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되겠다” 중학생 세근이의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장한서 2023. 5. 1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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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절하를 받았던 만큼 이를 악물었죠.”

프로농구 안양KGC인삼공사는 2022~2023시즌을 앞두고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전 시즌 서울SK에게 챔프전에서 무릎을 꿇은 뒤 팀을 7년 넘게 이끌었던 김승기 감독과 리그 최고 슈터 전성현을 모두 떠나 보냈기 때문. 국가대표 사령탑 경험이 있는 김상식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지만 전력 손실과 함께 큰 변화를 겪은 인삼공사였기에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베테랑’ 오세근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생, 36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오세근의 시대는 갔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예상을 뒤엎는 한 해였다. 인삼공사와 오세근 모두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인삼공사는 단 한 번도 1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 리그 우승에 이어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 트로피와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차지하며 ‘트리플 크라운’ 위업을 이뤘다. 오세근은 이번 시즌 SK와 다시 마주한 챔프전에서 맹활약,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오세근은 챔프전 7경기에서 평균 35분56초를 뛰며 19.1점 10리바운드 2.4어시스트로 우승을 이끌었다. 결국, 마지막 주인공은 그였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를 차지한 인삼공사 오세근이 지난 1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뒤 안양체육관 인근 공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오세근은 지난 15일 경기 안양체육관 인근 카페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우리를 우승 후보를 떠나 강팀이라고 말한 사람조차 없었다. 나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며 “이를 악물고 챔피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우승을 통해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한 해였다”고 회상했다. 

오세근은 자신의 커리어를 ‘롤러코스터’로 비유했다. 정점을 수차례 찍기도 했으며, 바닥으로 여러 번 추락하기도 했다. 선수 생활 동안 크고 작은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이럴 때마다 여러 평가가 오갔다. 하지만 그에겐 이 역시 ‘자양분’이었다. 오세근은 “바닥을 찍었을 때 스스로한테 실망도 많았다. 밖에서 보는 안 좋은 시선도 언제나 바꾸고 싶었다”며 “평가가 좋지 않을수록 오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그였기에 이번 챔프전 7차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나온 ‘라이언 킹’의 포효는 더욱 강렬했다. 부정적인 평가 속에서 간절했던 우승과 함께 또 다시 자신을 증명한 것에 대한 기쁨과 자부심이었다. 네 차례 우승을 경험한 그에게 가장 뜻깊은 우승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10년 넘게 리그 최고의 자리에 군림 중인 오세근. 최고를 향한 그의 ‘근성’은 농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초심’에서 비롯됐다. 중학교 3학년, 키 190㎝로 또래 보다 압도적인 키를 자랑하던 오세근은 인천의 한 길거리에서 농구를 하다가 안남중학교 농구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때 부모님께 ‘농구를 하겠다’고 선언하며 약속한 건 두 가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최고가 되겠습니다.” 중학생 오세근은 농구공을 놓지 않았고, 최고가 됐다. 아직도 이 약속을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그다. 오세근은 “고등학교 1∼2학년 때 노력한 것에 비해 실력이 많이 늘지 않아 혼자 많이 울 정도로 너무 힘들 때가 있었다”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오히려 연습하며 버텼다. 함께 사는 선배와 새벽까지 운동하며 꿈을 이어 나갔다”고 떠올렸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를 차지한 인삼공사 오세근이 지난 1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뒤 안양체육관 인근 공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이번 챔프전은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삼공사와 SK가 2년 연속 만나며 ‘라이벌’을 구축했고, 그에 걸맞게 마지막 7차전 연장까지 가서야 승부가 결정됐다. 7차전 연장 접전은 프로농구 출범 이후 최초다. 오세근은 팀이 1점 차이로 앞서던 연장 종료 34초 전 변준형의 슛이 림을 맞고 나오자 홀로 리바운드를 따낸 뒤 파울을 이끌었고,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키며 사실상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오세근은 “주변에 전부 SK 선수들이었는데, 공이 림을 맞고 튀어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들어가 리바운드를 따냈다. 뺏기지만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흔들었는데 파울이 선언됐다”며 “첫 자유투는 살짝 긴 느낌이 들어 손을 끝까지 뻗지 않았고, 그대로 림에 들어갔다. 두 번째는 자신 있게 던졌다”고 설명했다. 챔프전 7차전은 정말 열광의 도가니였다. 선수들의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이 정도의 열기와 함성을 선수 생활 동안 느낀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뜨거웠어요. 제가 원래 세리머니를 하는 선수가 아닌데 저절로 나올 정도로 닭살이 돋았습니다. 홈에서 열띤 응원 속에서 우승까지 하니 더 좋았어요.”

그의 ‘롤모델’은 누굴까. 플레이 스타일로는 미국 프로농구(NBA)의 디르크 노비츠키(45∙독일)을 꼽았다. 오세근의 등 번호도 노비츠키를 따라 41번이다. 노비츠키는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21시즌간 NBA 무대를 누볐고, 팀에 최초 우승을 안기고 은퇴한 최고의 ‘레전드’다. 큰 키의 피지컬과 정교한 슛 감각을 가진 게 오세근과 닮았다. 국내 선수로는 ‘전설’ 김주성 DB감독과 양동근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다. 오세근은 “같은 포지션인 주성이형의 플레이를 보고 많이 배웠다”며 “동근이형은 운동은 물론 평소 생활과 인간관계도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를 차지한 인삼공사 오세근이 지난 1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뒤 안양체육관 인근 공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10년 넘게 인삼공사에서 동고동락한 ‘캡틴’ 양희종은 이제 코트를 떠난다. 2007년 입단, 17년간 인삼공사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양희종은 오세근에게도 정신적 지주였다. 오세근은 양희종에 대해 “인삼공사에서 함께 있으면서 희로애락을 느꼈다. 아프기도 하고 질타와 격려도 있었는데, 이를 이겨내고 17년간 선수 생활을 한 희종이형한테 ‘정말 고생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부상으로 인해 챔프전 7차전 종료 3초 전 커리어 마지막으로 코트를 밟았을 때도 양희종은 오세근에게 다가가 ‘고맙다’고 말했고, 오세근은 ‘고생했어요’라고 답했다.

오세근의 마지막 목표는 5번째 우승까지 차지하는 것. 자신의 등 번호처럼 41살까지 현역 생활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 목표를 앞으로 어디 팀에서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오세근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가 됐다.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인삼공사와 재계약 논의도 하고 있다. 인삼공사는 ‘오세근의 입단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는 영광의 시대를 함께 했다. 2011년 입단한 오세근은 신인 시절 창단 첫 우승을 비롯해 총 네 차례 챔피언 트로피를 인삼공사에 안겼다. 리그 MVP 1회, 챔프전 MVP 3회로 개인 수상도 빛난다. 하지만 다른 구단의 여러 관심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오픈 마인드’인 그가 다음 시즌 어디서 커리어를 이어갈지 모르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다. 

“12년 동안 인삼공사를 위해 헌신하며 4번의 우승을 차지했는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저 저의 경쟁력 속에서 걸맞은 대우를 받고 싶어요. 한 손에 우승 반지 5개를 모두 끼울 수 있도록 우승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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