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같았다, 핸드폰을 보기 전까지

김동식 소설가 2023. 5. 20.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길고양이 혐오 범죄… 인간에게는 무해한가
일러스트=한상엽

“누가 자꾸 길고양이 밥을 주는 거야 진짜! 내가 이 새끼 잡고 만다.”

김남우는 씩씩대며 바닥의 그릇을 치웠다. 담벼락에 ‘밥 주지 마시오’ 경고 문구도 써 붙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떤 인간인지 몰라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빌어먹을 고양이 새끼들!”

만약 누군가 속 편하게 ‘길고양이 귀엽잖아’ 따위의 말을 하면 그는 발작했다. “귀엽기는 씨! 새벽 세 시에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깨봤어? 사방에 싸질러 놓은 고양이 똥 치워봤어? 음식물 쓰레기 봉투 다 터뜨려 놓은 거 그거 다 누가 치우냐고! 가끔 와서 밥만 주고 가는 양반들이야 길고양이가 귀여울 수 있겠지. 근데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찢어 죽이고 싶은 기분이라고!”

김남우네 가족은 모두 고양이를 증오했다. 창밖에 보이면 물을 뿌려 쫓아내고, 고양이가 싫어한다는 레몬즙도 바르고, 인터넷에서 구매한 초음파 퇴치기도 써봤다. 모두 이렇다 할 효과를 못 봤다. 근본적으로 밥 주는 사람이 없어져야 해결될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침, 약수터를 갔다 오던 김남우는 멀리 용의자의 뒷모습을 보게 됐다. “어? 저, 저거!”

골목길에 밥그릇을 놓는 남자를 본 김남우는 흥분해 뛰었다. 그러자 상대방도 뛰었다. 약수통 때문에 속도를 못 내던 김남우가 뒤늦게 약수통을 내팽개쳤을 때는 이미 남자가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남우의 고개가 한 지점에 고정됐다. 작은 빌딩에 주차된 검은색 벤츠 차량이 막 출발하는 참이었는데, 김남우는 한참 그 차를 노려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아오! 잡을 수 있었는데 진짜!” “뭘 잡아?” 김남우는 거실에서 TV를 보던 어머니에게 남자를 놓친 일을 설명했다. “얼굴은 못 봤는데, 어린 놈은 아니에요. 양복도 차려입었더라니까요? 혹시 어쩌면 벤츠 끌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네요.” “벤츠 타는 양반이라고?” “쫓아가다가 보근빌딩에서 차가 한 대 나가는 걸 봤는데, 왠지 좀 싸했어요.”

김남우는 새삼 차량 번호라도 봐둘걸 후회했다. 긴가민가했는데, 양복 차림으로 길고양이 밥을 줄 정도라면 외제차도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그날 저녁, 김남우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남우야! 엄마한테 들었다. 누군지 알 것 같다. 보근빌딩에 학원 큰 거 하나 있지? 거기 원장이다! 그 양반이 확실하다! 사료 그릇 들고 가서 한번 따져봐!”

눈을 번쩍 뜬 김남우는 당장 보근빌딩으로 쫓아갔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나타난 그를 직원들이 막아섰지만, 막무가내로 원장실까지 쳐들어갔다. 원장실에서 나온 건 마흔쯤 돼 보이는 점잖게 생긴 남자였는데, 목소리도 무척 차분했다. “제게 용무가 있으시다고요? 안으로 들어오시죠.” 김남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왜 남의 골목에 자꾸 길고양이 밥을 주고 갑니까!” “제가요?” 전혀 모르는 듯한 남자의 순진한 표정을 본 김남우는 움찔했지만, 곧 인상을 험악하게 구겼다. “CCTV를 가져와야 발뺌을 안 할 겁니까? 아까 낮에 본 옷이랑 지금 똑같네!” 남자는 빙글 웃었다.

“아, 되물었을 뿐이지 제가 아니란 말은 아니었습니다. 예, 제가 요즘 길고양이 밥을 주고 있습니다.” “뭐요? 이 사람이 장난하나.” 김남우가 벌떡 일어서자, 남자가 양 손바닥을 흔들며 말했다. “아유 선생님, 길고양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시지요? 근데 저는 선생님의 적이 아닙니다. 다 사연이 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다소 괴상한 내용이었다. “저는 호기심에 토끼의 머리를 잘라봤을 뿐인데, 어머니는 너무나도 걱정하셨습니다. 아마 저를 사이코패스로 생각하신 것이겠지요. 어머니를 따라 전국의 사찰을 다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사찰에서 저는 여러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깨달음 말입니다. 그건 제게 중요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대신, 죽이기 전 꼭 해야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얼마간 저승밥을 챙겨주는 일이죠. 그럼 죽여도 되거든요.” 이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싶어 김남우가 화를 내자, 남자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남자는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화면 속에는 끔찍한 상태로 죽어있는 고양이 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어떻습니까? 제가 적이 아니란 말을 이해하시겠지요? 우린 동지입니다.” 남자의 미소에 김남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니, 이건 명백히 동물 학대 범죄인데? 핸드폰을 거둔 남자는 만족스레 웃으며 물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길고양이 밥을 줘도 되겠지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선생님 집 주변 길고양이들을 제가 다 박멸하는 날이 오겠지요.”

김남우는 고민했다. 이 남자를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모른 척해야 할까? 끔찍한 동물 학대범이니 당연히 신고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길고양이를 대신 박멸해주겠다고 하니 눈감아줘야 하는지…. 한참 고민하던 김남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서 밥 주는 것만 좀 주의해주시죠.”

김남우는 남자의 범죄를 모른 척하기로 했다. 소름 끼치는 인간이지만, 내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다면야. 빌딩을 나와 집으로 돌아간 김남우를 그의 아버지가 마중했다. “어! 갔다 왔냐? 뭐라던? 그 양반 맞지?” 김남우는 찜찜했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기에 연기했다. “에이, 아니던데요? 그분 아니었어요. 제가 낮에 본 사람하고 다르더라고요.”

고개를 갸웃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김남우는 일부러 시선을 피해 주방으로 가며 물었다. “아니었어요. 왜 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컵을 꺼내 물잔을 따르던 김남우의 귓가에 아버지의 대답이 들려왔다. “어 그 양반이 뭐랄까, 좋은 사람 같아서 말이다. 자기 돈 들여서 매주 노숙자들 밥을 챙겨주고 있거든.” 김남우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말인즉슨….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