는 식이다.

미국 전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노르웨이 등 와인업계 관계자 300여 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 최근 와인 사업을 빠르게 확장 중인 국순당은 이 중 2개 로트를 낙찰받기도 했다. 홍진기 국순당 수입주류 팀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소노마 카운티 브랜드 외에 대체재를 찾고 있었다"며 "이곳에서만 희소성 있는 와인일 뿐 아니라 한국 시장에 정규 수입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최고가를 썼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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