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경복궁 근정전서 첫 패션쇼… 임금의 길이 세계 런웨이로

송혜진 기자 2023. 5. 1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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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2024년 크루즈 컬렉션, 경복궁서 최초로 공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 16일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구찌 2024 크루즈 패션쇼’를 열었다. 모델들이 옷을 선 보이며 런웨이를 하고 있다.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은 조선시대 왕실이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는 행사가 열린 곳이다. /AFP 연합뉴스

16일 저녁 8시 서울 종로 경복궁 근정전. 모델이 붉은 안감이 펄럭이는 점퍼를 입고 근정전 월대(月臺·궁궐 주요 건물에 설치된 넓은 대)와 어도(御道·임금이 지나는 길)를 지나쳐 걸어가자 관람객이 숨을 낮췄다. 강렬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나라 음악감독 정재일이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사용한 그 배경음악이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Gucci)는 이날 2024년 크루즈 컬렉션을 한국, 그중에서도 역사적인 장소로 꼽히는 경복궁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했다. 경복궁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이자 조선 시대 4대 궁(宮)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이런 경복궁 근정전에서 패션쇼가 열리는 건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2009년 프라다가 경희궁에서 트랜스포머 전시를 연 적은 있다. 경희궁은 5대 궁에 속한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 16일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구찌 2024 크루즈 패션쇼’를 열었다. 모델들이 옷을 선보이며 런웨이를 하고 있다.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은 조선 시대 왕실이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는 행사가 열린 곳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쇼엔 미국 유명 배우 다코타 존슨, 시어셔 로넌을 비롯해, 영화감독 박찬욱, 영화배우 이정재·김혜수 같은 유명인과 재계 관계자, 최응천 문화재청장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패션쇼를 감상하는 동안 현존하는 한국 최대 목조 건축물 중 하나라는 경복궁 근정전이 어두운 밤하늘에 물들어가는 풍경을 함께 바라봤다. 근정전의 팔작지붕은 날아갈 듯했고, 근정전 월대를 장식한 갖은 동물상도 은은한 조명에 빛났다. 바닥엔 별을 연상케 하는 조명이 낮게 깔렸다. 멀리 인왕산 자락이 보였다. 이날 행사는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최초의 근정전 패션쇼’

이번 경복궁 쇼가 치러지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구찌는 본래 작년 11월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열 계획이었으나, 한 패션 잡지가 청와대에서 화보를 찍으면서 논란이 불거지자 쇼를 취소했다. 이후 문화재청과 다시 협의해 11월 쇼를 그대로 열겠다고 했지만 이태원에서 대규모 참사가 빚어지자 애도 차원으로 행사를 다시 취소했고, 올해 5월에야 열게 됐다.

16일 오후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 2024 크루즈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국내에선 해외 명품 업체가 패션쇼를 열 때마다 이처럼 논란이 자주 불거지지만, 해외에선 명품 업체가 유서 깊은 문화유산에서 패션쇼를 하는 것이 드문 경우가 아니다. 쇼를 통해 해당 나라의 문화재와 유적을 더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구찌 역시 이탈리아 피렌체의 피티 궁전과 풀리아에 있는 고성(古城)인 카르텔 델 몬테,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처럼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에서 쇼를 해왔다.

16일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구찌 2024 크루즈 패션쇼’.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은 조선시대 왕실이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는 행사가 열린 곳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 16일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구찌 2024 크루즈 패션쇼’를 열었다. 모델들이 옷을 선 보이며 런웨이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구찌, 한국의 창의적 유산(遺産)에 경배하다

구찌가 경복궁을 택한 것은 장소의 ‘역사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구찌의 글로벌 회장 겸 CEO인 마르코 비차리(Bizzari)는 “구찌는 전 세계의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품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경의와 경배를 보여온 브랜드이고, 경복궁은 과거를 기념하고 미래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K컬처로 전 세계에서 주목 받는 서울의 오늘은 창의적인 유산을 품은 우리의 과거 덕분이라고 본 것이다.

경복궁은 세종대왕이 평생 한글 창제와 천문학의 발전을 이뤄낸 곳이기도 하다. 구찌 관계자는 “조선 시대의 가장 창의적인 문화가 꽃핀 시절을 경복궁이 품고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쇼가 열린 경복궁 근정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를 알현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 이탈리아 외국 브랜드인 구찌가 한국 역사와 만나 쇼를 여는 상징적인 의미와도 맞아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매듭 장식부터 오방색 드레스까지

이날 구찌 쇼에는 한국의 전통 의복을 구석구석 차용한 옷이 여러 벌 올라오기도 했다. 한복 매듭을 차용한 커다란 리본이 달린 드레스와 슈트가 여럿 무대에 올라왔고, 한복의 오방색을 차용한 것처럼 보이는 옷도 종종 눈에 띄었다. 요즘 서울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의상 스타일을 녹여낸 컬렉션도 있었다. 스케이트 보드를 활용한 가방, 한강에서 서핑하는 사람들이나 제트-스키족(族)이 입는 스쿠버 다이버용 슈트를 적용한 스포츠 웨어도 무대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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