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리시마 에비노고원] 화산 20여 개 도열 '규슈의 지붕'

김영미 여행작가 2023. 5. 2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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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세계여행]
진한 코발트블루색의 오나미이케의 장엄한 모습. 해발 1,411m, 둘레 1.9km.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장 큰 화구호이다.

1934년에 지정된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 기리시마킨코완국립공원霧島錦江湾国立公園 해발 1,200m에 펼쳐진 에비노고원えびの高原 위로는 20여 개의 화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기리시마霧島 연봉 혹은 연산이라 불리는 지형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안개를 뚫고 솟은 산봉우리들이 섬 같다고 해서 기리시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높은 고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규슈의 지붕으로도 부른다.

가라쿠니다케韓国岳(1,700m)를 최고봉으로 하여 다카치호노미네高千穂峰, 신모에다케新燃岳, 이오야마硫黄山 등의 화산군과 화구호火口湖가 밀집해 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에비노고원에는 가라쿠니다케를 거쳐 오나미이케로 이어지는 등산코스부터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까지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그러나 트레킹의 시작은 해발 1,200m에 위치한 에비노고원이니 날씨 변화에 대비한 트레킹 준비가 필요하다.

한라산을 닮은 가라쿠니다케

가라쿠니다케를 시작으로 시시고다케獅子戶岳(1,428m), 신모에다케新燃岳(1,421m), 나카다케中岳(1,345m)를 거쳐 다카치호미네高千穗峰(1,574m)까지 이어지는 기리시마 연산은 멀리서 봐도 한눈에 다섯 개의 높은 봉우리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최고 명승지는 가라쿠니다케이다. 가라쿠니다케에 서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바다 쪽으로는 가고시마에서 보았던 사쿠라지마桜島가 바다 한가운데 장엄하게 떠 있어서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 일본인들이 왜 사쿠라지마를 그렇게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육지 쪽으로는 에비노고원과 오나미이케大浪池 그리고 화구호가 줄을 잇고 활화산에서는 분화구가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만날 수 없는 생경한 풍광이다.

2018년 250년 만에 첫 화산 분출을 시작한 활화산 이오야마는 지금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가라쿠니다케는 한자로 '韓国岳'이다. 왜 일본에 한국악이 있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곳에서 한국이 보여서 한국악이라고 불린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리 일본이 가깝다고 해도 이곳은 남규슈인데 가락국 시대라고 해도 보였을 리는 만무하다.

가라쿠니다케에 직접 올라보니 절대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기리시마에에 살던 가락국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 한국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가라쿠니다케까지 오는 길이 그리 만만치 않다. 어찌됐든 한국악이라고 불리는 산을 오르는 길은 느낌이 남다르다.

에비노고원에서 가라쿠니다케까지는 불과 2km 정도, 고도는 500m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난이도는 그리 쉽지 않다. 날씨 변화도 심하다. 낮에는 봄날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 덕분에 에비노고원은 온통 서리로 덮여 있다.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니 이곳이 고원임이 실감이 든다. ​바람도 무척 거세다. 거센 바람 때문인지 얇게 얼어 있는 빙판 구간의 얼음은 실타래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다.​

활화산인 이오야마를 뒤로 하고 가라쿠니다케로 오르는 등산객.

등산로 입구에는 '이오야마의 화구호 폭발로 이오야마 반경 1km 범위 내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화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본인들에겐 그저 일상일 수 있겠지만 살짝 긴장이 된다. 2011년 신모에다케가 분화할 때는 가라쿠니다케도 출입이 통제되었고 2012년 7월 5일부터 위험단계가 내려가면서 가라쿠니다케 등산이 가능해졌다. 분화구 활동 상황에 따라서 구간별로 출입 통제되기도 한다.

가라쿠니다케로 오르다보면 一合目, 二合目, 三合目…이런 표지가 나온다. 이것은 1부 능선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합목合目은 산마다 기준이 조금 다르지만 해발고도가 일정하게 오를 때마다 표지를 붙인다. 에비노고원에서 가라쿠니다케 정상까지 해발고도차가 500m이니 고도가 50m씩 올라갈 때마다 합목合目이 하나씩 늘어난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3부 능선까지는 나무들 사이로 길을 따라 올라왔지만 이후부터는 나무들의 키가 낮아지고 잡목들이 많아진다.

이오야마전망대에 도착했다. 이오야마는 기리시마 연산 중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산이고 아직도 활동하는 활화산이다. 최근에 활동이 심해지면서 이오야마 앞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폐쇄되었다. 이오야마는 마치 테이블마운틴처럼 산의 정상이 평평하다. 바로 곁에서 펑펑 터지는 분화구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놀라운 경험이다. 전망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느낌은 참으로 생생하다.

후도이케에서 바라보는 이오야마 주변의 모습.

