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호수 옆 엡손 “환경과 공존해야 기업도 지속”

프린터 브랜드 ‘엡손’이 손목시계를 만드는 제조사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 만화영화 <너의 이름은>의 배경이 된 나가노현 스와 호수 근처 ‘미소(된장) 공장’ 부지에서 만든 쿼터 시계(전지로 작동하는 시계)의 미세 공정 기술은 이후 프린터와 빔프로젝터, 로봇 기술 등으로 발전해 현재의 엡손을 만들었다.
23일 일본 나가노현 스와시의 세이코엡손(SeikoEpson) 본사에서 만난 오가와 야스노리 대표는 “‘낭비 없이, 작고, 정밀하게’ 제품을 만드는 게 기술의 지향점”이라고 강조했다. 1950년대 당시 첨단 산업이던 세이코의 손목시계 제조부터 이어온 기술 철학을 소비자와 환경 보존에 모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이었다.
프린터 회사로 잘 알려진 세이코엡손은 1942년 시계 제조업부터 시작해 사세를 확장했다. “시계 업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배터리로 작동하는 쿼츠 시계를 가장 먼저 상용화해 알린 브랜드가 엡손의 전신인 세이코였다”고 오가와 대표는 소개했다. 그 전까지 태엽을 감아 구동되는 기계식 시계와 비교해 두께를 절반가량 줄이면서 연간 시간 오차를 10초 안팎으로 낮출 수 있었다고 한다.

세이코가 1964년 도쿄올림픽 공식 타이머로 채택된 건 프린터 개발의 배경이 됐다. 선수들의 기록을 인쇄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타이머 프린터를 제작한 것이다. 이후 4년 뒤 전기 프린터의 앞 자를 딴 이피(EP)-001 모델이 출시됐고, ‘전기 프린터를 후손(Son)들에게 널리 전파하자’는 바람을 담아 현재 사명(Epson)의 탄생했다고 알라스타 보언(Alastair Bourne) 홍보·에이아르(PR·AR) 매니저는 부연했다. 시계의 정밀 부품 생산 능력이 미세한 빛을 투영해 영상을 비추는 프로젝터 사업으로 확장한 것이다. 현재 프린터와 빔프로젝터는 지난해 엡손 전체 연 매출 1조 3303억엔(약 12조 7천억원)서 각각 68%(9023억엔)와 16%(2168억엔)를 차지하는 핵심 사업이 됐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엡손에 위기가 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페이퍼리스(종이를 쓰지 않는) 정책을 도입하려는 기업 등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오가와 대표는 “모든 분야에서 종이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는 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엡손이 열 방출이 적고 전력소모가 낮은 잉크젯프린터 생산에 경쟁력이 큰 만큼 절반 가량의 레이저프린터 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업계에선 레이저프린터 사용 비중이 잉크젯프린터보다 조금 앞서는 것으로 본다.
시장조사 기관 아이마크그룹(IMARC Group)이 조사한 전 세계 프린터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448억 2천만 달러이고 2027년엔 61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도 프린터 시장이 연평균 매해 5% 이상 시장이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오가와 대표는 “스와 호수를 오염시키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했다. 마을을 둘러싼 높은 산세가 만든 13.3km² 규모 호수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 기업과 사람, 환경이 공존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2030년까지) 친환경 기술개발에 1조원을 투자한다는 약속은 단기적인 매출을 우선시하는 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나 기업은 지속할 수 없다고 본다. 환경에 공헌한다는 뜻으로 올해까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엡손 그룹 거점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 가능 에너지로 충당하는 ‘아르이(RE)100’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가와 대표는 한국 시장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과 소비자들은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다. 교육에 대한 열의도 높아 엡손에 한국은 굉장히 중요한 시장이다. 한국 기업들과 협업할 기회를 늘리고 한국에 대한 투자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가노/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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