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내리는 함박눈, 순결한 첫사랑 같은 함박꽃나무[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5. 2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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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國花. 북한 200원 지폐 앞면에 ‘목란꽃’. 김일성 지시로 ‘목란’ 개칭
북한도 무궁화에서 함박꽃나무로 국화 바꿔…‘진달래’ 北 국화였던 적 없어
작약꽃도 ‘함박꽃’으로 불러 혼동하기 쉬워…작약꽃은 미나리아재비과
목란, 산목란, 산목련, 천녀화, 한백이꽃, 천녀화, 천녀목란으로 불려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서울역 ‘서울로 7017’ 고가에서 오월에 함박눈처럼 활짝 핀 함박꽃나무를 찾은 벌이 꿀을 빨고 있다. 가운데 툭 불거진 노란 암술 주위를 자주색 수술이 감싸고 있다. 2022년 5월 21일 촬영

<빛이 꿈꾸는 다이아몬드라면,/소리가 꿈꾸는 웃음이라면,/향기가 꿈꾸는 꽃이라면/그 빛과 향기와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마침내 이루는 보석도 있나니/광부(鑛夫)가 어두운 지층에서 원석(原石)을 찾듯/깊고 깊은 산속/녹음 짙은 골짜기를 헤매다 보면/아는 듯 모르는 듯/향기에 취해 그대 어딘가 이끌려갈지니/발을 멈추어 선 그곳에/오뉴월 내리는 함박눈처럼/아, 함빡 웃음을 머금고/바라보는 꽃,/빛과 소리와 향기가 어우러진/꽃들의 꽃이 거기 있나니.>

오세영 시인의 시 ‘함박꽃’처럼 오뉴월에 함박눈처럼 순백색의 , 하이얀 꽃을 피우는 ‘함박꽃나무’는 깊은 산 중턱, 골짜기에서나 만날 수 있다. 산으로 가야 운좋게 만날 수 있는, 범접하기 힘든 그 귀한 함박꽃나무 꽃, ‘산목련’이라고도 부르는 이 꽃을 오월 서울 도심 속 ‘서울로 7017’ 고가도로에서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함박꽃에서 ‘웃음의 향기’를 느꼈다고 하는 시인의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함빡 웃음’이다. 얼마나 반갑고 예뻤으면 ‘함박웃음’ 대신 ‘함빡 웃음’이라고 했을까.

봄의 전령사 목련 꽃이 빈 가지에 큰 꽃을 피우지만 함박꽃나무 꽃은 목련 꽃보다 작은데다 푸른 잎이 돋은 뒤에 피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 서울로 7017’ 고가에서 2022년 5월 21일 촬영

잎이 돋아나기 앞서 빈 가지에 큼지막한 새하얀 꽃송이를 피우는 ‘봄의 전령사’ 목련과 달리 함박꽃나무 꽃은 초록 잎 사이로 수줍은 듯 순백의 꽃을 내민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목련과 달리 함박꽃나무 꽃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키가 3~7m 정도 크게 자라, 땅을 보며 걷거나 앞만 보고 걸으면 마주치기 힘들다. 긴 꽃자루에 매달린 듯 아래를 향해 함박웃음, 함빡 웃는 순백의 꽃을 발견하게 되면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초록물/뚝뚝 듣는/숲그늘 따라/지치도록 걷다가/문득/고개 들다/마주친 꽃 한 송이//순결한 첫사랑 같은/함박꽃나무/흰꽃 그늘 밑을 지나온 저녁/꽃향기에 그을렸는가/밤 깊도록/내 몸이 향기롭다>

‘꽃의 시인’ 백승훈 시인은 시 ‘함박꽃나무’에서 함박꽃나무 꽃을 ‘순결한 첫사랑’에 비유했다 .함박꽃나무 꽃말은 ‘수줍음’. 활짝 핀 함박꽃은 부끄럼 타는 ‘새색시’, 신부의 모습이다. 하늘을 향해 큼지막한 꽃봉오리를 당당히, 도도하게 피우는 목련이 성숙한 중년의 여인에 비교한다면 순백의 작은 꽃잎을 수줍은 듯 아래로 떨구는 배시시 웃는 청순가련형 새색시의 모습이다. 코끝을 감도는 은은하고 달콤한 진한 향기마저 풍긴다.나무껍데기 향도 독특하다.