정상부로 올라갈수록 돌길은 점점 험해지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고 있다.​ 7부 능선을 지나면서부터는 화산 돌길이다. 화산암을 딛고 걷는 것은 무척 피곤하다. 돌을 잘못 디디면 쉽게 미끄러지고 심지어 부서지기도 해서 조금만 방심해도 부상당하기 쉬운 길이다. 오르던 길을 뒤돌아보니 이오야마, 시라토리야마白鳥山, 에비노고원까지 펼쳐진다. 바다로 시선을 옮기니 오나미이케 뒤에 사쿠라지마가 호위하고 서 있다. 장대한 풍광에 할 말을 잊는다. 참으로 멋지다. 이렇게 멋진 풍광은 쉽게 눈을 돌리기가 어렵다.

가라쿠니다케 정상에 도착했다. '韓国岳'이라는 정상목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가라쿠니다케 뒤에 숨어 있던 시시코다케獅子戸岳와 신모에다케가 새롭게 시야로 들어선다. 시커먼 화산재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태양의 빛내림으로 인해 신비스럽다. 신모에다케는 제임스본드의 <007 두 번 산다>에도 등장했던 활화산이다. 화구호를 중심으로 펼쳐진 오나미이케의 파노라마 경관 또한 너무나 웅장하다. 늦봄에는 선명한 분홍색의 규슈 철쭉이 가라쿠니산 정상 주변에 피어난다.

분화구는 달 표면과 같다. 어쩜 이리도 한라산을 닮았을까? 발아래 펼쳐진 분화구의 깊이는 300m에 이른다. 사고 위험도 있지만 안전펜스는 없다. 등산객 각자가 자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분화구에 앉아서 우리나라 그림자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해발고도 1,700m 가라쿠니다케 정상에 있는 '韓

일본에서 가장 고지대에 자리한 화구호, 오나미이케

하산은 오나미이케를 한 바퀴 돌고서 에비노고원으로 원점회귀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가장 고지대에 자리한 화구호 오나미이케는 해발 1,411m에 위치한 칼데라 호수. 큰 파도가 철렁일 정도로 큰 호수라는 의미에서 오나미大浪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심 11.6m, 직경 630m, 둘레 1.9km. 봄에는 거미 모양의 풍년화가 피고, 늦봄에는 규슈 철쭉이 피고 가을에는 알록달록 화려한 단풍의 모습이 호수에 반영된 풍경 또한 일품이다.

가라쿠니다케에서 오나미이케로 이어지는 길에선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오나미이케의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다. 오나미이케로 하산하는 계단은 마치 한달음에 호수로 뛰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처럼 멋지게 보였던 그 계단은 막상 다가서니 무척 좁고 경사가 급하고 난간도 없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는 계단이 파손된 곳도 있어서 옆으로 조심조심 넘어가야 한다. 그래도 불평보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길을 재촉한다.

오나미이케로 내려가는 길은 그늘이 많아서 얼어 있는 구간이 많다. 오나미이케에서 가라쿠니다케로 올라오는 등산객들은 아이젠을 착용하고 있다. 가라쿠니다케보다 해발고도가 낮아서 날씨도 따뜻하고 길도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겠다.

깊이가 300m에 달하는 한라산을 닮은 가라쿠니다케 분화구의 지형은 마치 달 표면 같다.

경사가 급해서 생각보다 빨리 오나미이케 들머리에 도착했다. 오나미이케를 한 바퀴 도는 데 필요한 시간은 50분 정도.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차이가 없겠지만 왼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걸어보니 왼쪽의 뷰가 훨씬 멋졌다. 결국 왼쪽 선택이 참으로 잘한 결정이었다.

​오나미이케 분화구 둘레길은 전나무가 가득한 오솔길이다. 어려운 코스는 아니지만 살짝 오르내림이 있는 길이다. 화구호 정상에서 가장 멋진 포토 스팟을 골라 앉아서 오나미이케를 가까이서 마주한다. 뒤를 돌아보니 가라쿠니다케가 새로운 모습으로 서있다. 올라갈 때는 참으로 험악산 돌산이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니 참으로 부드러운 능선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물에 양면성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가라쿠니다케와 오나미이케 둘레길이 오버랩된 풍광은 참으로 푸근하다. 사쿠라지마는 더욱 장엄한 모습으로 다가서고 조금씩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도 보인다.

