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면 돈덩어리인데, 그냥 버려요?...흔해진 ‘멸균팩’의 귀한 변신 [정슬기의 가치 소비]

정슬기 기자(seulgi@mk.co.kr) 2023. 5. 20.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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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는 폐기물 취급받던 멸균팩
최근 재활용 움직임 커지는 중
협회는 2030년 재활용률 70% 목표

코디 화장지 브랜드로 유명한 쌍용 C&B가 지난달부터 시장에 내놓고 있는 에코그린 롤화장지에는 최근까지 소각처리 대상 폐기물 취급을 받던 성분이 들어간다. 바로 멸균팩을 재활용해 이것을 화장지에 10% 혼합하고 있는 것이다.

단백질 음료 용기로 주로 쓰이는 멸균팩은 단백질 음료 소비가 늘면서 사용량도 덩달아 늘고 있다. 하지만 특수 처리를 거치는 멸균팩의 특성상 일반팩과 달리 재활용 인프라 부족해 주로 소각처리돼 왔다. 하지만 최근 이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쌍용 C&B는 멸균팩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에 주목해 기존 제품에 멸균팩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재활용 자원의 폭을 넓혔다. 멸균팩 혼합률도 지난해에는 5%에 불과했지만, 지속적인 연구 끝에 3월에는 8%, 4월 10%로 늘어났다. 화장지 종류도 점보롤까지 넓히는 등 다양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멸균팩은 고급 펄프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재활용 가치가 아주 높은 자원”이라며 “제대로 된 분리배출 인프라와 수거 체계만 갖춰진다면 더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올해 멸균팩 생산량은 약 3만4860톤 정도로 추정되며 2025년이면 3만7000톤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실 멸균팩은 그동안 인프라 부족 등으로 재활용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일반팩을 중심으로 확립된 재활용 체계를 바꾸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일반팩은 음료를 보호하기 위해 비닐 재질인 폴리에틸렌(PE)이 섞여 있다. 또 습기 저항을 강하게 하는 습강처리로 인해 원재료 간 결합을 해체하는 공정인 해리 과정이 길고 다양한 화학 처리가 필요해 재활용 공정에 비교적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반면 멸균팩은 빛과 산소 등을 차단하기 위한 알루미늄 호일 층이 있는 다층 구조로, 100% 재활용이 가능한 원료로 만들어진다. 일반팩보다 해리 과정이 짧고 화학 처리도 거의 필요없다. 다만 다른 포장재보다 크기가 작고 배출량도 적어 분리배출, 선별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에 아직 시장에서 주요 종이자원보다는 가연성 폐기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게다가 종이팩의 주요 재활용 방식은 화장지인데, 추출한 섬유의 색이 밝은 일반팩과 달리 멸균팩은 표백하지 않아 황색을 띈다. 창강제지기술연구소 류정용 교수는 흰색 화장지의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되는 것 역시 멸균팩 재활용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라고 봤다.

멸균팩을 사용한 제품들.<테트라팩>
이런 가운데 쌍용 C&B 등 업체들이 멀균팩 재활용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쌍용 C&B가 보유하고 있는 비닐라미네이팅을 벗겨내는 설비는 멸균팩도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 설비를 거치면 종이, 폴리에틸렌,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진 멸균팩은 화장지로 활용할 수 있는 종이와 물류용 팰릿, 식음료 운반 상자 등을 만들 수 있는 플라스틱·알루미늄 복합소재 폴리알(PolyAl)로 나뉘어 처리된다. 이렇게 처리되는 멸균팩은 월간 약 15톤 정도다. 매달 사용되는 재활용 멸균팩 종이 원료로 펄프 약 8.5톤을 절약할 수 있는데, 이는 매달 170그루의 나무를 살리는 것과 맞먹는다.

다른 업체들도 멸균팩 재활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균 포장 기술 선도 기업 테트라팩은 멸균팩의 올바른 분리배출과 수거를 위해 IoT 종이팩 수거함 사업을 운영 중이다. 2018년부터 지방자치단체 및 스타트업과 연계하여 공동주택 및 대형마트에 수거함을 설치했으며, 현재 서울, 부산, 경기도를 포함한 20개 도시에서 300대 이상을 운영하고 있다. 서비스 이용객수는 약 4만명에 달한다.

2년 전부터는 400여 개 아이쿱생협에서 운영하는 자연드림 매장에 일반팩, 멸균팩을 분리해 배출하는 분리수거함도 1000개 지원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은 지난해 멸균팩 총수거량의 90%를 차지하기도 했다.

테트라팩은 2021년 말부터 환경부, 매일유업, 정식품, 삼육식품, 서울우유협동조합 등과 택배를 활용한 종이팩 회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가 세척한 멸균팩을 모아 닥터주부에 택배로 보내면 재활용 업체에서 처리한다.

수거된 멸균팩을 재활용 업체에 납품하기 편하도록 묶어뒀다.<테트라팩>
지난해에는 멸균팩 재활용률을 높이자는 취지로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KACRA)도 창립했다. 테트라팩 역시 이 협회에 들어가 있다. 협회는 양질의 멸균팩을 공급하기 위해 쌍용 C&B에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회수선별사를 연계시키는 등 활동을 하고 있다. 협회는 현재 20% 수준인 멸균팩 재활용률을 2030년까지 70%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친환경이 화두가 되면서 자신이 사용한 제품의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며 “식음료 및 포장재 기업들은 선순환을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디의 에코그린 롤화장지.<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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