목고개가 아프도록 매달린 산목련꽃을 바라보다 보면 다 저절로 함박미소가 지어지니 ‘함박꽃나무’가 틀림없다. 목란, 산목란, 산목련, 천녀화, 한백이꽃, 천녀화, 천녀목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나무의 속을 파내어 사용하던 큼지막한 함지박을 닮았다고 함박꽃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주로 5∼6월에 개화한다. 붉고 특징적인 생김새의 동그란 열매가 9∼10월에 작게 열린다. 눈부실 만큼 하이얀 꽃잎을 열면 가운데 툭 불거진 암술과 주위를 감싸고 있는 자주색 수술이 있다. 암술의 수분이 이뤄져야만 수술이 활짝 피며 꽃가루를 방출한다. 우수한 유전자를 위한 철저한 딴꽃가루받이를 하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수정이 끝난 함박꽃은 꽃잎을 툭 떨구지 않고 아기 열매를 감싸 안는다. 가을이면 잎들이 단풍이 들며, 열매는 붉게 익어가고 툭툭 과피라 벌어지며 붉은 씨앗이 떨어져 나간다.

함박꽃나무 순백의 꽃. 서울로7017. 2022년 5월21일 촬영

함박꽃나무는 북한의 국화(國花)다. 북한 200원 지폐 앞면에 ‘목란꽃’이 그려져 있다. 원래 북한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해방 후 일정 기간 무궁화가 국화였으나 1991년 4월 10일 김일성이 "목란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향기롭고 생활력이 있기 때문에 꽃 가운데서 왕"이라며 국화로 삼을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난(蘭)처럼 고결하고 향기로운 꽃을 가졌다고 ‘나무의 난초’라는 의미로 ‘목란(木蘭)’이다. 북한에서는 목란이라고 하기에 모란과 혼동할 수 있다. ‘목란(木蘭)’‘목련(木蓮)’은 같다. 북한에서 국화로 삼은 것은 목련 중에서도 산목련, 즉 함박꽃나무다.

북한에서 함박꽃나무(산목련)를 목란이라 부르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1964년 5월 경에 김일성이 황해도 정방산에 있는 성불사의 휴양소를 찾았을 때, 만개한 함박꽃을 보고 "이처럼 좋은 꽃을 그저 함박꽃이라고 불러서는 아쉬움이 남으니, 이제부터는 이 꽃을 아름다운 꽃에 붙이는 난초(蘭草)의 ‘란(蘭)’자를 붙여 ‘목란(木蘭)’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해 이후 산목련을 목란으로 개칭했다고 한다.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상징하는 김일성화와 김정일을 상징하는 김정일화가 국화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또 무궁화와 더불어 옛부터 한국을 상징했던 꽃 중 하나였거나 남북한 모두 목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초하고 순박한 멋이 있고 향기도 청하하기 때문에 무궁화, 진달래와 함께 야생화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꽃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북한은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진달래가 국화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북한 정보가 부족하던 군사정권 시절 엉뚱하게도 ‘진달래=북괴 상징’ 취급을 받은 적이 있다. 북한에서 김정숙을 ‘조선의 진달래’라며 치켜세운 적은 있지만 옛날부터 진달래는 남북을 불문하고 한국인이 사랑하던 꽃이다.

오월에 서울로 7017 고가에 핀 작약꽃. 작약꽃은 함박꽃으로도 불려 함박꽃나무 꽃과 혼동하기 쉽다. 2022년 5월13일 촬영

오세영 시인의 시 ‘함박꽃’처럼 함박꽃나무 꽃을 ‘함박꽃’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함박꽃이라는 이름 때문에 흔히 ‘작약(芍藥)꽃’과 혼동되기 쉽다. 그 이유는 ‘작(芍)’의 한자가 ‘함박꽃 작’이기 때문이다. 작약꽃도 5∼6월에 꽃이 피고, 꽃이 크고 탐스러워 함박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엄연히 학명이 다르다. 작약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백작약·적작약·호작약·참작약 등 다양한 품종이 있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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