오나미이케 오두막쉼터에서 오나미이케주차장으로 바로 하산할 수도 있다. 오나미이케주차장에서 시작해서 둘레길만 산책하는 데는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에비노고원으로 향하는 길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그늘진 곳은 얼어 있고 햇살이 들어오는 곳은 길이 녹아서 질퍽거린다. 무척이나 걷기 피곤한 길이다. 가끔 계단이 부서진 곳도 지난다. 에비노고원 근처에 이르면서부터는 편안한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산행거리 12km 약 4시간 소요)

가라쿠니다케에서 오나미이케로 하산하는 나무계단 길은 한 장의 그림엽서처럼 아름답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이케메구리 자연탐방로

이케메구리 자연탐방로池巡り自然探勝路는 뱌쿠시이케白紫池를 출발해서 시라토리야마, 롯칸논미이케六観音御池, 후도이케不動池를 차례로 따라걷는 약 5.6km의 트레일이다. 시라토리야마를 거치지 않으면 약 4.3km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피톤치드 가득한 산책길이고 언제라도 출발지점인 에비노고원 주차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에비노고원에 왔으니 가라쿠니다케와 오나미이케를 다녀오면 좋겠지만 시간이나 체력 등의 이유로 도전하기 어렵다면 이케메구리 자연탐방로를 걸어보자.

겨울의 끝자락이어도 햇살이 따스하게 비쳐서 걷기가 편안하다. 뱌쿠시이케와 롯칸논미이케는 산책로가 열려 있지만 후도이케에서 에비노고원으로 가는 길은 이오야마의 분화구가 활동을 시작해 산책로가 폐쇄되어서 돌아가야만 한다.

​뱌쿠시이케로 가는 중간에 있는 에비노고원전망대에서는 에비노고원뿐 아니라 가라쿠니다케도 멋지게 조망된다. 에비노고원전망대를 조금 지나니 일본 적송이 가득한 숲이다.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니코 파노라마전망대에서 2개의 호수, 뱌쿠시이케와 롯칸논미이케를 파노라마로 감상하고 다시 숲속 오솔길을 걷는다.

직경 250m이고 수심 1m가 안 되는 화구호 뱌쿠시이케 호수. 수심이 얕아서 오래전에는 동절기에 천연 스케이트장으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뱌쿠시이케는 시라토리야마 남동쪽에 있는 작은 화산체의 분화구에 위치한 직경 250m, 수심 1m가 안 되는 얕은 화구호이다. 예전에는 수심이 얕아서 겨울철에는 빙판이 되어 천연 스케이트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온난화된 겨울 날씨로 그렇지 못하다. 이곳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동쪽에 있는 롯칸논미이케까지 튀어나온 듯 분포되어 있고 화구의 남동부 둘레는 없어졌다. 파란빛의 호수가 무척이나 깨끗하다.

롯칸논미이케로 향하는 길은 벌써 새잎이 나와서 초록이 싱그러운 숲이다. 그 길에는 거대한 삼나무巨木スギ가 있다. 수령이 500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삼나무는 육관음 숭배자들이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나무를 야쿠시마 삼나무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그 잎으로 보아 기리시마 신궁, 사노 신사, 아소 신사 등 규슈의 중부와 남부의 오래된 신사에 심어져 있는 오래된 신목과 같은 계통의 삼나무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롯칸논도신사六観音當를 지나 롯칸논미이케에 도착했다. 롯칸논미이케 주변은 물참나무나 단풍나무 같은 광엽수와 전나무나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일 년 내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에비노주차장에서 조망하는 활화산 이오야마와 가라쿠니다케.

세 번째 호수 후도이케로 가는 길엔 일본 적송 군락지를 지난다. '아카마쓰 센본바루'로 알려져 있는 일본 적송들은 보기 드문 아름다운 가지를 가지고 있다. 기리시마 적송은 신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인 '고려'(아치형 들보)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가라쿠니다케의 폭발에 의해 날아간 퇴적물로 이루어진 에비노고원은 표면 곳곳에서 화산 가스가 분출되어 식물이 자라기에 가혹한 환경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거대한 스스기ススギ 풀밭이 형성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새우えび의 색으로 변해서 에비노고원이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에비노고원의 스스기는 가라쿠니다케에서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붉은 카펫을 연상시킨다. 에비노고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 중 하나이다.

후도이케의 분화구 물은 산성도가 높지만, 이오야마의 분기가 잦아들면서 해마다 산성도가 감소하고 있다. 후도이케는 두 번의 분화활동이 있었다. 맞은편의 이오야마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 중이다. 에비노주차장에 도착해 이케메구리 자연탐방로 트레일을 마무리한다.

가라쿠니다케와 맛볼 수도 있다.오나미이케 트레킹 맵

Info

기리시마온천

일본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온천이다. 기리시마 온천마을에 들어서면 유황냄새가 진동한다. 에비노고원에서 기리시마 온천마을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가는 온천 연기가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른다. 벳푸나 유후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멋진 트레킹 후에 피로를 푸는 데 온천만 한 것은 없으리라. 이곳 대부분의 숙박시설엔 온천이 있어서 산행 후 피로를 풀기 좋다. 일부 호텔에선 계곡에 흐르는 온천 수맥을 막아서 만든 노천온천의 진수를 맛볼 수도 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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