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틀 동안 쏟아진 기록적 폭우에다 마을 곁을 흐르는 강의 둑이 무너지면서 마을은 빠르게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노인과 그를 간병하는 아내는 다른 사람 도움이 없이는 피난할 방법이 없었다. 전기와 전화는 이미 끊겼고 안타깝게도 구조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방 안은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고 잡동사니들이 물 위로 떠다니기 시작하였다. 한 시간 남짓이면 침대도 물에 잠길 것으로 보였다.
남편은 아내에게 빨리 밖으로 나가 피할 방책을 찾거나 2층으로라도 올라가도록 채근하였으나, 아내는 남편만을 두고 혼자 피할 수 없다며 남편 곁에 남을 것을 고집하였다. 남편의 언성을 높인 다급한 성화에도 아내는 “지금까지 내 뜻대로 살지 못하고 당신에게 늘 양보하고 살아왔으니 오늘은 당신을 한번 이겨 보겠다”고 웃기까지 하며 대꾸하였다. 이어서 아내는 “내가 당신을 두고 밖으로 나가서 산다 한들 내 삶이 행복할 수 있겠어요? 여기에서 당신과 함께 가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일이어요. 당신이나 나나 살 만큼 살았으니 이만하면 잘 살았어요.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은 힘들어할 텐데, 이렇게 함께 가는 것도 무방해요. 도회에 나가 사는 아이들도 한 번 장례로 끝내고, 관청에서도 도와줄 거고, 언론도 내가 피하지 않고 함께 떠났다며 온갖 찬사를 동원하여 보도할 거고, 시민들도 괜히 미안해하며 우리의 명복을 빌어줄 거예요” 하며 넉살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치 이 사태를 예견하고 준비했던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남편은 이내 자신과 아내의 처지가 바뀐 경우에 자기 생각도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가 피하도록 하는 설득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아내에게 어떻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달해야 할지 생각하였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이 산중 목장에서 양을 치던 목동과 주인집 딸 아름다운 아가씨의 이야기인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이었다.
어느 날 아가씨가 산중 목장에 식량을 전해주려 노새를 몰고 나타났다가 돌아가는 길이 물에 잠겨 다시 돌아와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목동과 아가씨는 모닥불 앞에 앉아 밤을 새웠고 목동은 아가씨에게 밤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이야기를 듣던 아가씨는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목동은 별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남편은 말문을 열었다. “당신,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을 좋아했지요. 말은 안 했지만 나도 당신을 목동이 아가씨에 대하여 느꼈던 별이라고 생각했소. 이제 보니 당신은 길을 잃고 내게로 내려온 별이 아니라 나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돌아갈 양으로 내려온 별이었네.”
물은 거의 침대 높이로 차올랐다. 생각보다 차지 않았다. 오히려 안온하여 어머니 배 속이 이 느낌일 것 같았다. 여러 가지 물건이 방 곳곳에 떠돌았다. 아내는 침대 위로 올라 남편 곁에 누웠다. 그리고 둘이서 흩어지지 않도록 긴 수건으로 자신과 남편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아내는 말했다. “우리는 이제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도 알지요.”
몇 년 전 자그만 외신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홍수로 집이 침수되었는데 그 집에서 노인 부부가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남편은 병환으로 거동할 수 없지만 간병하는 아내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으나 피하지 않고 함께 죽음을 맞은 것 같다는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를 접한 후 오랫동안 노부부가 맞았을 죽음의 순간과 그들이 나누었을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떠올랐습니다. 단순한 궁금증 때문이 아닙니다. 두 분이 마지막 순간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러한 바람을 담아 엽편(葉篇) 소설 형식으로 구성해보았습니다.
내일, 21일은 둘이서 하나 되어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뜻으로 정한 ‘부부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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